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실천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비비(BeeVi)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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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실천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비비(BeeVi)시스템
  • 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환경공학
  • 승인 2021.04.1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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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 비비시스템, 화장실에서 시작되는 생태혁명』 (조재원·장성익 지음, 개마고원, 208쪽, 2021.03)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 책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에너지원은 다름 아닌 똥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하루에 평균 200그램의 똥, 일 년이면 70킬로그램의 똥을 누며 한국인 전체로는 연간 350만 톤의 똥을 만들어낸다. 만약 똥을 에너지와 퇴비로 전환할 수만 있다면, 똥은 물, 전기를 사용해서 처리해 버려야할 대상이 아니라 소중하게 재활용해야 할 자원인 셈이다. 음식물 쓰레기나 일회용품과 같이 노력하면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원으로 활용하는 길을 모색하자는 거다. 다행이 똥을 자원화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우리는 수세식변기란 오래전 발명품에 안주하면서 대안이 없다고 포기해 버린다고 아쉬워한다.

수세식변기가 되기 위한 요건이 있다. 첫 번째, 볼일을 보면서 냄새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변기에는 물이 어느 정도 차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볼일을 본 후에는 물을 내려 깨끗하게 더러운 똥을 치워야 한다. 두 가지 모두 물을 요구한다. 그런데 세 번째 조건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수세식변기와 단짝인 하수처리장이다. 하수처리장 없는 수세식변기는 있을 수 없다. 만약 하수처리장 없이 수세식변기만 사용된다면 우리가 사는 집 주위는 온통 오물투성이로 가득찰 것은 자명하다. 하수관을 통해 인근 하천까지 옮길 수는 있겠지만 하천은 금방 엄청난 수질재앙을 맞을 것이다. 수세식변기 화장실과 하수처리장은 이렇듯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세트의 위생시스템이다. 집안 변기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물로 내려 보내고는 하수처리장에서 에너지와 약품을 사용하여 똥을 처리한다. 똥만 치울 수만 있다면 엄청난 자원을 쓰고도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수처리장이 똥, 오줌을 포함하는 오염물질을 완벽하게 처리하지는 못한다. 이런 이유로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 책은 수세식변기를 거부한다.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는 수세식변기를 거부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책은 수세식변기와 하수처리장이 담당하는 위생시스템이 가진 어두운 면을 관련 과학기술들로 드러내면서 이를 극복할 대안을 통해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물을 아끼는 것은 물론이고 바이오에너지와 퇴비 생산까지 가능한 비비시스템이 그것인데 기술은 이미 갖춰져 있다. 비비(BeeVi)시스템은 벌(Bee)과 비전(Vision)의 첫 음절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꿀벌과 같이 소중한 것들을 모아 세상을 새롭게 바꿔 보자는 비전을 담았다. 20인 정도 사람의 똥을 이용하여 바이오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설을 유니스트 캠퍼스 내 과일집(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집)에 설치하고 실생활에서 직접 증명하였다. 기술뿐만이 아니다. 비비시스템의 경제성 분석도 비용과 편익을 단순 비교하는 방법이 아닌 시민들에게 해당 시스템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위생시스템과 같이 공공재를 투자해야 할 때 익히 사용되는 경제성 분석기법이다. 현재 하수도 사용료 외 추가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비비시스템 사용을 원하는지 물어 전국 16개 시·도 1,613 가구 중 87%가 찬성한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현재 하수도 사용료에 추가하여 월 평균 12,300원을 비비시스템 사용 시 지불할 수 있다고 답했다. 조건부 가치측정법이라는 경제성 분석기법을 이용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증명한 것이다. 기술과 경제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이후에 이번에는 대중들의 인식변화를 이끌어내려 노력한다.

빌&멀린다 게이츠재단에서는 2012년 이후 수백억 원의 연구비를 투자하여 자원 순환형 변기를 개발했다. 게이츠재단에서 개발된 변기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 똥을 가루로 만들어 퇴비로 제공하며 사용한 물은 나노 멤브레인이라는 정수기에서 사용되는 여과방식에 의해 정제되어 재활용된다. 실로 대단한 변기가 아닐 수 없다. 개별 기술만 따지자면 비비시스템의 변기 기술이 부족할 수 있지만 비비변기는 다른 차원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위생-에너지 연계시스템 속에서 그 역할 담당을 자처한다. 비비변기는 똥과 오줌을 분리해서 모은다. 오줌은 액비로 만들며 똥은 미생물소화조 내 미생물에 의해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쓰인다. 남은 똥은 양질의 퇴비로 바뀐다. 비비시스템은 똥, 오줌 자원순환을 넘어 물-에너지-퇴비로 이어지는 순환경제 차원까지 고려한다. 게이츠재단 변기 보다 비비시스템은 늦게 개발되었지만 증가하고 있는 세계인구의 똥을 오염물질에서 자원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표한 셈이다.

비비시스템은 이름의 의미처럼 과학기술 기반 순환경제 너머를 꿈꾼다. 책의 후반부 감춰둔 꿈을 살짝 드러낸다. 사실 저자에 의해 후속권이 진행 중이다. 물을 아끼고 바이오에너지와 퇴비를 생산하니까 가치가 생기는 거다. 그래서 이를 디지털화폐로 개념화하여 똥본위 화폐라고 이름 붙였다. 화폐가치 기준을 똥으로부터 되찾은 가치에 두고 똥을 누는 모든 사람에게 10꿀을 지불한다. 현재 통용되는 여러 다른 화폐와는 다르게 인간본연의 가치에 초점을 맞춘다. 10꿀을 받으면 3꿀은 동료들과 플랫폼 상에서 자동으로 나뉜다. 디지털 시대 전자화폐라 이것이 어렵지 않다. 사회적 가치가 열리고 대안적 기본소득 역할까지 기대되는 지점이다. 다른 특성도 있는데, 지불된 돈은 매일 조금씩 사라져 오늘 받은 돈은 한 달 후면 모두 사라지는 생명탄생과 죽음의 자연법칙을 화폐 속에 담았다. 저장할 수 없는 돈은 생태 속에서만 오로지 저장되고 순환한다는 똥본위 화폐의 철학이다. 현금으로 환전되지 못한다. 이런 특성들로 인해 국내외 마을공동체, 학교공동체들에서 지역화폐로서 실험되고 있다. 한계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똥본위 화폐는 천천히 하지만 생명 생태 속에서 진화하고 있다.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 책은 화장실에서 출발하여 위생시스템, 자원순환 과학기술을 넘어 순환경제로, 그리고 결국 대안화폐를 통한 새로운 사회의 미래까지 열 수 있다는 선언으로 끝을 맺는다.


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환경공학

미국 콜로라도대학에서 환경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자동화·디지털시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자·인문학자·예술가들의 융합연구센터인 ‘사이언스월든’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2016년, 지식의 통섭을 추구하는 전세계 석학들의 집단인 EDGE재단의 ‘올해의 질문’을 통해 ‘똥본위 화폐’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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