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동서 융화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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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동서 융화철학
  • 윤병렬 홍익대·철학
  • 승인 2021.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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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하이데거와 도가의 철학』 (윤병렬 지음, 서광사, 526쪽, 2021.03)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철학은 결코 단순한 동서비교철학에서 접근하여 논의하거나 분석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 다소 낯선 용어이지만 ― 동서융화철학 내지는 동서퓨전철학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온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이데거와 도가는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에 “문명의 공존”(H. 뮐러)을 모범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또한 동서양의 차이를 극복하고 “철학의 항구성(philosophia perennis)”을 유감없이 드러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도가의 철학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가졌으며, 존재망각이나 형이상학에로 전락하지 않은 “시원적 사유”를 발견하였다. 

그는 중국인과 함께 노자의 <도덕경>을 번역도 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노자도덕경』의 제15장에 나오는 한문의 두 구절(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누가 능히 탁류를 고요하게 정지시켜서 천천히 맑게 할 수 있겠는가 / 누가 능히 안정한 것을 천천히 생동하게 할 수 있겠는가)을 자신의 연구실에 걸어 놓았으며, 브렉트(B. Brecht)의 노자 시(詩)(Lao Tse-Gedicht)를 좋아했다.

그는 노자에게서 “사유할 가치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서구적인 형이상학과 ‘존재망각’에로 전락하지 않은 “다른 시원적 사유”를 목격하고서, 이를 자신의 언어로 재창조하였다. 하이데거가 서구의 찌든 주체중심의 사유에서 벗어난 것, 서구에서는 도무지 낯선 무(無, Nichts)와 빔(虛, Leere)의 사유를 펼친 것, 길(道: Weg)의 개념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한 것,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개념이 독해되지 않으면 아리송하기만 한 “초연한 내맡김(Gelassenheit)” 등은 그야말로 도가의 철학과 깊이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그의 철학은 동양의 철학자들에게도 많은 호감을 불러 일으켰는데, 엘버펠트(R. Elberfeld)가 지적하듯이 “하이데거는 동아시아에서 영접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 사유노정에서 아시아 철학자들과의 대화가 동반된 첫 유럽의 대철학자이다.”

주지하다시피 하이데거의 사유노정은 형이상학과 존재망각에로 전락하지 않은 ‘시원적 사유’를 찾아가는 노력이다. 그 과정에서 소위 존재망각에 연루된 서구의 전통형이상학은 하이데거의 해체적 칼날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이 시원적 사유를 찾아가는 길에서 동양의 노자를 알게 되었고 도가의 사유를 자신의 사유세계에 기꺼이 수용하여 자신의 언어로 옮기거나 재창조하였다. 그는 도가에게서 존재망각이나 형이상학 이전의 ‘숙고하는 사유’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파크스(G. Parkes)는 하이데거와 노자의 사유가 ‘예정조화’라도 된 듯 유사성을 보인다고 진단하며, 미국의 한국계 철학자 조가경 교수 또한 그 둘 사이의 ‘신비에 가득 찬 상응’과 철저한 ‘근친성’을, 프리쉬만(B. Frischmann)은 하이데거와 도가 철학의 여러 상응점들을 지적한다. 심지어 마이(R. May)는 도가의 사유가 하이데거에게 “은폐된 출처(verborgene Quelle)”라고까지 규명한다. 이 책은 그 신비에 가득 찬 상응이나 예정조화가 무엇인지 다양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밝혀 양자 사이에서 동서비교철학의 차원을 뛰어넘는 동서융화철학의 면모를 드러내고자 한다. 

<하이데거와 도가의 철학>은 세계화로 인해 문화와 사상의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는 오늘날 동서융화철학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존재론, 형이상학, 언어철학, 해체적 사유, 인식론 등 각각의 철학적 주제에 대하여 한 장(章) 또는 여러 장을 할애하여 하이데거와 도가 철학의 사유를 세밀하게 살피고 그들의 유사성을 탐색하며 그 깊이를 숙고해본다. 도(道)와 존재의 의미, 무(無, Nichts)와 빔(虛, Leere)의 사유, 상식을 뛰어넘는 언어철학, 부정 존재론, 길(道: Weg)의 철학적 의미, 시원적 사유, 탈-형이상학, 도(道)와 존재의 피시스적 특성,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초연한 내맡김 등에서 양자의 유사성과 근친성을 목격할 수 있다. 

하이데거와 도가는 인류가 숭배해온 물신주의와 과학기술문명이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아니라, 오히려 공허한 니힐리즘에로의 길잡이에 불과하다고 폭로한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생태계위기와 환경문제의 원인은 서구의 이원론적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이 전제되어 있는데, 이 이원론엔 주인의 위치를 갈취한 인간이 자연을 대상화시키고 인간주체의 소유물과 아류로 삼은 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에 전 세계가 빠져 있으며, 인류는 “존재망각”과 대도상실(大道喪失)에서 연유된 자연파괴를 가속화시켜가고 있다. 과연 인간은 자연을 착취하고 정복할 권리가 있는지 물어야 한다. 자연 외에는 인류의 고향이 없는데도 인류는 자신의 요람을 무덤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하이데거와 도가의 사유는 인류가 만든 문명이 지나치게 인위 조작적이고 자연착취에 탐닉한 나머지 그 폐해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문명의 위기로 되돌아옴을 지적한다. 인류는 그러나 이들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니힐리즘에로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윤병렬 홍익대·철학

독일 본(Bonn)대학교 학·석·박사.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홍익대학교 교양과 교수 역임, 현재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철학의 센세이션』, 『정보해석학의 전망』, 『노자에서 데리다까지』(공저), 『감동철학 우리 이야기 속에 숨다』, 『한국 해학의 예술과 철학』, 『철학적 인문학의 길』, 『배낭 속에 담아온 철학자의 사유여행』, 『선사시대 고인돌의 성좌에 새겨진 한국의 고대철학 ― 한국고대철학의 재발견』,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담긴 철학적 세계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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