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발발-진행-정전 협정 체결까지…한국 전쟁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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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발발-진행-정전 협정 체결까지…한국 전쟁의 재구성!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4.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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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미원조 (상/하): 중국 인민지원군의 한국 전쟁 참전 기록 | 리펑 지음 | 이재연·정명기 옮김 | 다른생각 | 각 541, 534쪽

“항미원조(抗美援朝)”, 즉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돕는다.” 이는 바로 중국이 조선 전쟁(한국 전쟁)에 개입하여 북한을 도운 명분이다. 이 책은 비록 ‘적’측에서 발행한 책이긴 하지만, 한국 전쟁의 전 과정을 문학적 필치로 재구성해 놓아,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쌍방 군대의 구체적인 작전과 전투 장면까지 파노라마 식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 책이 ‘적’측에서 발행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적’의 시각에서, ‘적’의 장점은 과장하고, 단점은 축소했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점을 감안해 읽는 지혜가 요구된다.

1950년 6월 25일 조선 전쟁이 발발했다. 북한 인민군은 곧바로 서울을 점령하고, 이어서 파죽지세로 남진하여 낙동강 전선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허리가 절단되자, 전세는 급변하여 북한은 거꾸로 압록강 인근까지 퇴각하게 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에게 긴급히 지원을 요청한다. 스탈린은 미국과의 충돌이 자칫 제3차 세계대전을 촉발할 위험성이 있는 데다,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아직 못 벗어난 국내 상황을 감안하여 사실상 지원을 거부한다.

반면 ‘건국’(1949년 10월 1일)한 지 1년밖에 안 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은 심사숙고한 끝에 조선(북한)을 적극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1950년 10월 19일부터, 펑더화이(彭德懷)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인민지원군(人民志願軍: 정규군이 아니라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하여 구성된 군대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규군을 차출하여 편성한 정예 군대였다.)’ 약 30만 명을 야음을 틈타 비밀리에 북한으로 들여보낸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갓 수립된 상태에서 대규모 병력을 외국의 전장에 파견하기로 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즉 남·북 조선의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민족 내부의 내전이므로, 외국 군대가 이 내전에 참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유엔군’의 외피를 쓰고 자신들의 추종하는 15개국을 규합하여 조선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부당하며, 그들이 파병한 진짜 목적은 사회주의 세력의 확장을 저지하고, 중국을 위협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북한에 들어온 중국 군대는 10월 25일에 처음으로 북진하던 미군과 조우하여 12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임으로써, 이른바 제1차 전역을 치른다. 따라서 중국은 10월 25일을 항미원조 전쟁의 개시일로 기념하고 있다. 이후 제2차 전역(1950년 11월 6일부터 12월 24일까지, 29일간), 제3차 전역(1950년 12월 31일부터 1951년 1월 8일까지, 8일간), 제4차 전역(1951년 1월 25일부터 4월 21일까지, 87일간), 제5차 전역(1951년 4월 22일부터 6월 10일까지, 50일간)까지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쌍방 모두 엄청난 인적·물적 손실을 입게 된다. 이렇게 밀고 밀리는 전투를 치르면서 전선은 38도선 부근에 형성되어 대치 국면으로 돌입한다.

애초에 몇 달이면 북한을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통일하여, 전쟁을 끝낼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은, 이렇게 지리멸렬한 대치 국면에 돌입하여, 전쟁이 장기화될 기미를 보이자, 국내의 반전 정서 확산과 경제적 손실 등에 부담을 느낀 트루먼 정부는 정전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하여 1951년 7월 10일부터 쌍방은 정전 협상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나 군사 분계선을 확정하는 문제, 전쟁포로 석방 문제 등 여러 가지 입장 차이로 인해 휴회와 결렬과 재개를 거듭하는 동안, 전선에서는 국지적으로 격렬한 전투가 계속된다. 도중에 미국에서는 트루먼이 퇴임하고 아이젠하워가 새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전 협정이 재개되어, 마침내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하기로 협상이 타결되었다.

이 책에서는 위와 같은 조선 전쟁의 전 과정을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서막〉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조선 전쟁이 발발하기까지의 한반도와 관련된 국제 정세를 기술하고 있다. 얄타 회담에서 미·영·소 삼국 거두가 회담을 벌이는 장면부터, 장제스(蔣介石)의 타이완 정세까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제1장부터 제7장까지는 중국 군대가 벌인 5차례의 전역들을 중심으로, 주요 전투의 진행 과정과 장면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에 곁들여 그들의 ‘전투 영웅’들의 장렬한 전투 모습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정전 협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쌍방 대표단의 회담 모습과 회담장 내부 분위기, 대화 내용도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정전 협정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전쟁 포로 송환 문제와 관련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폭동과 포로 학대 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중국은 이 전쟁을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수립된 지 1년밖에 안 된 신생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상대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려놓고 전쟁을 마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이 ‘항미원조’ 전쟁으로 인해, 제1차 아편전쟁(1840년)이후 100여 년 동안 서구 열강들에게 능욕을 당하면서, 극도로 자신감을 상실한 ‘중화민족’이 다시 자신감을 되찾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강국으로 굴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중국은 이 전쟁에 대해 매우 높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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