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출신학교 등급 폐지'로 변화의 물꼬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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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출신학교 등급 폐지'로 변화의 물꼬를 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4.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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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특집] (재)교육의봄, 채용 포럼 시즌 2_ 5차 포럼 〈의료계 채용 현황을 살핀다〉
- 의료계는 수요에 비해 공급 부족…면허 취득 간호사 41만 명, 유휴 간호사 21만 명
- 의료계는 고등학교 수능 성적으로 직업 정해지는 유일한 직업군
- 의료인으로서의 소명과 적성에 대한 검증 절차 대학 입학 때부터 필요
- 출신학교 등급제 폐지 후, 상위 등급 학교 합격률(96%->48%)은 크게 떨어지고, 하위등급 학교의 합격률(45%->77%)은 높아져
- 면허 취득 의료인 경우, 채용에서 ‘태도(A) 역량’ 변별 중요

(재)교육의봄은 지난해 채용 포럼에서 미처 다 확인하지 못했던 5개 영역(공기업, 스타트업, 언론계, 대학, 의료계)을 추가로 살피기 위해 채용 포럼 시즌 2를 기획하고, 지난 3월 30일(화) 광화문 1번가 소통 공간에서 의료계의 채용 현황을 살펴보는 제5차 마지막 포럼을 진행했다. 

제1 발제자로 ㈜헬스와이즈의 김민정 대표가 의료계의 전반적인 인적 구성 및 채용 현황에 대해서 발표했으며, 제2 발제자로 권영식 팀장(연세대 용인세브란스), 강신관 팀장(고려대 의료원), 그리고 송기찬 채용담당자(한양대학병원)가 각 병원의 채용 절차와 특징 등에 대해서 발표했다. 의료계의 채용 현황은 의료인의 종류, 종사 기관의 크기 및 유형에 따라 달랐다. 이날 포럼은 의료인의 인적 구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간호사’와 의료기관으로는 규모가 큰 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의 채용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 의료인 채용은 지금까지 포럼을 통해 살펴본 다른 기업군과는 매우 다른 측면과 함께 새로이 고민이 되는 지점들도 있었다.

▶ 의료계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구인난’을 겪고 있음. 특히, 면허 취득한 간호사는 41만 명인데, 일하지 않는 유휴 간호사(21만 명)가 많아 간호사의 부족은 매우 심각함.
 
병원은 직종이 225개나 되는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조직’ 중 하나라고 한다. 그만큼 병원에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함께 근무하는데, 이 중 의료인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및 간호사를 말한다. 직종별 인적 구성을 보면, 2019년 기준 의료계 전체에서 간호사가 46.7%로 가장 많고, 그다음 의사(22.9%), 물리치료사(9.0%), 약사(8.4%), 치과의사(5.7%), 한의사(4.7%) 순이었다. 

전체적으로 의료인 채용에서 구직난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고 ‘구인난’이 더 적절한 표현이었다. 다시 말해, 의료인의 취업 경쟁은 더 선호하는 의료기관에 입사하려는 경쟁이고 일반 취업 준비생이 겪는 것처럼 구직 자체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차원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의 활동 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인구 1,000명 당 2.3명으로 2020년 OECD 평균 3.4명의 67.6%밖에 되지 않는다. 간호인력은 더욱 부족하여 OECD 평균 7.6명에 비해, 한국은 3.8명으로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고려대 의료원만 해도 지난해 전체 채용의 91%(810명)가 간호사였을 정도로, 각 병원은 간호인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여전히 간호인력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현실이다.
 
사실, 국내 간호대학 졸업생(인구 10만 명당 39.6명)은 OECD 평균(33.3명)보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는 먼허 취득 후 일하지 않는 유휴 간호사가 많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 면허 취득 간호사는 약 41만 명인데 반해, 실제 일하고 있는 간호사는 그 절반 정도인 21만 5,000여 명에 불과하다. 간호사 협회의 지난해 조사(3,493명 대상)에 따르면, 유휴 간호사들이 재취업을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노동강도와 임금’(21.8%)이 가장 많았고, ‘직장 분위기 및 조직문화’(20%), ‘임신·출산·육아’(19.3%) 등의 순이었다. 의료인, 특히 간호사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다.

▶ 의료계는 고등학교 수능 성적으로 직업이 정해지는 유일한 직업군. 생명을 다루는 직업의 특성상 의료인으로서의 소명과 적성에 대한 검증 절차가 대학 입학 때부터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됨.
 
이날 포럼에서 김민정 대표는 의료계 직업군이 갖는 매우 독특한 특징 한 가지를 언급했다. 병원 행정직을 제외하고 모든 의료계 직종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직업이 결정되는 유일한 직업군이라는 것이다. 의사의 경우 보통 의과대학 6년(혹은 의전원 4년)을 졸업해야만 의사 국가고시를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마찬가지로 간호사도 간호대 4년을 졸업해야 국가고시를 통해 간호사로서의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의료인은 선망하는 직업군 중 하나로 매우 높은 수능 점수를 받아야 의대, 간호대 등의 교육기관에 입학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의료인으로서의 소명이나 적성보다 고등학교 때의 ‘성적’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직업군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의 특성상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입시경쟁에 매몰되어 있는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인성교육을 비롯해 학생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 여념이 없는 학생들이 의료인으로서 소명과 적성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며 진로를 정하는지도 미지수이다. 이런 점에서 김 대표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윤리, 소명의식, 책임감 등이 더 요구되는 의료인만큼은 최소한 대학 입학 때부터 역량과 적성 등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병원 채용은 출신학교 등급에 따른 차등적 점수 반영이 관행적이었음. 출신학교 등급제 폐지 후, 상위 등급 학교의 합격률(96%->48%)은 크게 떨어지고, 하위등급 학교의 합격률(45%->77%)은 높아짐.
 
간호사 채용 시, 많은 병원들이 수능 배치표에 따라 학교의 등급을 정해 서류 전형에 반영해온 것이 관행적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최근 몇몇 유명 대학병원의 출신학교 등급제 문제가 언론을 통하여 보도되기도 했다. 이처럼 수능 성적은 의료인이 되기 위한 첫 관문(대학)에 진입하는 것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고등학교 수능 성적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날 포럼에 참여한 대학병원에서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연세대 용인 세브란스와 고려대 의료원은 서류 단계에서 출신학교 등급제를 폐지했다고 밝혔다. 출신학교 등급제를 폐지한 이후 나타난 하나의 특징은 등급이 높은 대학의 합격률은 떨어지고 등급이 낮은 학교의 합격률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강신관 팀장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상반기 간호사 채용에서 최상위(S등급) 학교 출신이 100% 전원 합격을 했고, 그다음 A등급 96%, B등급 81% 순으로 학교 등급과 합격률이 정비례했다면, 등급제가 폐지된 2020년 하반기에는 S등급 90%, A등급은 무려 48%로 합격률이 떨어졌다. 반면, 최하 등급의 학교(E 등급)는 45%에서 77%로 합격률이 크게 높아지는 변화가 있었다. 

▶ 고려대 의료원의 블라인드 면접 도입 후 나타난 변화: 2017년 입사자의 출신학교 140개교였으나, 2020년에는 190개교로 늘어남. 수능 성적에 의한 대학 간판보다 의료인으로서 준비, 노력, 성장이 더 중요함.
 
출신학교 등급 폐지 외에도, 고려대 의료원은 채용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채용 과정에서 두 가지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했다. 먼저, 서류전형을 외부기관에서 평가하도록 하여 부정청탁이나 금품 수수 등에 의한 문제를 전면 차단했다. 두 번째, 의료계에서는 최초로 블라인드 면접을 도입했다. 강신관 팀장은 출신학교와 같은 정보들이 제공되면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을 바라보는 자세가 왜곡될 수 있어, 불필요한 정보를 일체 주지 않는 블라인드 면접을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블라인드 면접의 도입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 그 효과를 단언할 단계는 아니라고 강신관 팀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블라인드 면접 도입 후 출신 대학의 다양성이 나타났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결과다. 강신관 팀장이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2017년 고려대 의료원에 입사하는 학생들의 출신학교는 137개 교였지만, 블라인드 면접을 도입한 2018년 140개교, 2019년 179개교, 2020년 190개교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러한 결과는 금융권과 공공기관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후, 출신학교의 다양성이 나타났다는 보고와 일치하는 부분이다.
 
앞서 살펴본 출신학교 등급제 폐지, 그리고 블라인드 면접 시행 후 나타난 고려대 의료원의 결과는 한 가지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즉, 출신학교에 의한 차별적 점수 반영이나 선입견이 없다면,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능력과 그에 대한 평가는 출신학교와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등학교 수능 성적으로 결정되는 대학 간판이 아니라 대학 4년 혹은 취업 전까지 의료인이 되기 위한 노력과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비단 채용 과정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고려대 의료원의 자료에 의하면, 직원들의 인사고과 평가와 출신학교 등급은 상관관계가 없었다. 즉, 입사 후 간호사로서의 좋은 평가도 ‘어느 학교를 나왔는냐’가 아니라, 한 개인의 노력, 성장, 발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 지식(K)과 기술(S)을 검증하는 면허를 취득한 의료인의 경우, 채용에서 ‘태도(A) 역량’을 변별하는 것이 중요함. 한양대 병원은 인적성 검사에 AI 역량 검사를 활용하고 있음.
 
의료인 채용은 직종과 종사 기관의 유형 및 크기에 따라 다양하지만, 간호사로 좁혀서 절차를 살펴보면, 서류전형-인적성 검사-면접전형 순으로 일반 기업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이미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면허증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보통 직무역량을 지식(K), 기술(S), 태도(A)로 구성된다고 볼 때, 지식(K)과 기술(S)은 대학 교육과 국가고시 시험을 통해 어느 정도의 검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채용에서 태도(A) 역량을 어떻게 변별하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의료계에서 지원자의 태도(A)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주로 인·적성 검사와 면접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적성 검사가 필기시험 형태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지원자의 태도 역량을 평가하는데 타당성이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태도 역량과 관련하여 이날 포럼에서 한양대 병원이 도입하고 있는 AI 역량검사가 주목을 받았다. 송기찬 채용담당자에 따르면, 기존의 인·적성검사는 OMR 카드로 정답/오답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반해, AI 역량 검사로는 어떠한 상황에서 지원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 인·적성검사를 대체하기에 충분했다고 말했다. 김민정 대표는 특히 평가가 어려운 태도 역량과 관련하여, “의료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태도와 마인드에 대한 모델링을 개별 병원이 아니라 의료계 공동으로 개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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