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편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뿐이다”
상태바
“편견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편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뿐이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4.04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편견의 이유: 행동과학자가 밝혀낸 차별과 혐오의 기원 | 프라기야 아가왈 지음 | 이재경 옮김 | 반니 | 460쪽

이 책은 행동과학자 프라기야 아가왈이 우리가 왜 이토록 편견에 쉽게 빠지는지 추적하고 편견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저자는 성별과 외모, 나이와 직업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뇌부터 인간의 고정관념을 학습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까지, 우리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편견을 탐구한다.

저자는 편견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고 말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무의식적 편향’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탑재한 생각 도구에 가깝다. 예컨대 자연 세계에서 정확성보다 판단속도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간단한 사고 과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졌고 이것이 편견의 일종이 된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확증편향을 비롯한 심리학, 편도체 반응을 둘러싼 뇌과학 등 편견에 관련한 여러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이 왜 편견에 취약한지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성, 인종, 외모에 관한 차별이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양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편견은 왜 생겨날까? 저자는 가장 먼저 편견이 생겨나는 원인으로 ‘환경’을 든다. 편견이 생겨나는 진화적 이유도 있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암묵적 편향을 주로 세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휴리스틱 이론이 대표적이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제시한 휴리스틱은 ‘인지 지름길’을 의미하는데 매순간 수없이 많은 정신작용을 수행할 부담을 덜기 위해 그간의 경험이나 쉽게 얻어지는 몇 가지 정보만으로 판단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진화 시간이라는 무구한 세월에 걸쳐 인간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본다. 

우리 뇌의 편도체도 편향적 반응을 부추긴다. 편도체는 뇌의 정서학습장으로, 감각기관에서 바로 정보를 받아들여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이 안전한지 결정한다. 특히 위험한 환경과 공포와 민감하다.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은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정보를 모두 해석할 짬이 없기 때문에 편도체가 하루에 수십억 개의 자극을 처리하고, 무엇에 집중할지 순식간에 판단한다. 이때의 판단은 온전히 처리된 해석이 아니라 즉흥적 연상에 의지하는데, 남들을 ‘나와 같음’과 ‘나와 같지 않음’으로, 결과적으로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추상적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단순한 범주화는 편견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한 개인의 편견은 차별과 혐오라는 사회 문제로까지 번진다. 개인의 한 가지 속성, 예컨대 성이나 외모, 키, 옷차림 등을 보고 편견에 기대 모든 걸 판단하고 표현하는 게 성차별, 외모차별, 인종차별이다. 여러 편견이 뒤섞인 차별도 있다. 나이든 여성에게는 나이와 여성을 둘러싼 편견이 얽혀 더욱 가혹한 시선이 달려든다. 

원서 & 저자 프라기야 아가왈

저자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암묵적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논한다. 특히 우리가 부모, 양육자, 교육자로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암묵적 편향을 이식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암묵적 편향이 훈육 과정과 인생 경험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해하고 미래 세대에게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회의 편향을 최소화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가지 방법은 일상의 언어에서 사회적 범주화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다. 예컨대 ‘남자아이들’이나 ‘뚱뚱한 친구들’처럼 집단 전체를 지칭해 일반화하기보다 ‘그 아이는 수학을 잘해’처럼 특정 속성을 개인화ㆍ구체화해 표현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는 해당 속성이 집단 전체에 종속된 자질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집단 간 차이를 강조한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본질주의 사고와 고정관념을 누르고 집단 사이에 완고한 경계가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 또 기존규범에 부합할 필요와 기대를 낮추고 무의미한 집단구분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저자는 타인의 관점을 들여다보려는 의식적 노력 등도 강조하며, 무의식적 편향이 차별과 혐오의 변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무의식적 편향이라고 해서 언제나 무의식적이고 개인의 통제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판단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통제 가능한 편향도 많다고 말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편견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나는 개인 차원의 편향 대처가 사회적·구조적 불공평과 부당성 극복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저자의 연구를 따라가다 보면 편견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편견이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의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편견을 어떻게 인지하고 표현할지는 개인의 책임에 달려있다고 말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인간은 편향적 사고에 취약하다는 자각이 이성적 판단의 첫걸음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우리가 편견에 휘둘리지 않도록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무의식적 편향이 차별행동의 핑계로 이용될 위험이 있다. 이에 따라 무의식적 편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근거가 되는 과학 원리와 이론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언제나 자각이 첫걸음이다. 자각 없이는 대처도 있을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