몸이 없는 삶도, 몸이 없는 철학도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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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없는 삶도, 몸이 없는 철학도 상상할 수 없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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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하나이고 여럿인 세계에 관하여 | 샹탈 자케 지음 | 정지은·김종갑 옮김 | 그린비 | 576쪽

우리의 삶은 몸에서 시작하여 몸으로 끝난다. 그런데 몸에 대한 철학서는 왜 이렇게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이 책은 서양철학사 안에서의 ‘몸’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탐구하고 있으며, 몸의 테크니컬하고 예술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윤리적이고 성적인 역량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룬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몸에서부터 현대의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 성차로서의 몸에 이르기까지, 몸에 대한 사유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몸은 우리의 정신이자 삶, 세계이다. 철학적 사유를 시작하기 전에 나와 몸에 대해 묻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몸이란 무엇인가? 몸은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질문이나 대답이 필요 없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마음이나 정신인데, 강아지나 고양이도 가지고 있는 몸에 대해 정색하고 질문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20세기 후반까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몸은 갑자기 학문적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로고스 중심주의적 문화가 지금까지 몸을 억압했다는 주장이 세를 얻으면서 몸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연구들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세기는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였다. 의료과학과 인공지능, 뇌과학이 몸을 바꾸고 교정하고 강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몸은 더 이상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된 것이다. 몸이 없는 뇌라거나 기억을 업로드할 수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우리는 마음보다 몸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몸에 대한 열띤 관심은 몸의 사회학, 몸의 풍속사, 몸과 성차, 감각의 역사, SF의 몸, 외모지상주의, 성형, 다이어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저작 붐으로 이어졌다. 이들 대부분은 급변하는 몸의 위상과 상품화된 몸의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출판물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정작 몸이 무엇인지를 묻는 철학적 연구서를 찾기가 어려웠다. 

이 책의 미덕은 몸을 철학적으로 폭넓게 개괄하면서도 동시에 깊이가 있고 논점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단순히 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이 몸이기 때문에 몸을 대상처럼 취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몸이면서 동시에 생각하고 말하는 몸이다. 그리고 몸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다. 이러한 역설, 혹은 이중성을 정면으로 직면하지 않고서는 몸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한 역설의 현장이 서양철학이다. 이 책의 탁월한 장점은, 몸과 마음의 애매모호한 관계를 가지고 고군분투하며 씨름하고 고민하는 철학의 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이 책을 단순히 읽지 않는다. 우리는 이 책과 더불어서 몸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원서 & 저자 샹탈 자케
원서 & 저자 샹탈 자케

누군가 말해주는 정답을 기다리기보다는, 답을 찾아 헤매는 지적 여정 자체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책에 애정을 갖게 될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예로 들어보자. 몸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데카르트가 등장하지 않는 책은 이 세상에 단 한 권도 없다. 그리고 그는 예외 없이,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실체라고 주장한 이원론자라고 소개가 된다. 과연 데카르트가 그렇게 주장했을까? 그가 이원론에 이르게 된 사유의 과정과 논리의 압력을 생략하면 그렇게 주장한 듯이 보인다. 저자 샹탈 자케는 이런 식의 용이한 대답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는 몸과 마음이 상이한 실체라는 자신의 주장을 보완하거나 수정하기 위해서 평생을 고민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철학자에게 지름길은 없다.

몸에 대한 질문은 일회성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군단(群團)으로 온다. 물질과 비물질, 관념과 연장, 유기체와 기계, 살아있는 몸과 죽은 몸, 인간의 몸과 신의 몸, 자유와 구속, 식욕과 성욕, 능력과 무능력, 능동과 수동과 같은 개념들을 경유하지 않으면 몸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몸과 더불어서 하나의 세계가 정립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많이 회자되는 “나는 몸이다”라는 말. 이는 인간의 정체성을 마음에서 찾았던 철학적 전통을 거부한다. 그런데 ‘나는 몸’(I am body)일까? 혹은 나는 몸을 가지고(I have a body) 있는 것일까? 나를 몸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또 몸은 무엇일까? 우리는 나와 몸에 대해 묻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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