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학술연구 진흥과 미래의 연구개발
상태바
인문사회 학술연구 진흥과 미래의 연구개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4.04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술 토론회]_ 서울대 행정대학원, 〈인문사회 학술연구진흥과 국가 연구개발 운용체계 개혁 방향 학술 토론회〉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은 지난 3월 31(수) “인문사회 학술연구 진흥과 미래의 연구개발”을 주제로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했다.

최근 입법화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은 기본적으로 과학기술 중심 연구접근과 관리체계이나, 인문사회 연구 분야까지 적용 범위를 포함하고 있어 동 법의 관리체계에서는 인문사회 학술생태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상황이 초래한 방역체계의 붕괴와 재난 불평등 심화에 따라 인간과 사회의 문제가 강조되는 시국임을 고려할 때, 인문사회 학술연구를 통해 인간과 문화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다양성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은 임현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이종봉 부산대학교 사학과 교수(현 국공립인문대학장 협의회장),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한국조사연구학회장) 등을 초청해 인문학과 사회과학 학술연구 진흥과 국가 연구개발 운용체계 개혁 방향을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 기조발제: “한국의 미래, 인문사회 연구가 중요하다” … 임현진(서울대 명예교수, 한국학 중앙연구원 이사장)

임현진 이사장

우리의 경우 고등교육에 관한 대학정책에 비해 연구 생태계 조성을 위한 학문정책은 주변적이다. 기초학문은 투자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응용학문은 이에 대한 기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인문, 자연, 사회 분야의 기초교육이 바로 서야 공학, 의학, 예술 분야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최근 국가연구개발의 혁신이란 미명아래 과학기술계에서 주로 활용해온 규준을 인문사회 계열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려는 개정법률안은 인문사회 분야 연구의 독자성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부가 부처이기주의도 모자라 학문정책을 관료주의적으로 오도하는 발상과 행태는 인문사회과학의 자율적이고 상생적 발전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사회과학은 그것이 지니는 기초학문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현실사회에 대한 실용성으로 인해 정부와 민간 부문에 의해 단기적인 정책과제를 부여받음으로써 일종의 청소부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사회과학이 우리 나름의 자아준거적 문제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장기적 연구계획아래 우리 문제에 대한 독자적 성찰을 위한 연구과제를 다년 복합과제로 엮는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진영대립, 사회통합, 저출산, 고령화, 다문화, 양극화, 통일 등의 사회문제를 학술적·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 인문사회과학은 중장기 연구계획을 종합적으로 마련하여 한국사회에 걸맞은 자생적 지식생산의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무궁무진한 연구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지식수입에서 지식창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육과 연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기본 자료를 체계화하여 이를 토대로 한국적 이론화와 정책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은 분단국가임에도 경제력의 하드 파워와 문화력의 소프트 파워를 합쳐 세계 20권 안에 들어간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지만 이른바 30~50클럽이라 할 강중국(advanced middle power)으로 세계경제와 국제정치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흔히 질풍노도로 비유되는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 과정에서 인문·사회과학의 학술적이고 정책적 공헌은 매우 컸다고 자부할 수 있다. 사랑과 증오, 인간과 자연, 성장과 분배, 개발과 환경, 자유와 평등, 축적과 복지, 안전과 행복 등의 다양한 가치지향을 공공성의 차원에서 조합함으로써 오늘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견인해 온 것이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오늘의 한국 현실을 겸허히 반추(反芻)하면서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인문사회과학의 상상력과 창발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 발제1: “인문학의 학술연구진흥 현황과 과제·전망” … 이종봉(부산대 사학과 교수, 현 국공립인문대학협의회장)

이종봉 교수

급속한 사회 변화와 발전 그리고 개인 혹은 사회(국가)간 경쟁과 갈등이 심화하면서 인간의 존재가치와 존엄성이 상실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인문학은 사회의 경쟁과 갈등을 해소시키면서, 인간의 존재가치와 존엄성을 실현해 줄 수 있는 토대로서 계산할 수 없는 소중하고 다양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최근의 인문학은 사회 혹은 국가로부터 점차 소외되고, 왜소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은 인문학의 학술연구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인문사회의 본래적 연구영역을 위해서는 법령의 개정이 시급하다. 개정법안은 국회에 제출되어 있으므로 개정을 기대하고, 개정을 위해 교육부·연구자·재단 등이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반면, 과기부는 이를 지키려는 의지가 적극적이고 강하다. 따라서 인문학은 혁신법에서 분리시켜 특별법을 개정시켜야 한다.

인문학의 학술연구 진흥을 위해서는 별도의 법령과 함께 제도와 조직이 필요하며, 예산확보(재정지원 사업에 포함)와 함께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안정적 지원도 필요하다.

국가 R&D는 점진적으로 증가 추세이나 인문사회분야는 국가 R&D의 전체적인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 즉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문학 관련학과의 구조 조정, 특히, 서울지역(?) 외의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학과의 구조 조정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부산 지역의 경우, 현재 철학과는 부산대에만 존재하며 일부 대학의 사학과는 폐과 혹은 구조 조정으로 학과가 공중 분해되고 있으며, 일부 어학 관련학과 역시 구조 조정되고 있다.

일부 인문학 관련학과는 교수의 정년퇴직 이후 신임교수를 비정년 트랙으로 운영하거나 충원하지 않음으로써 연구자가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없애고 있다. 지역의 인문학 공동체 붕괴와 함께 인문학 연구자의 진로가 암울한 상황이다. 이는 전체 대한민국의 인문학뿐 아니라 다른 학문분야에도 영향을 끼친다. 

강사법 시행 이후 신진연구자의 강의시간이 많이 축소되었으며, 신진연구자에게 강의시간을 줄 수 없는 상황(3년 임용이 문제)이다. 대안으로 대학과 공공기관 등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서울대와 권역의 주요대학에서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지혜학교’는 학문후속세대에게 인문학 강의의 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은 학·석사, 석·박사 연계과정 등을 통해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대학원 진학 수는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맞춤형 학문후속세대의 양성체계가 필요하다.

인문학은人文, 人紋 등의 한자적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으므로, 인간의 심상, 가치, 의미를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는 학문이다. 따라서 현 단계의 인문학은 더욱 육성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문학 관련학과는 구조조정의 영순위이며, 인문학자의 설 자리는 더욱 없어지는 추세이다.

인문학을 국가가 진흥시키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와 정체성에 많은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과 관심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학술연구’란 관점에 있으므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의 ‘연구개발’이라는 논리적 구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인문학의 정체성을 위해 ‘혁신법’을 하루 빨리 개정시킬 필요가 있으며, 인문사회 즉 기초학문진흥을 위한 상설적인 협의체의 가동이 필요하다.


■ 발제2: “사회과학 진흥과 바람직한 연구개발 운용체계” … 설동훈(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조사연구학회 회장)

설동훈 교수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제정 이유는 현재 중앙행정 기관별로 다르게 운용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이 통합적·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 전반의 비효율과 불필요한 부담을 제거함과 동시에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연구개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범부처 공통규범의 제정이 필요한 상황인 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추진에 대한 범부처 공통규범으로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혁신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국가연구개발체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회과학자들은 학자마다 즐겨 사용하는 연구방법이 다르고, 한 사람이 여러 방법론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회과학 연구방법론뿐 아니라 이론구성, 인간관, 사회관, 역사관 등 다른 접근법이 혼재되어 있다. 또한 ‘사유에 바탕을 둔 인문학적 사회과학’부터 ‘자연과학과 유사한 체계를 갖춘 사회과학’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따라서 획일적인 학술지원 체계는 불가능하므로 “모든 국가연구·개발에 적용되는 법령”이라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의 적용 범위를 좁혀야 한다.

사회과학자에게 자연과학/공학 등의 실험일지/연구노트에 해당하는 서류를 “의무적으로” 작성하게 하는 발상은 ‘방법론적 일원론’에 바탕을 둔 사고이다. 관찰, 실험, 조사 등 실증주의적 방법을 사용하는 사회과학 연구자도 그의 연구 전 과정에서 설명과 해석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므로 일정 단계에서 연구노트 작성을 ‘권장’할 수는 있으나 ‘의무’로 부과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요컨대 해석학적 방법 또는 다른 연구방법을 사용하는 사회과학자에게 연구노트를 강요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연구현장의 불필요한 행정 부담을 줄이고 연구개발 투자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해당 ‘현장’에 인문·사회과학자 등이 포함되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정작 일선 연구현장에서 인문사회 분야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연구기관, 연구자들과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혁신법이 제정된 지금도 대부분의 인문사회예술 분야 연구자들이 혁신법이 제정된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는 혁신법 제정 과정에서 관련분야의 의견 수렴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는 강력한 반증이다. 

법을 그대로 두고 하위법령 또는 규정/지침 등으로 인문사회 과학자에게 예외를 설정하는 방법은 “모든 국가연구개발에 적용되는 법령”이라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제정 취지에 위배된다. 즉, 하위법령에 지속적으로 예외규정을 둔다는 것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의 목표와 근본적으로 어긋나므로 법의 개정이 필수적이다.

정부(또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학술지원 사업은 사회과학 학문연구의 방향을 결정하고, 교수채용과 평가 등 대학사회에도 강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평가제도는 국내 연구논문의 수준을 향상하는 결과를 낳았고, 대학은 그 점수를 전임교원 채용과 연구업적 평가에 사용하였으며, 대학평가기관은 그 점수를 활용하고 있다. 소위 ‘사회과학연구에서 한국연구재단 체제‘의 등장이다.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는 논문의 질보다는 편수를 중시하고, 연구단행본(monograph)을 저평가하게 만든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회과학의 학문분류 체계도 각 학문의 자율성보다는 정부(또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 분야 학술지원사업 기준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연구개발 운용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자연과학 모델에 바탕을 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시급히 개정하지 않으면 인문사회과학 학문생태계를 위협할만한 독소조항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