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강의실’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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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강의실’의 의미를 묻다
  • 이미향 영남대학교·한국어교육
  • 승인 2021.04.04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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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새 학기에 강의실 문을 열 때면 어슴푸레 되살아나는 장면이 있다. 22년 전, 숨 한 번 크게 쉬고 들어서던 그 강의실이다. 스무 살 대학생 수십 명이 보내는 시선에 애써 태연한 척하며 준비한 말만 하다가 나온 곳, 대학에서 처음으로 가르치던 ‘첫 강의실’에 대한 기억이다.  

‘강의실’에 얽힌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시인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시인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라고 썼다. 80년 전 어두운 시대에 무기력한 자신을 드러낸 시라 배웠는데, 눈여겨본 것은 현실에 동참하지 못해 부끄러운 자신을 ‘강의 들으러 간다’로 그려낸 점이다. 시인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닌 일반인으로서 시의 참뜻을 다 읽어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강의실에 들어온 나의 학생들이 안일한 도피자가 아니기를 바랄 때면 이 시구가 떠오른다. 

사전에서 ‘교수’를 찾아본다. 대학에서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대부분의 교수는 평생을 연구와 교육에 바치며 대학에서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게 쌓아간 ‘앎’을 펼쳐내는 공간, 그곳이 바로 대학 강의실이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에서 필요 이상으로 멋지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실제 가르침과 배움이 정서와 함께 맞교환되는 강의실에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돈다. 짧은 시간에 집약된 지식이 물처럼 흐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위 시에서와 같이, 대학 강의실을 현실과 유리된 곳이라 본다. 한때 정의롭고 올바른 사회를 바라는 학생들의 참여 앞에서, 대학의 강의실은 마냥 이기적 공간으로 여겨진 적도 있었다. 어쩌면 대학 강의실이 이 모든 면을 다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개념이든 맥락을 빼놓고 정의되지 않는다. 전쟁이 한창인 곳에서 평화는 포탄 소리 없이 하룻밤을 잘 자는 것이지만, 평화로운 세상에서 고요한 하룻밤은 그저 그런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춘래불사춘’이 소환된 2021년 봄, 강의실에 갈 수 없는 채로 다시 봄학기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전시 상황 못지않은 뉴스특보를 매일 보면서 대학 수업을 다시 온라인 동영상으로 찍고 있다. 불과 일 년하고 몇 달 사이, 대학 구성원들에게 대학 강의실이란 ‘방역으로 금지된 공간’이거나 혹은 ‘낯선 공간’이 되었다. 2m 거리와 마스크는 어느새 사람의 접촉에 선을 긋는 상징이 되어 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학생들과 눈만 바라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로세로 몇 cm인 스마트폰 화면에 증명사진처럼 나란히 앉아 수업한다. 대학에서 얻을 지식이란 책에 적힌 행간의 의미만이 아닌데, 그 이상을 넘는 것이 강의자로서 참 힘들다. 과연 예전의 강의실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작년 봄, 교육은 방역을 위한 행정에 우선순위가 밀렸다. 가르치는 이들의 의견에 관심을 두기에는 모두 여유가 없었다. 경제권, 이동권, 생존권을 논하는 때에 교권, 학습권을 논하는 것은 물색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익숙하지 않은 녹음을 하다가 동이 트는 아침 하늘을 보기도 하면서, 교수들은 몇 달 안에 영상을 조작하며 일하는 데 적응하려 애썼다. 낮과 밤이 바뀌고 일상이 깨져 혼란스러웠지만, 무엇보다도 다친 마음들이 잘 회복되지 않는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대학 교육을 폄하하는 댓글들이 많아 실제로 상실감이 큰 교수자도 많았다. 

전 세계를 혼돈에 빠뜨린 질병이 사람의 일상을 통째로 흔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요, 생명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란 것의 의미가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데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교육이 가치로운 것이다. 현재를 지킨다는 이유로 미래를 키울 가능성을 접어두거나 미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이 익숙한 이 시대에 온라인 교육도 할 수 있다거나, 어차피 다가올 원격수업을 준비할 계기였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한다. 그런데 지난 2개 학기 동안, ‘잠시만’, ‘두세 주만 더’라고 하면서 연장된 임시방편에 누구도 교육적 의의와 권위를 실어주지 않았다. 떨어진 가치를 다시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 것이다. 이 또한 가르치는 자의 의무로 남았다. 

대학에서 강의실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학의 강의실은 가르치고 배울 권리가 있는 터전 또는 무대였다. 책을 넘어 앎을 펼치고, 서로 교감하면서 한층 더 성장하는 곳이었다. 맞는 것만 골라내는 곳이 아니라, 맞고 틀림을 근거와 함께 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미래를 이끌어갈 우리 젊은이들이 배움의 과정 속에서 무언가를 ‘알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란 말처럼, 아직도 강의실은 굳게 닫혀 있다. ‘강의실’의 의미를 묻고 찾으면서, 오늘도 하릴없이 온라인 강의실에 접속한다. 


이미향 영남대학교·한국어교육

. 경북대 문학석사(국어학), 문학박사(한국어교육)
. 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 영남대 대학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과 교수
. 국제한국언어문화학회 부회장
. 한국일보 [우리말 톺아보기] 칼럼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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