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시대정신과 불안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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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시대정신과 불안 마케팅
  • 임운택 편집기획위원/계명대·사회학
  • 승인 2021.04.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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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운택 칼럼]_ 사인사색

5년 단임 대통령제로 인해 주기적으로 선거가 돌아오다 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한 때문에 정책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형성되다 보니 5년마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흡사 새 나라를 세우기라도 하듯 거대담론이 동원된다. 그중 제일선에 있는 것이 ‘시대정신’(Zeitgeist)이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헤르더에 의해 처음 창안된 이 개념은 한 시대의 특징적 사고방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앞세운 1848년 혁명 당시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후 헤겔이 이 개념을 통해 ‘객관적 정신’의 세계를 바라본 반면에, 딜타이는 개별 인간을 지배하는 사고, 느낌, 의지의 한계로 이해하였다. 무엇으로 이해하든 국내에서처럼 대선을 앞두고 5년마다 소환되는 사유체계가 아님은 분명하다. 실제로 이 개념이 창안된 독일에서조차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 ‘냉전의 종식’과 같은 거대한 정치적 산사태와 그로 인한 사회경제 및 일상의 커다란 전환이 예고되는 시기가 아니면 비유적으로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개념이 어디 ‘시대정신’뿐이랴만 최소한 우리처럼 대선을 앞두고 정책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백신 주사 놔주듯 정치권에 어슬렁거리는 학자들이 유권자를 대상으로 시대정신을 주조하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이 한때는 운동권에서 뉴라이트로 전향한 사람들의 저널 이름으로 사용되더니 어느 순간에 대선만 찾아오면 중도·진보 진영에서조차 무슨 대단한 거대담론이라도 되듯 제시되는데, 사실은 5년을 제대로 관리할 정책과 프로그램이 분명하지 않다 보니 그냥 다량의 선거정책을 포장한 일종의 선거용 포장지에 불과해 보인다. 다소 과하다고 생각이 드는 분들은 지난 수년간 시대정신을 설파해온 학자나 정치가의 행적을 보면 간단하다. 선거가 끝나면 그뿐이고, 십수 년이 지나도 이분들은 정책은 나 몰라라 하고, 여론과 민심 타령에 되돌이표 시대정신만 읊조리고 있다.

선거정책을 포장한 시대정신의 실체는 이슈 선점과 불안 마케팅이다. 물론 이 방면에도 족보는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학자들이 정치 마케팅을 떠안았다면, 서구에서는 이미 하나의 전문 직업으로 자리 잡은 ‘스핀 닥터’(Spin Doctor)라는 직업적 선거꾼들이 담당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선정적 구호와 ‘신노동당(New Labour)’이라는 새 브랜드로 고루한 신보수주의자들을 일격에 날려버린 마이크 멕커리나 피터 만델슨과 같은 대표적 스핀 닥터는 풋내기 정치인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를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치적 팝스타로 만들었다. 68학생운동 세대에서 한때 혁명을 꿈꾸고 Sex, Drug, Rock’N Roll로 대변되던 저항문화를 표출했던 이 세대는 냉전종식 이후 갈 길을 잃은 보수주의가 신보수주의의 이름으로 부활시킨 가족주의, ‘문명충돌’과 같은 시대착오적 이념과 가치를 공략해서 사회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주류가 되었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불안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교육 중산층으로 자수성가한 이들은 금융시장에서 약속의 땅을 찾았던 청장년층, 여성, 이주배경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시민들을 묶어낼 시대적 분위기를 읽어냈다. 이 흐름 속에서 노조조차 낡은 산업사회의 잔여물로 취급되었고, 살아남기 위해 노조는 현대화 전략의 이름으로 기업과의 양보협약, 연금 민영화, 의료보험의 구조조정 등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실물자본과 분리된 금융자본의 투기화, 젠더 평등, 문화다원주의는 정치적·문화적 슬로건으로 나름 매력적이었고, 꼴보수들을 희화화하면서 공존하였다. 그러나 정부책임보다는 민관협력(PPP), 거버넌스 등의 개념으로 정치권력을 시장과 나누면서 공존하려는 정치프로젝트는 대부분 실패하고, 2010/11년 아랍의 봄과 월가점령 시위로 최대 위기를 맞이하면서 이들은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는 국내의 지식인과 평론가들도 자주 인용할 만큼 인기 있는 슬로건이었으나 스핀 닥터의 선거공약만큼 미국경제가 잘 돌아가기는커녕 전 국민이 금융과 부동산 투기에 휩쓸려 2008년에는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대침체’가 발생하였다. 시장 구조조정으로 실업으로 내몰린 분노한 사람들은 교양 있고 말만 번지르르한 껍데기 진보보다는 우파 극단주의자를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유럽의 극우주의 정당, 미국의 트럼피즘(Trumpism)과 같은 우파 극우주의 창궐의 배경이다. 

스핀 닥터들의 슬로건과 시대정신의 슬로건은 크게 다를까? 내가 보기엔 별반 차이가 없다. 이제 대선 때마다 시대정신이 발병하는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자. 시대정신의 레퍼토리에서 거론되는 복지국가 구축, 불평등 완화, 사회적 정의와 공정과 같은 주제는 물론 그 자체로 부인하기 어려운, 절대적 과제들이다. 그러나 5년, 10년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자본주의 국가를 벗어나 있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사를 보면 그 주제들은 정당의 장기지속적인 정치비전, 계급갈등의 제도화, 사회계약의 개선, 주요 이슈별 정책비전을 일관성 있게 지속해야만 비로소 개선이 가능한 것들이다. 그래야 정당과 시민의 신뢰도 장기지속적인 것이 된다. 그러한 비전과 정책적 일관성이 없다 보니 정책은 실종되고, 인물과 미디어 정치에 집착하고 불안 마케팅과 시대정신이 결합하여 왕조시대도 아닌데 시대적 인물론이 등장한다. 흡사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천상에서 내려와 단칼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주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전 3김 시대에나 먹혔을 법한 논리는 이제 선거판의 미디어 정치에서나 통용될지는 몰라도 그만해야 한다. 정치인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또 다른 정치인으로 대체·소모되고, 국민의 피로도만 높아지고 정치에 대한 혐오증만 유발한다. 이 판의 진정한 승자들은 정치를 스포츠 중계로 만드는 선거꾼들이다. 

대선을 앞두고 거대담론은 필요하고 정치의 방향과 정책의 노선을 둘러싼 논쟁은 필수적이다. 단 구체적이고, 전문성을 유지해야 한다. 20년 동안 비슷한 레퍼토리를 우려먹기에 대한민국은 훨씬 진화한 나라이다. 정부의 고위 공무원들은 똑같은 요리재료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능한 주방장처럼 어설픈 구호가 등장해도 어떤 방식으로 정책을 요리할지 도가 튼 사람들이다. 그걸 제어하라고 지난 20년 동안 정부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 공공기관의 기관장으로 선거공신들인 정치인, 교수, 심지어 시민운동가들을 보냈지만, 별반 바뀐 것이 없다. 시작은 창대하였는데, 변화가 더딘 것은 구체성, 전문성,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이 담고 있는 내용을 하나하나 문제 삼고자 함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포장만 바꾸다 보니 주창자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져버린다는 점이다. 노동의 유연성은 필요한가? - “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부분적으로”. 탄력근로제는 필요한가? - “노동계의 눈치가 보이지만 때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필요한가? - “상황과 조건이 허락한다면”. AI는 필요한가? - “시장 경쟁력을 위해서는 예스, 일자리의 위협이 되면 노!”. 이것이 시대정신을 떠드는 사람들의 일반적 태도이다. 하나마나한 이야기 아닐까? 시대가 불안하면 역설적으로 정치인들의 세상이 된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므로 불안 마케팅이 잘 먹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그럴듯해도 그 후과는 적지 않다.

AI에 대해 잘 몰라도 열심히 미래의 운명은 AI에 달려있다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자. 제조업에 조금만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개념은 이미 1960년대 후반 자동화 논쟁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미 AI는 몇 차례 진화되어 왔다. 그런데 국내에서 유별나게 사랑받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이름으로 이 개념이 정치화되면 갑자기 인류문명의 미래가 달린 거창한 논의로 변신하고, 위원회가 설립되고, 이 상황을 잘 간파한 ICT 기업가들은 이 기회에 본인들이 필요한 것들은 다 챙기는 호기로 이용한다. 부동산정책처럼 어설픈 정치가와 학자들이 흡사 투기판에 멍석을 깔아주는 격이 된다.

차기 대선에는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시대정신이라는 ‘불안 마케팅’을 5년마다 주조할 시간이 있으면 20년 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중요한 과제들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추구하는 편이 백번 낫다. 당연히 우리의 삶을 바꾸어낼 정책은 공론장에서 과감한 논쟁으로 촉발되어야 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시민이 새로운 정치비전을 선택해야 한다. 일로 먹고사는 시민들에게 싸구려 시대정신보다는 내 삶의 질을 개선하고, 비전을 보여주는 정치가 훨씬 유익하다. 반공이라는 공포 마케팅이 한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의 시대에 더는 유효하지 않듯 시대정신의 불안 마케팅도 5년마다 되풀이되면 양치기 소년이 되기에 십상이다. 정치의 진화를 공무원의 손에 넘기고 싶지 않다면, 구체적 정책 프로그램에 집중하자. 우리의 전 국민 의료보험보다 못한 오바마 케어가 미국인에게 정책의 의미를 각인시켜 주었다면, 우리가 못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단, 시대정신과 인물론으로 다시 선거판을 흐릿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임운택 편집기획위원/계명대·사회학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 사회학 박사. 현재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비판사회학회에서 발간하는 <경제와 사회> 편집위원장, 한국이론사회학회 부회장,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을 맡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정치경제학, 노사관계, 정치사회학, 현대 사회이론이다. 주요 저서로 <전환시대의 논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중위기>, <경제의 디지털화와 노동의 미래>, 공저로 <현대사회와 베버 패러다임>, <문화, 환경, 탈물질주의 사회정책>, <청년실업과 노동시장, 그리고 국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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