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보궐선거 관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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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보궐선거 관전평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1.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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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_ 대학직설

정책은 뒷전이고 상대 후보 흠집 내기만 부각되었던 4·7 보궐선거가 민주당의 참혹한 패배로 끝났다.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들은 전원 흠결투성이로 밝혀졌고 당의 명운이 걸린 만큼 선거전이 극단적 경쟁구도로 치달은 까닭에 우선 이기고 보자는 속셈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포장만 그럴싸한 선심성 공약들을 마구 쏟아냈다. 당선의 기쁨도 잠시, 승리자들은 본인이 남발한 정책들을 불과 1년 2개월 남짓한 잔여 임기에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청을 접수한 오세훈 시장이 전임자의 ‘업적 지우기’에 돌입했고 이를 막아서는 서울시의회 의장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풍문이 벌써부터 들려온다.

사실 선거 몇 달 전부터 집권 여당을 둘러싼 민심의 분노 물결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지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LH사태’가 터져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소위 현 정부에 대한 ‘심판’ 정서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지난 4·7 재보선에서는 막대기를 세워놨어도 실제로 나온 결과보다 더 큰 표 차로 야당 후보들이 당선됐을 거라는 ‘웃픈’ 농담은 분명 근거 없는 조롱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사실적 평가에 가까웠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네 차례 큰 선거를 모두 싹쓸이하다시피 했던 민주당이 이토록 굴욕적인 패배를 하게 된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국민의힘 선거승리의 일등 공신인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 직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패인에 대해 이렇게 촌평했다. “그들이 ‘세금의 정치’를 몰랐다는 거다. 세금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줄 모르고, 무턱대고 부동산 투기 잡는다고 세금 올리고, 공시지가 올리고. 조세 저항에 대한 감이 전혀 없더라. 성추행에 세금 폭탄까지 터졌으니 질 수밖에.” 물론 증세와 선거 승리는 반비례 관계라고들 한다. 그러나 과연 세금이 문제였을까.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당의 참패 원인은 선거 코앞에서 터져 나온 ‘LH사태’라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가장 결정적인 패인은 아닌 것 같다. 

필자가 보기에 민주당의 참패를 부른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바로 3월 28일 보도된 김상조 정책실장의 비위(非違)와 탈선(脫線) 행태였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을 역임하고 곧이어 대통령의 최고 책사 자리에 오른 인물이자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에 깊이 관여해 온 핵심 경제통이었다. 그런 그가 본인이 주도한 전·월세 상한제, 즉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시행을 불과 이틀 앞둔 2020년 6월 29일 본인 소유의 강남 아파트 전세금을 이 법이 정한 5% 상한선의 3배에 가까운 14%(1억 2천만 원)나 올려 세입자와 재계약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실 ‘김상조’가 전·월세 상한제 시행에 앞서 업무상 비밀을 이용하여 사적인 이득을 취한 몰염치한 공직자였다는 사실은 국민의 한 사람인 필자에게도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 같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이튿날 부랴부랴 사직서를 제출하고 대통령이 이를 즉각 수용했지만 이미 산토끼나 집토끼 할 것 없이 모두가 확고한 여당 응징으로 가닥을 잡은 터라 버스 떠난 뒤 손드는 형국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흘 뒤인 3월 31일, ‘약자의 친구’로서 대단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박주민 의원이 자신의 아파트 월세를 9% 올려 계약한 사실이 추가로 알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전·월세 5% 상한제 및 계약갱신청구권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전세 무한 연장의 필요성을 제기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언론들이 이 두 공직자의 표리부동한 처신을 일컬어 민주당 식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는 ‘프레임’을 걸어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선관위가 나서 이 표현이 ‘특정 정당’을 지목한다고 사용을 불허했다. 이에 <뉴욕타임즈>까지 ‘Naronambul’을 한국 정치문화의 상징어로서 소개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선거판의 판세는 누가 봐도 이미 야당으로 심히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김상조가 누군가. 그는 인사 태풍이 몰아칠 때마다 ‘태풍의 눈’인 양 안전하게 살아남아 ‘문재인 정권의 황태자’로 불렸던 인사다. 또 언필칭 ‘진보’ 경제학자이자 ‘경제정의’의 아이콘으로서 십수 년간 언론의 단골 논객으로 활동했고 그 ‘시민’ 경제전문가 경력을 배경으로 현 정권에 영입되어 문재인표 경제정책의 총괄역을 담당했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는 지난 4년간 시행한 경제정책 실패의 핵심축으로서 국민과 정권에 크게 손해를 입혔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공직 수행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하여 사익을 탐한 사실이 적발되어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는 물론 수보회의 발언을 통해 참모들에게 ‘주택’ 관련하여 엄중한 처신을 당부하고 모범이 될 것을 여러 차례 지시했음에도 이런 사달이 난 것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김 전 실장의 범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로 계속적인 경제정책 실패에도 끝까지 자리를 보전하다가 마침내 불미스러운 개인적 사유가 발생하자 비로소 사직을 택함으로써 공직자의 기본윤리를 위반했다. 둘째로 그는 분에 넘치는 은혜를 베푼 대통령의 무한 신뢰를 무참히 짓밟은 반역의 죄를 짓고도 간단히 사직을 택함으로써 면죄부까지 알뜰히 챙기면서도 제대로 된 대국민 사과문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끝으로, 그는 이제 우리가 알고 보니 서푼어치도 안 되는 자였는데 4년 내내 곁에 두고 이리저리 중용한 문 대통령의 인재 안목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과 허탈함을 다시금 뇌리에 각인시켰다. 문 대통령이 지난 재보선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뭇매를 맞은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고, 아마 임기를 마치더라도 ‘인사 무능’ 꼬리표는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중한 죄를 짓고도 천연덕스럽게 다시 대학으로 복직한다고 하니 어찌 그의 후안무치와 몰염치가 도를 넘어 하늘을 찌른다고 하지 않겠는가.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식의 뻔뻔함은 현재 대한민국 ‘586’ 파워엘리트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가장 비루한 단면이기도 하니 그만 꼭 집어 나무라는 데 한계가 있기는 하다.)

박주민은 또 누구인가. 위키백과에 따르면 73년생이라고 하니 아직 40대인 ‘청년’ 정치인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민변, 참여연대라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초고속 ‘커리어’ 경로를 착착 밟아왔고, 세월호 진상규명 과정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한 덕에 찾아온 정치적 ‘기회’를 놓치지 않고 20대 국회에 넉넉한 표차로 입성하여 마치 드라마처럼 꿈과 사랑을 다 얻은, 시쳇말로 ‘성공의 정석’이 뭔지를 스스로 입증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2016년 국회 입성 후에는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정책위원회 부의장, 적폐청산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국회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 검찰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굵직한 보직들을 계속 맡으면서 승승장구해왔다. ‘젊은’ 정치인으로서 앞길이 ‘구만리’요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그였지만 실생활에서는 한낱 작은 이득을 좇는 소시민과 진배없었다. 이런 그의 민낯도 민주당의 표를 상당수 떨궜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패인은 역시 화려한 정치 이력을 배경에 깔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박영선 전 중소기업부 장관의 기회주의 행보와 위선의 정치 행태이다. 세간에 박영선이 지지하는 후보는 이긴다는 낭설이 있듯, 그는 승리의 낌새를 기막히게 알아채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동영, 김종인, 박지원, 안희정, 안철수, 그리고 문재인으로 이어진 재기발랄한 ‘합종연횡’ 경력이 이 점을 잘 설명해준다. 지난 19대 대선에 국한해 보더라도 초기 국면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저격수로 맹활약하다가 어느 땐가부터 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 계정의 대문에 올려 ‘대표 문빠’인 척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중소기업부 장관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장관이 되자 자신이 줄곧 정치적 제물로 삼아왔던 ‘삼성’과 대승적 협력을 통해 소기의 성과도 냈다. 이런 대단한 생존력을 지닌 중견 정치인 박영선이 서울시장이 되었다면 그는 즉시 대선후보로 등극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난 4·7 재보선에서 박영선의 전략은 ‘여성’이라는 기회의 문을 두드려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남자’의 역풍을 맞아 낙마한 셈이니 이번만큼은 특유의 ‘승리 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듯하다. 또한 선거 전반에는 동경에 있는 아파트의 존재가 드러나 곤혹스러웠지만, 후반부에 제기된 상대 후보의 ‘페라가모’ 신발에 대비시킨 본인의 ‘구멍난’ 운동화가 오히려 눈썰미 있는 유권자들에 의해 그의 ‘위선’의 결정판으로 지목되었다. 사실 정치적 소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4선 의원의 재빠른 기회주의적 행보와 용의주도하게 잘 숨겨온 위선의 정치에 행운의 여신이 항상 미소 짓기를 기대하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4·7 재보선의 결과는 단지 일회성이며 다음 선거의 결과는 또 다른 발생 변수들이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 선거에서 우리 정치판과 정치인들의 행태가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면 무엇이 과연 이런 정체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 우리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가장 주효한 구원책은 아마도 ‘586’ 정치엘리트의 명예로운 퇴진일 듯하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인 이들은 ‘87체제’의 주역으로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이미 누릴 만큼 누렸고 받을 만큼 충분히 다 받았다. 어느덧 ‘기성세대’가 된 이들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가장 성스러운 마지막 임무는 미래 세대가 전면에 부상할 수 있도록 기득권을 내려놓고 2선으로 물러나는 정치적 결단을 하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말 그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처럼, 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정치 세대에게 맡기는 게 맞다. 이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인간의 행위만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며, 기성의 세계 속에 전혀 새로운 행위능력을 가지고 출현할 미래 세대만이 인간세계가 낡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패러다임,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 역서로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 읽기』, 『시민사회』,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책임과 판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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