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나 닭이 날개가 있다고 날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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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나 닭이 날개가 있다고 날겠는가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1.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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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칼럼]_ 사인사색

타조나 닭이 날개가 있다고 날겠는가. 아니면 오리와 거위처럼 물에서 자유로이 노닐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타조와 닭은 창공을 나는 독수리와 솔개, 물에서 헤엄치는 오리와 거위가 왜 땅에서 안주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또한 올빼미와 부엉이가 왜 밤에 깨어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 경계가 지어진다. 

모두가 독수리이겠는가? 모두가 봉황이고, 백조이겠는가? 우리 삶에 훨씬 더 필요한 존재는 닭과 오리건만, 구성원 대다수가 스스로 독수리나 백조라고 안위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있다. 타조나 닭이 아닌 독수리나 봉황을 꿈꾸도록 교육하고, 날갯짓을 계속 연습하면 날 수 있는 양 훈련시킨다. 게다가 이들 사이는 경계로 나뉜다. 수평적 경계가 아니다. 피라미드형 위계질서에서 상층을 차지하는 법과 하층을 지탱해주는 구성원들을 차별하는 법을 익힌다. 이번에 한 작가의 전시도록을 쓰면서 스치는 이러한 생각에, 교육계의 일원으로서 자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봉황, 독수리, 백조가 되라고 강요당하고, 우리 삶에 훨씬 중요한 닭과 오리가 되기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세뇌된 학생들에게 과연 어떠한 가치관과 지식과 현실을 제시하고 있는가. 서로 분야와 장단점이 다를 뿐인 구성원들 간에 포용과 감사와 똘레랑스를 제안하는 대신, 얼토당토않게 성공과 낙오의 수직적 경계선을 긋는 체제, 독수리와 백조가 타 구성원들을 경시하도록 유도하는 현 사회제도를 어찌 해명할까. 독수리나 백조뿐인 세상을 메타버스(metaverse)에서 살아봐야만 할까.  
  
이번에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초대전을 갖는 김정기 작가는 이미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은 스타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라다이스』와 『제3인류』 삽화,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의 <슈퍼맨>, <원더우먼>, <시빌워 II> 등 커버 아트,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 홍보 협업, 국내외 방송매체, 그리고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기관 행사와 SK, LG, 아우디 등 광고까지 수많은 작업으로 우리와 친숙해졌다. 그럼에도 이번이 그가 국내 대형미술관에서 갖는 첫 개인전이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애초에 프로 만화가로 등단했던 그가 제아무리 기발한 발상과 탁월한 그림솜씨를 20년간 뽐냈어도, 여전히 하위문화 작가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서구권에서 고급과 저급미술, 엘리트와 대중문화의 위계질서가 깨어진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낡은 국내 문화예술체제를 고수하는 앙시앵 레짐은 아직도 채 뿌리가 뽑히지 않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미술에서 이미 쓰레기통 폐기물은 다다와 팝 아트가 되고 길거리 스프레이 낙서는 그래피티 아트가 되었건만, 동굴벽화부터 담벼락/화장실 낙서와 종잇장 드로잉 역사까지 수만 년을 거친 만화는 여전히 미술관이라는 성전 밖 서브컬처가 되는 현실이다.
 
어디 문화예술계뿐이랴. 그는 대학 중퇴자이다. 대학교육을 감내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우리 대학 학생이었다면 졸업이 가능했을지 자신이 없다. 나도 구태의연한 ‘꼰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육 부적응자가 글로벌 작가가 되었다. 물론 그는 해외에서 유명해진 후에야, 국내에서 인정받았다. 우리 사회에서는 문화예술계는 물론이요, 교육계 교수부터 학생까지 취업과 사회생활을 위해 명품요건을 증명해야 하는데, 기발한 독창성과 도전적 개혁정신은 별반 가치가 없다.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주류사회 진입을 위해서는 ‘하위사회ˑ문화권’ 꼬리표를 떼고 ‘엘리트·명문·고급’ 공식을 통과해야 하는 기이한 틀 속에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갇혀있다. 이런 식의 피라미드 구조를 해체한 구글이나 아마존은 동화일 뿐이다. 

결국 국가적 손실이다. 행성 지구의 특정 공간대와 시간대에 불시착한 탓에, 탁월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근대적 체제에 짓눌려서 이름조차 남지 않은 채 역사의 차가운 무덤에 묻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자칫 위대한 인물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수만 년 동안 경천동지하게 변화해온 세상에서 아직도 ‘양반·상놈’ 식 경계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역사의 교훈들을 외면하는 사회에서 말한들 무엇하랴.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석사와 철학 박사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객원강의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대미술사학회 회장과 미술사학연구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원광대 국제교류처장과 한국문화교육센터장,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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