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무용수이자 현대 발레의 선구자,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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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무용수이자 현대 발레의 선구자,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위대한 유산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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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진스키: 인간을 넘어선 무용 | 리처드 버클 지음 | 이희정 옮김 | 을유문화사 | 1,128쪽

현대 발레의 전설이 된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비범한 무용 예술과 비운의 인생을 담은 평전이다. 이 책은 니진스키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러시아 황실 발레 학교의 입학시험을 치르러 가는 날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60여 년의 굴곡 많은 삶을 추적한다. 20세기 문화 예술에 그가 남긴 공적과 혁신의 가치뿐 아니라 격변의 시대에 몸짓으로 소통한 그의 생애를 통해, 인간과 예술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니진스키는 고전 발레에서 여성 무용수의 보조자에 불과했던 남성 무용수의 지위를 격상한 뛰어난 무용가이자 발레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혁신적인 안무가였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니진스키가 경외의 감탄을 자아낸 반면, 인간 니진스키의 삶은 탄식을 불러일으킬 만큼 비극적이었다. 그는 경력의 정점에 있던 20대 후반에 조현병 진단을 받은 후 불운하게 생을 마감했다. 천재성과 광기를 오가며 영혼을 불태운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폴란드인 무용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니진스키는 아홉 살 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 발레 학교에 합격하면서부터 발레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1909년 19세의 나이에 최고의 공연 기획자 세르게이 댜길레프를 만나면서 그의 천재성은 날개를 달고 더 높이 날아올랐다. 니진스키는 댜길레프가 창단한 발레 뤼스의 최고 무용수로서 서방 세계에 진출했고, 파리에서 선보인 첫 공연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널리 명성을 떨쳤다. 동성 연인 관계이기도 했던 니진스키와 댜길레프는 함께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키며 20세기 러시아 발레의 황금기를 이끈 ‘환상의 듀오’였다.

그러나 만범순풍을 타는 듯했던 니진스키의 인생은 결혼을 기점으로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니진스키가 헝가리 귀족이자 여성 무용수인 로몰라 드 풀츠키와 결혼을 단행하자, 이에 분노한 댜길레프가 니진스키를 발레단에서 해고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이후 니진스키는 스스로 발레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급기야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전쟁 포로로 헝가리에 억류되기까지 했다. 결국 연이은 예술적ㆍ육체적ㆍ재정적 불안 속에서 그는 1919년 29세의 나이에 조현병 진단을 받고 말았다.

그토록 높이 도약했던 니진스키는 그만큼 극적으로 추락했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짐에 따라 예술가로서의 생명도 끝이 났다. 이후 인생의 절반인 30년 동안 그는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며 광인이라는 족쇄에 갇혀 살았다. 1950년에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그의 마지막 나날들은 발레 예술의 새 지평을 연 그의 업적과 대비되며 삶과 예술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급격한 낙차의 비극적인 삶 또한 그를 전설적인 인물로 만든 요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다고 알려진 니진스키는 그런 성격과 대비되는 파격의 삶을 살았다. 당시 남성 무용수들이 의무적으로 입던 트렁크(반바지)를 벗고 타이츠만 입은 채로 무대에 올랐다가 해고되기도 했고, 사생활에서도 댜길레프와 동성애 관계를 이어가다가 만난 지 얼마 안 된 헝가리 여인과 갑작스럽게 결혼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가 안무한 작품들 또한 고전 발레의 형식을 파괴했다. 첫 안무작인 《목신의 오후》는 선정성 논란을 일으켰고, 격렬한 동작을 선보인 《봄의 제전》은 관객들의 야유와 소란을 부추겼다. 이렇듯 니진스키라는 존재와 그의 예술 인생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기존 질서에 대한 투쟁이자 편견과 금기에 대한 도전이었다.

니진스키가 숨을 거둔 지 70여 년, 마지막으로 무대에 선 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났다. 그가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활동한 시간은 10년 남짓으로, 직접 무대에 오른 공연은 20여 회, 안무한 작품은 네 편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니진스키는 20세기 문화 예술의 아이콘이자 발레의 전설로 군림하고 있으며, 시대와 국경을 넘은 찬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니진스키는 뛰어난 기교와 표현력을 바탕으로 ‘무용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과 강철 같은 힘, 그리고 중력을 거스르는 높은 점프와 긴 체공 시간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발레리노의 외관이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작은 키에 굵은 다리,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진 그의 외형은 키가 훤칠하고 팔다리가 길쭉한 미남 발레리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이 모든 약점을 비웃듯이 비상해 단점마저 특별함으로 바꾸어 놓았다.

니진스키의 등장은 무용 역사의 분기점이자 현대 발레의 시작이었다. 1912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안무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니진스키의 작품들은 고전 발레의 법칙을 무시했다는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당시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그러나 정형화된 고전 발레의 틀에서 벗어난 혁신적이고 전위적인 그의 안무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며 걸작으로 공인받으며 그를 현대 발레의 시대를 연 위대한 안무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세상에 없던 무용수가 나타나 세상에 없던 몸짓을 창조한 셈이다. 이러한 천재성은 하늘이 내린 것이지만 스스로를 전설로 만든 것은 니진스키 본인이었다. 시대의 전환기에 태동한 그의 몸짓은 어느덧 한 세기를 지나 길고 아름다운 파장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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