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도덕의 민중사상과 농민잇키의 민중투쟁을 중심으로 조명한 일본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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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도덕의 민중사상과 농민잇키의 민중투쟁을 중심으로 조명한 일본사상사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3.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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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근대화와 민중사상 | 야스마루 요시오 저 | 이희복 역 | 논형 | 480쪽

이 책은 역사를 추진하는 근원은 민중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통속도덕의 민중사상과 농민잇키百姓一揆(영주 및 관리 등의 수탈에 맞선 농민들의 무장 봉기)라는 민중투쟁을 중심으로 일본의 근대화와 민중사상의 상호관련성을 역사적 방법을 활용하며 추적한 연구서다. 

일본은 페리 내항을 계기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시스템에 본격 편입되었다. 특히 메이지유신이라는 정치변혁 이후 문명개화를 내건 근대화정책과 더불어 일본자본주의는 본원적 축적과정을 가속화하였다. 그것과 반비례로 민속적 공동체였던 민중생활은 완전 해체되었다. 자연발생적으로 표출된 것이 농민잇키를 비롯한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이라는 반동현상이다. 이 책은 그 현상이 어떤 민중적 세계관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했는가, 나아가 민중운동으로서 어떻게 조직하여 봉기할 수 있었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여기서 민중사상이란 근면, 정직, 검약, 효행 등 민중들이 안정된 생활을 위해 규범화한 생활상의 통속도덕이며, 민중봉기란 체제 권력의 압제와 수탈에 대항하는 민중들이 체제 권력에 어진 정치의 시정을 요구하는 인정仁政이데올로기를 활용하며 전개한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이었다.

저자는 막번제사회를 거쳐 근대화과정에 전개된 일본적 지배이데올로기와 민중사상의 상관관계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연구하였고, 그 결과 일본역사의 어두운 그늘에 가려져 있던 민중사상의 특징을 발굴하였다. 나아가 역사적 전환기마다 표출된 민중운동의 조직형태 및 의식구조를 심도 깊게 분석하였다.

야스마루 요시오

18세기 전반기 형성된 민중적 통속도덕은 막번 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인 유교도덕이 하강하면서 생성된 민중의 생활규율이며 생활철학이다. 특히 상인 출신의 교육사상가인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이 설파한 석문심학石門心學은 피폐해진 농촌사회를 부흥시키는 보덕사운동報徳社運動으로 확산·발전하여 19세기 중반 천황제국가로 재편된 근대 일본의 하부를 지탱하는 국민사상으로 변모하였다. 그 핵심사상은 민중의 자기형성과 자기단련으로 다져진 유심론적 마음心철학이다. 이 철학은 유심론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자기변혁의 논리로서도 유용했다. 이로써 민중은 자신이 해야만 할 정당성에 대해 신념을 확립할 수 있었다.

민중은 주술적인 것을 부정하므로 인간 내부에 숨어 있는 가능성에 대해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교의식의 핵심은 유심론적 세계관으로 전환되고, 인간의 주체적 계기를 강조했기 때문에 농민잇키와 요나오시(사회개혁을 위한 농민봉기) 사상은 사람들에게 생활태도의 근본적 변혁을 요구하는 논리가 되었다. 즉 일반민중은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권력의 지배는 물론이고 관리나 상업 고리대자본으로 고통을 받거나 이용당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가 마음속 깊이 축적되어 가고, 스스로 수용하고 있는 도덕률을 기준으로 비판적인 눈으로 지배계급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마루야마교의 요나오시적 사상을 볼 때, 주술과 환상을 극복한 민중 자신의 독자적 질서가 구상되었던 것이고, 확고한 사상형성=주체형성을 성취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상형성=주체형성에 기초하고 있는 범위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은 구체적이고 예리하게 지속되었다.

자본주의적 세계시스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어 가면서, 생산자가 그 생산수단을 수탈당하는 원시적 축적과정이 심화되어 가고 상부로부터 전개된 근대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실행되어갔다. 특히 폐번치현이 실행된 1871년을 중심으로 유신정부가 사람들의 원성의 표적이 된 것은 여러 정책을 추진하면서 민중의 생활을 곤궁에 빠트리고 농락했기 때문이었다. 불환지폐의 남발과 개항무역을 수반한 물가폭등, 학제와 징병제 그리고 태양력과 지조개정 등의 여러 정책이 민중에게 전대미문의 커다란 불안과 의혹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막번제 사회는 이적, 이단, 자연재액災厄, 도적, 또 어느 정도까지는 천민 등을 〈타자〉로서 조정하며 강력하게 배제하는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민중에게 있어 유신정권과 그 정책들이 이인異人 또는 야소교(그리스도교)와 결부되어 의식된 것은 중요하다. 이인이란 민중의 환상적 공동성의 세계 범주에서 보면, 원래 〈밖의 사람=타자〉이며 그런 연유로 그의 존재 자체가 민중의 공동체적 세계를 위협하는 절대적인 〈타자〉였다. 이른바 신정반대 잇키新政反對一揆는 이러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거기에는 민중을 위협하는 신정부의 중추를 이인이라 여기고, 그러한 이인을 배제하는 곳에 민중의 행복과 안녕이 있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메이지국가가 군사적 집권국가로서 군림하고 위로부터의 근대화정책이 일정한 정착성을 갖게 되자, 일찍이 요나오시 잇키나 신정반대 잇키에서 표현된 것과 같은 민중의 원망願望은 근대화하고 팽창해 가는 일본제국의 보호 아래 안온과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오랜 잇키의 전통과 그로부터 생긴 가능의식은 살신성인식의 의민담義民談만 남고 역사의 어두운 곳에 매장되어 버렸다. 민중이 그 안온과 행복을 지배 권력으로부터 자립한 자신의 가능성으로 마음에 그리는 길은 결국 폐쇄되었고, 사람들의 진정한 원망願望과 인간다움은 국가와 자본의 논리에 예속되고 사취되어 그 지배를 위한 여러 계기로 변모해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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