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배움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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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배움이란 무엇인가?
  •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개발방지특별위 위원장
  • 승인 2021.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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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야기 하나. 1894년 동학농민군의 ‘녹두장군’, 전봉준은 봉건 부패세력을 타도하고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 정신으로 백성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음에도 마지막 전투에서 패배하여 체포됐다. 그의 인품과 기개가 얼마나 높았던지, 당시 심문을 담당한 일본영사조차 “이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굉장히 훌륭한 인물”이라 했다. 혁명 장군이었지만 고결한 인품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법정 최후 진술에서도 “내가 죽는 건 두렵지 않다. 다만 분한 것은 내가 역적으로 몰린 것”이라 했다. 이에 사법관리조차 “누가 당신을 역적이라 하더냐? 당신은 역적이 아니다. 당신의 충군 애국정신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할 정도였다.

이야기 둘. 사상가이자 서예가로도 알려진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한겨울에 친구랑 길을 가다가 길가의 포장마차에 군고구마 장수가 ‘군고구마 팝니다’라고 쓴 글씨를 보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명필”이라고 감탄했다. 서예가인 자신의 붓글씨는 그에 비하면 “하잘것없는 허튼수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포장마차의 투박한 글씨를 보고도 그 기술적 차원을 본 것이 아니라 절박하고도 진정성 깃든 마음을 읽어낸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글씨는 가난한 가장이 온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온 정성을 다해 쓴 글씨였다. 그러니 그 어떤 예술가의 글씨보다 아름다운 영혼이 담긴 작품일 수밖에.

이야기 셋.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철학자였던 김종철 선생이 대구의 한 아파트에 살 때다. 논밭이 있던 동네가 어느 날 갑자기 아파트 단지로 돌변한 그런 곳이었다. 그 아파트에 어느 해부터 제비가 날아들어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 옛날 초가집이나 흙집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는 걸 보고 자랐던 선생으로서는 이제 제비가 고층 아파트의 매끄러운 시멘트 벽면에 아슬아슬하게 집을 짓는 것을 보고 “매우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것은 제비가 베란다에 무수히 똥을 싸댈 일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 도시들에는 제비들이 마음 붙이고 살 만한 집들이 거의 없어진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아가 “설령 그런 데가 남아있다 한들 도시환경과 사람들의 인심은 제비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 상태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에 선생은 가족들과 의논하여 그 시멘트벽에 널빤지를 하나 대주었다. 이제 제비들은 훨씬 수월하게 집을 지었고 새끼를 여러 마리 까고 길러낼 수 있었다. 그 덕에 선생 가족들은 제비들의 짹짹거리는 소리와 분비물, 제비똥 같은 것이 베란다를 엉망으로 만드는 새로운 현실을 감수해야 했다. 그 뒤로 해마다 제비들이 같은 곳을 찾아왔다. 제비들이 강남으로 떠난 뒤 제비똥으로 범벅이 된 베란다를 치우면서도 선생과 가족들은 “제비들이 우리 집을 선택해 찾아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세 가지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전봉준 장군은 동학혁명이라는 반제 반봉건 민본주의 운동의 선봉이었으면서도 고결한 인품과 맑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대학들이 진리, 사랑, 자유, 봉사, 정의, 책임 등과 같은 고상한 가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취업, 수익, 평가, 인기, 최고, 일류 등에 목숨을 거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별다른 졸업장도 없는 녹두장군의 인품과 기개는 오히려 오늘날 대학인들에게 니체의 ‘망치’와 같은 각성을 준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어떤가? 무위당 역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는 책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쌀 한 톨 속에서도 천지인의 조화, 우주의 협동을 보았고, 세상 만물이 모두 연결돼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선생은 늘 엘리트주의 의식을 경계하고 민초들과 민초들 속에서 함께 사는 것을 좋아했다. 군고구마 장수의 투박한 글씨조차 그 진정성과 간절함이 담겨 있기에 아름다운 글씨라 했다. 밤에 잠자리에서 듣는 풀벌레 소리에도 깜짝 놀라 일어나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경쟁이나 투쟁에 절어 사는지 반성하게 해준다.”며 풀벌레조차 인간의 스승이라 했다. 공감과 성찰로 평생을 민초로 살다 가신 선생의 가르침이다. 오늘의 대학이나 사회는 모두 출세와 성공에 목을 매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을 최고 목표로 친다. 그러나 그 과정이나 결과는 모두 인간 소외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별 문제의식 없이 성공을 위해 경쟁력 향상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는 믿음의 포로로 산다.

한국 최고의 교양지인 <녹색평론>을 30년 가까이 발행하고 2020년 6월 25일에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 역시 겉으로 영문학자였지만 평생 독서인으로 살았고, 땅과 농민, 흙과 지구, 사람과 자연을 정말 깊이 사랑했다. 아파트에 날아든 제비 한 마리를 보고도 산업화, 도시화,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폭력적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제비가 집을 잘 짓게 널빤지까지 만들어준 모습은 거창한 말보다 작은 실천이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느끼게 한다.

생각건대, 오늘날 제도 교육, 특히 대학입시를 목표로 진행되는 교육, 나아가 취업과 출세를 목표로 진행되는 대학 교육에서는 이 작은 이야기들에 녹아 있는 배움 같은 걸 얻을 수 없다. 설사 교과서 속에서 그런 얘기가 살짝 등장한다 해도 그런 것이 주된 배움이라기보다는 부수적인 양념에 불과하고 곧잘 잊힌다. 더욱 안타깝게도 그런 정신을 일관성 있게 실천하려는 학생이 있다면 “세상 물정 몰라서”라거나 “아직 철이 들지 않아” 그런 것이라 치부하고 만다.

이제부터라도 제도 교육의 안팎을 가리지 않고, 우리는 제대로 살다 가신 어른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살아 있는 배움을 얻고 또 그 정신과 가치를 늘 가슴에 품고 온몸으로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만이 코로나 사태나 미세먼지, 방사능, 기후위기 등으로 몸살을 앓는 현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미시적 희망이 아닐까?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개발방지특별위 위원장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독일 브레멘대학교에서 노사관계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경영, 경제, 노동, 심리, 교육, 생태 등 다양한 분야를 융·복합적으로 연구해 왔다. 지은 책으로 『촛불 이후 한국사회의 행방』, 『중독의 시대』, 『행복한 삶을 위한 인문학』, 『경영과 노동』, 『노사관계와 삶의 질』, 『자본주의와 노사관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세계화의 덫』, 『글로벌 슬럼프』, 『중독 사회』, 『더 나은 세상을 여는 대안 경영』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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