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S. 밀 〈자유론〉의 현대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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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 밀 〈자유론〉의 현대적 의미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4.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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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38강>_ 서병훈 숭실대학교 명예교수의 「J. S. 밀 <자유론>」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6. 서양 근대 문명과 그 세계적 영향’ 제 38강 서병훈 명예교수(숭실대 정치외교학과)의 강연을 발췌해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자유론』의 현대적 의미

서병훈 교수는 “자기 확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라는 “모순적 이중 구조”에 처한 오늘의 사회를 돌아보며 존 스튜어트 밀(J. S. Mill) 의 『자유론』을 소개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곱씹어본다. 널리 알려졌듯 밀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닌 한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라며 생각과 토론의 자유를 옹호하고 개별성(individuality)의 가치를 지지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밀의 전부는 아니며 밀이 “‘옳은 길’을 제시하면서 간섭”하는 것, 이른바 “삶의 필요에 따른 ‘선의의 간섭’을 정당화”하고 ‘사회성’에 주목하는 측면도 있는 만큼 무조건적인 절대 자유가 아니라 “방향을 전제한 자유”야말로 밀의 진정한 생각인 듯하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3월 6일, 서병훈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38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한국 사회를 위한 충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살아 있는 고전이다. 밀은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강조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자기 확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라는 모순적 이중 구조 앞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누구든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하나를 더 요구한다.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아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없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는 아쉬움이 많다.

2. 울림이 있는 삶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1806년 런던에서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대의 대표 지성이자 공리주의 개혁 운동의 선봉이었던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이 그의 아버지였다. “여러 가지 난점을 어중간히 해결해놓고 완전히 해결한 양 생각하지 않는 것, 전체를 다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부분도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 것”, 이것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소중한 유산이라고 존 스튜어트 밀은 『자서전』에서 회고했다.

밀은 25세 때 운명의 여인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를 만났다. 두 사람은 사상도 같이 나누었다. 그가 쓴 글은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쳤다. 밀은 자신의 특별한 경험에 빗대서 “개인의 사적인 삶에 대해 사회가 부당하게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밀의 주위에는 훌륭한 사상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벤담, 리카도, 토크빌, 칼라일, 콩트 등이 그들이다. 밀은 배울 것이 있다 싶으면 누구든 먼저 접근했다. 밀은 또한 참여파 지식인이었다. 하원 의원 밀은 의회에 진출한 뒤 철저하게 자신의 원칙대로 행동했다. 진보적 자유주의(advanced liberalism)를 앞장서 실천했다. 

밀은 글을 쓸 때 항상 시대의 요구를 염두에 두었다. 직관주의가 팽배하던 당대 지성계에 맞서 경험주의를 외쳤고, 신사(紳士)와 부르주아지를 성토하며 ‘자유사회주의’를 제창했다. 그의 글에는 시대에 대한 그 자신의 답이 들어 있었다. 

밀은 수도승 같은 삶을 살았다. 이념의 푯대를 향해 흔들림 없이 정진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늘 부족하고 불완전하다고 경계했다. 양쪽을 살피면서 새로운 것이면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4. 『자유론』의 주요 내용

1장 머리말

밀은 『자유론』의 첫머리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사회적 자유’, 즉 사회의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개인이 어떻게 온전히 자유를 누릴지 고민한다. 특히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라는 화두에 집중하고 있다.

밀은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한다. 그런 한계를 명확히 하여 부당한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밀은 다수의 위압에 맞서 개별성을 살리기 위해 『자유론』을 썼다.

밀은 그 구체적 방안으로 ‘자유에 관한 아주 간단명료한 단 하나의 원리’를 천명한다. 어떤 경우에도 사회가 개인에게 강제나 통제(법에 따른 물리적 제재 또는 여론의 힘을 통한 도덕적 강권)를 가해서는 안 된다. 단, 한 경우는 예외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harm)를 끼칠 때는 자유를 요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concern)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만 사회가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은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론』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밀이 볼 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 주장이나 생각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류 가능성’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 이쪽저쪽을 두루 살피는 ‘다면성(many-sidedness)’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열린 마음으로 남의 말을 경청하라는 것이 『자유론』 2장의 핵심 메시지이다.

밀은 말한다. 현 단계 인간 세상에서 ‘절대 진리’라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상이한 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고, 다양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 문제를 이모저모 따져보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밀은 생각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옹호한다. 

첫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모든 의견은, 그것이 어떤 의견인지 우리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진리일 가능성이 있다. 이 사실을 부인하면 우리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음(infallibility)을 전제하는 셈이 된다.

둘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일정 부분 진리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일이 아주 흔하다. 어떤 문제에 관한 것이든 통설이나 다수의 의견이 전적으로 옳은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없다. 따라서 대립하는 의견들을 서로 부딪치게 하는 것만이 나머지 진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셋째, 통설이 진리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어렵고 진지하게 시험을 받지 않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진리의 합리적 근거를 그다지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그저 하나의 편견과 같은 것으로만 간직하게 될 것이다.

넷째, 그 주장의 의미 자체가 실종되거나 퇴색되면서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선을 위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하나의 헛된 독단적 구호로 전락하면서, 이성이나 개인적 경험에서 그 어떤 강력하고 진심 어린 확신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하고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밀은 ‘여론의 횡포’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여론을 빌려 자유를 구속한다면 그것은 여론에 반해 자유를 구속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 끝에 밀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오히려 그런 존재를 고마워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반대편이 있어 자신의 정신이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론』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3장 개별성

『자유론』에서 ‘자유’보다 더 자주 나오는 말은 바로 ‘개별성(individuality)’일 것이다. 개별성이란 각자가 자신의 개성대로,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밀은 서로 다른 의견의 공존이 필요하듯이, 삶의 실험도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각자의 개성을 다양하게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각자의 개별성이 발전하는 것과 비례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며, 또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도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각 개인이 이처럼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면, 개인들이 모인 사회 역시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밀은 그 이름이 무엇이든,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개별성을 짓밟는 체제를 최악의 독재 체제라고 단정한다.

밀은 민주주의가 진척되는 대중 사회의 어두운 측면에 걱정이 많았다. 대량 생산, 대중교통, 대중 교육은 사회 전체를 하나로 만들 수밖에 없다. 밀은 다수가 여론과 관습을 앞세워 ‘비주류’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폐쇄하려 드는 경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다.

문제는 ‘개별성에 적대적인 환경’을 극복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밀은 사람들을 아직 완벽하게 하나로 묶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개별성의 중요성을 환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역설한다. 우리 삶이 하나의 획일적인 형태로 굳어지기 전에 그것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다. 밀의 『자유론』은 이런 절박한 심경에서 집필되었다.

4장 사회가 개인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

그렇다면 각 개인은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그 정당한 한계는 어디인가? 사회의 권한(authority)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우리의 삶에서 개별성에 속하는 부분은 어디까지이고 사회에 속하는 부분은 또 어디까지인가?

밀의 입장은 분명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본인이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 사회가 개인의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가? 밀은 전형적인 자유주의 논리를 제시한다. 우선 누구보다도 본인이 자기를 가장 아끼는 법이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과 환경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사회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에 간섭하면 잘못된 방법으로 잘못된 곳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당사자에게만 관계되는 문제에 대해 본인 스스로 내린 결정과 마음먹은 목표를 사회가 끼어들어 번복시키는 것은 옳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밀은 이런저런 불편은 자유라는 좀 더 큰 목적을 위해 감수할 수밖에 없음을 거듭 역설한다. 자유의 대가를 기꺼이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론』이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은 타인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그저 이기적인 무관심을 조장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심각한 오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사심 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밀은 개인적인 덕목의 중요성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말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회적 덕목이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제한 다음, 사회의 불간섭을 요구하는 것이다.

5장 현실 적용

마지막 장에서는 구체적 사례를 들어 자유의 기본 원리를 다시 한번 더 설명하고 있다. 밀의 입장은 분명하다.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그 자체가 나쁜 짓’이라는 것이다. 

『자유론』의 대미는 참여, 특히 지역 수준에서 자치의 소중함에 대한 강조로 장식되고 있다. 밀은 가능하면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국가의 힘은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에게서 나온다. 국가가 시민들의 내면적 성장과 발전을 중히 여기기보다는 사소한 실무 행정 능력이나 세세한 업무 처리를 위한 기능적 효율을 우선한다면, 그리고 국가의 손바닥 위에서 말을 잘 듣는 온순한 도구처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을 왜소한 존재가 되도록 끌고 간다면(설령 그들을 위해 좋은 의도에서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자잘하고 그저 그런 사람들로서는 크고 위대한 일은 전혀 성취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5. 생각할 것들

1) ‘선의의 간섭’

밀은 『자유론』에서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한다. ‘남을 위해 그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는’ 선의의 간섭을 배격한다. 그러나 밀은 다른 이야기도 한다. 그는 『자유론』 곳곳에서 올바른 가치의 구현을 내세워 개인의 자율성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

우선 밀은 자유를 ‘자기가 원하는 바를 하는 것(doing what one desires)’이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참된 자아’가 진정 원해야 자유라고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전제한 뒤, 밀은 아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자유의 기본 원리가 ‘정신 연령이 일정한 단계 이상 오른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단 것이다.

밀은 이런 이유에서 ‘삶의 필요’에 따른 선의의 간섭을 용인하고 있다. 어른이라 하더라도 ‘자치 능력’이 없으면 남에게 직접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린아이와 같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밀은 미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을 미성년자(nonage)로 간주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특히 ‘선의의 간섭’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밀은 이처럼 같은 『자유론』에서 한편으로는 ‘자유 그 자체’의 가치를 역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필요에 따른 ‘선의의 간섭’을 정당화한다. 이런 혼란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여러 해법이 있겠지만, 밀 스스로 자신을 공리주의자라고 규정하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는 공리주의자답게 효용(utility)이 모든 윤리적 문제의 궁극적 기준이 된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볼 때, 자유의 기본 원리라는 것도 궁극적 가치에서 파생된 제2원리에 지나지 않는다. 공리주의를 고수하면 자유는 뒤로 밀리고 마는 것이다. 

무엇이 효용인가? 밀은 효용을 ‘진보하는 존재(progressive being)인 인간의 항구적(恒久的) 이익에 기반을 둔, 가장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 규정한다. 단순히 양적이고 물질적인 쾌락이 아니라 인간의 참된 자기 발전을 이끌 수 있는 효용이 윤리적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유의 원리는 공리주의 아래 있는 하위 규정일 수밖에 없다. 효용을 늘리기 위해 ‘선의의 간섭’을 꾀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유와 가치가 대립 구도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인간의 삶에서 올바른 가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는 행복한 삶의 전제 조건이면서 그 본원적 구성 요소이다.

밀은 개별성의 개념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했다. 밀은 개별성이 단지 행복에 이르는 필요조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것의 구성 요소(constitutive ingredient)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상 체계 속에서 개별성이란 것은 수단적 가치이면서 동시에 목적 그 자체이다.

밀은 ‘웬만한 정도(tolerable amount)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했다. 따라서 밀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선의의 간섭을 허용했다. 원칙적으로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증진하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면 한시적, 부분적으로 간섭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밀은 자신의 자유론 속에 내연(內燃)하는 이런 갈등을 그 특유의 낙관론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다. 일부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한다면, 인간은 경험과 토론을 바탕으로 하여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가치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치와 개별성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 이것이 밀의 희망이자 또 처방이기도 한 것이다.

2) 개별성과 사회성

주목할 것은 그가 개별성의 반대편에 사회성(sociality)을 설정하면서 그 중요성을 특별히 역설한다는 점이다. 밀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대립적인 시각에서 파악하지 않았다. 개별성의 보존과 더불어 인간이 사회 속에서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성을 함께 강조했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사회적 존재라는 점을 전제하고서, 개별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설명한 밀이었다.

밀은 사람이 사회적 감정(social feeling)을 타고난다고 생각한다. 밀의 사회성 개념은 바로 이 사회적 감정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사회성은 남과 더불어 협력하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의 본성과 그렇게 살아야 할 당위성을 함께 포괄한다. 개별성이 기본적으로 ‘타인으로부터의 자유 또는 고립’을 요구한다면, 사회성은 ‘이웃에로의 진입 또는 상호 왕래’를 강조한다. 개별성과 사회성의 동시 발양(發揚)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밀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나 전통적 사회주의자와 구분된다.

밀은 ‘사람은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목표를 자기의 것과 조화시키는 데 대한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라고 말한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로 인해 사회성이 다소 훼손되고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개별성은 상황이 다르다. 현대 사회의 속성상 개별성의 입지는 하루가 다르게 위축되고 있다. 개별성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이 아예 말라버리기 전에, 이미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인간의 행복, 즉 자기 발전은 개별성과 사회성의 조화로운 개화 위에서 가능하다. 밀은 개별성과 사회성이 함께 발전한다고 믿었다. 둘이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보적 존재라는 것이다. 사회성을 고려한 자기 방식의 삶이어야 진정한 개별성이다. 반면 개별성을 안고 가는 사회성이 아니면 밀이 생각하는 사회성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3) 표현의 자유

생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밀은 생각의 자유 못지않게 표현의 자유도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미묘한 한계도 설정하고 있다. 밀은 공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반면 그는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는 당사자에게 자유의 품격을 고민하고 사회성을 배려할 것을 촉구한다.

이처럼 밀이 지향하는 가치, 특히 사회성 개념을 생각한다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여지가 없지 않다. ‘선의의 간섭’을 용인하는 그의 논점과 연결시켜본다면 특히 그렇다. 중요한 것은 밀이 행위의 당사자에게 자유의 무게를 성찰할 것을 권면한다는 점이다.

4) 이성이 살아 있는 사회

밀은 다면성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지만, 이성의 궁극적 승리를 믿었다. ‘진리를 찾는 길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진리의 객관적 실체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면 플라톤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밀은 이성이 정치의 나침반이 되기를 고대했다. 특히 대의 민주주의에 기대가 컸다. 사람들이 ‘보다 우월한 주장(superior reason)’ 앞에서 자신의 편견과 이해관계를 접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밀의 이런 기대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다양한 각도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에 맞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닌가.

사실 밀 자신도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경계하고 있다. 그는 『자유론』에서 자유로운 토론의 어려움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우선 억압적 상황에서 논쟁이 쉽사리 완고한 적대감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밀은 ‘우호적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토론에 대해서도 장밋빛 기대를 접을 것을 당부했다. 아무리 자유로운 토론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파당적(sectarian)인 생각을 모두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한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으리라는 밀의 ‘소박한’ 믿음에 대한 회의가 커질 수밖에 없다.

6. ‘진보하는 존재’

지금 이 시대는 진실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 삶을 인도해줄 근원적 가치에 대한 소망도 함께 퇴색하고 있다. 2016년 말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대표 단어’로 ‘탈(脫)진실(post-truth)’을 선정한 것은 그 의미가 심상치 않다. ‘탈진실’이란 사실의 진위와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을 주도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시대 풍조에 비추어 본다면 『자유론』은 다소 복고적이다. 인간의 자기 발전이 우리 삶의 궁극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기 발전(self development)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밀은 무엇보다도 지적인 소양(素養)의 계발을 강조한다. 밀은 주지주의(主知主義)에 편향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식의 중요성, 나아가 지식의 ‘만능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능력의 발전이라는 것이 지적인 능력의 개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밀은 지성, 감성, 도덕성이라고 하는 세 차원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발전시켜야 최고 가치가 구현된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상태를 행복이라고 규정하였다.

밀의 정치 이론은 바로 이런 좋음의 철학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가 『대의정부론』에서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을 그리며 ‘좋은 정부’ 또는 ‘이상적인 정치 체제’라는 말을 즐겨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은 정부(good government)란 어떤 정부인가? 밀은 무엇보다 정치 제도가 사회의 전반적인 정신 수준을 얼마나 향상할 수 있는지 묻는다. 인간성(humanity)을 증진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정부의 탁월성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도덕적·지적·실용적(practical) 자질을 염두에 두고 있다. 구성원들의 이런 자질을 종합적으로 잘 발전시키는 정부가 좋은 정부라고 주장했다.

7. 맺는 말

밀은 자유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한편, 인간이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될 바람직한 삶의 모습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한다. 물론 절대 진리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리의 큰 테두리, 방향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밀을 소극적인 자유론자로 단순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를 사회주의와 대칭선 위에 놓는 것은 더구나 옳지 않다.

밀은 인간의 이성을 믿었다. 웬만한 상식과 경험을 지닌 사람이라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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