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란비’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방화까지
상태바
‘오란비’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방화까지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4.11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48)_ ‘오란비’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방화까지

“책은 한 권 한 권이 다 도서관이다”--正子

 

봄밤이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서 인가, 봄이 들어간 우리말 단어는 이미지가 좋다. 봄날, 봄비, 봄눈, 봄내음, 봄바람, 봄꽃 ... 등. 이에 비해 같은 뜻의 한자어 춘야, 춘일, 춘우, 춘설, 춘향, 춘풍, 춘화 등은 별다른 느낌이 없거나 어감이 나쁘다. 물론 말에 대한 느낌은 개인의 경험세계에서 비롯된다.

봄바람이라는 말은 싱그럽고, 상쾌하고, 설레는 느낌을 주는 데 비해, 가을달 秋月이라는 이름의 평양 기생에게 반해 가산을 탕진한 花花公子 이야기를 다룬 소설 <李春風傳> 때문인지 한자어 春風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또는 누군가를 유혹하듯 살랑대는 바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춘풍과 봄바람의 의미가 다르다. 참고로 ‘화화공자’라는 말은 ‘바람둥이’, ‘플레이보이’의 중국식 표현이다.

아지랑이 같은 봄내음, 봄의 향기는 붉은 동백꽃 향기를 연상시킨다. 어쩜 매화향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춘향모의 이름이 月梅인 고로, 딸이 그 향기를 물려받았다면 그럴 수 있겠다는 pun 즉 신소리일 뿐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춘향이 과연 어떤 향기를 지닌 여인이었는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겨둘 일이다.

동백꽃과 매화

애도 어른도 다 아는 우리나라 국민 애창곡의 노랫말처럼 바야흐로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강원도 민요 정선아라리에 등장하는 올동백도 이미 피었고, 그래서 봄밤조차 아름답건만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실내를 어슬렁거린다. 장맛비의 고어라는 오란비의 기원이 궁금해서다.

우리말 ‘장맛비’의 옛말이 ‘오란비’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 내 머릿속은 갖은 추측으로 채워졌다. 아직까지 오란비의 어원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구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장마, 장맛비라고 한다. 장마를 가리키는 말이 참 많다. 한자어로는 積霖(적림), 積雨(적우), 三日雨, 久雨(구우)라고도 한다. 

장마는 동아시아 지역 특유의 기상 현상으로 대개 6월 중순에서 7월 하순 사이의 여름철에 습한 공기가 강우전선을 형성하면서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많은 비를 내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며, 그 시기를 장마철이라고 한다. 러시아어로는 자땨쥐늬예(затяжные), 일본어로는 쓰유(훈독) 또는 바이우(음독)(일본어: 梅雨), 중국 표준어로는 메이위(중국어: 梅雨)라고 부른다.
 
우리말 장마는 1500년대 중반에 나온 ‘길다’는 의미의 한자어 ‘장(長)’과 비를 의미하는 ‘맣’을 합성한 '댱맣'이 어원으로 추정된다. 1700년대 후반에는 '쟝마'로 표기되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지금의 '장마'로 쓰이고 있다. 『훈몽자회(訓蒙字會)』는 조선 중종 22년(1527년)에 최세진(崔世珍 ?∼1542년)이 지은 한자 학습서이다. 3,360자의 한자를 33항목으로 종류별로 모아서 한글로 음과 뜻을 달았다. 그런데 우리가 장마 림으로 알고 있는 ‘霖’이 훈몽자회에는 ‘오란비 霖’이라 적혀 있다. 

훈몽자회

혹시 오란비가 오랜비가 아닐까 생각하고 여러 방법을 다 동원해봤으나 오란비의 기원을 밝히는 데 실패하고, 남은 일은 그럴듯하다고 수긍할만한 와일드 게싱 뿐이었다. 우리가 오란(烏蘭)이라고 읽는 한자어를 중국인들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烏蘭巴托)에서 울란(ulan)을 표기하는 데 사용한다. <金史> 國語解 姓氏 條에서는 올안(兀顔)을 써 울란을 나타냈다. 몽골어 울란은 ‘붉다’라는 뜻의 말이며, 울란바타르는 ‘붉은 전사’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오란비의 오란이 ulan의 음차어 烏蘭을 우리네 독법으로 읽은 것일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일은 흔하다. 고대 범어 Buddha의 음차어 佛陀(불타)가 구개음화 과정을 거쳐 지금은 부처가 되고, lingam을 전사한 한자어 령감(令監)이 어두자음 ㄹ탈락과 모음전이라는 음운변화를 거친 결과 우리말에서 영감으로 쓰이고 있다. 오란비를 붉은비로 보는 나의 거친 짐작이 틀렸다고 말해줄 독자를 원한다.  

지난 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관련 글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덧붙이려 한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참 많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인간의 언행이 비일비재하다. 배운 자가 어리석고, 오히려 노예가 지혜롭다. 온 인류의 이름으로 용서하기 어려운 범죄는 책을 불사르는 일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카이사르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방화, 조선왕조의 수서령과 분서가 대표적인 사례로 이는 두고두고 기억될 반달리즘(vandalism: 만행, 문화 예술의 파괴)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소실(燒失)의 책임은 폼페이우스를 쫓아 알렉산드리아까지 온 카이사르에게 물어야 한다. 전임 파라오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우레테스의 아들로 누이인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여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가 된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테오스 필로파테르(기원전 62~기원전 47년)는 기원전 48년 누이가 단독 여왕이 되려하자 그녀를 하야시키고 이집트에서 추방한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별칭 ‘테오스 필로파테르’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신”이라는 뜻을 지닌다.

마침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에게 패해 알렉산드리아에 온다. 그의 망명 초청을 받아들이겠다던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폼페이우스가 알렉산드리아 앞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살해하고 목을 잘라 뒤따라온 카이사르에게 바친다. 자신이 관대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걸 과시하고 싶어 했던 카이사르는 화를 내고 울면서 폼페이우스의 장례를 로마식으로 성대하게 치러준다. 그 사이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로 돌아와 카이사르의 환심을 사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카이사르가 제안한 억지춘향격인 누이와의 공동통치에 반발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보관했던 파피루스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기록된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배에 불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적들이 그의 바다를 통한 통신 능력을 막으려하자 자신의 배를 태워버렸다. 이 불길은 부두를 태우고 나서 번지고 번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까지 불태우기에 이르렀다.”

2세기 로마의 역사가 겔리우스는 그의 저서 <Attic Nights>에서 카이사르의 군대가 부두에 불을 놓는 과정에서 실수로 도서관을 불태웠다고 전한다. 또 4세기 무렵의 비기독교도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도서관이 카이사르의 방화에 의해서 불태워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절개에 의해 태어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15세기 작품)<br>
절개에 의해 태어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15세기 작품)

당대나 지금이나 명실공히 셀럽(‘유명인사’를 뜻하는 영어 celebrity의 한국식 축약형)인 그와 관련된 속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그가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나서야 세상 빛을 보았기 때문에 자연분만이 아닌 인공 분만을 그의 이름을 따 제왕절개(Caesarean section)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Caesar salad를 카이사르가 만들거나 좋아한 것이 아니듯 사실과 거리가 멀다. 카이사르가 간질병 환자였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연구팀에 의하면 카이사르는 간질이 아닌 일과성 허혈 발작이라고도 하는 미니 뇌졸중을 앓고 있었다.   

언어 변화와 차용의 관점에서 Caesar라는 말이 황제, 제왕의 뜻을 지니게 되고, 독일어로 들어가서는 독일, 오스트리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칭하는 카이저(Kaiser)로 변용되어 쓰이고, 러시아어에서는 짜르(czar)로 형태 변화를 한 건 기억할 만하다. 

카이사르의 부인(Caesar’s wife)이라는 표현도 그 의미를 새겨볼 만하다. 이 말은 카이사르가 직접 한 것으로 자신의 부인을 향한 일종의 금기랄 수 있다. “내 아내 되는 사람은 모름지기 세상의 의심을 살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Caesar’s wife must be above suspicion)”.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정치가, 공직자의 아내는 세인이 의혹을 가질 일을 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쯤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세상 살기 쉽지 않다”는 카이사르 부인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