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혐한과 반일에 갇혀 있을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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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혐한과 반일에 갇혀 있을 여유가 없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3.2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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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화해와 협력 공존의 청사진 | 강상중 지음 |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32쪽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에 태어난 저자 강상중은 자기 삶의 한가운데에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새겨놓았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 2세라는 정체성과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그를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 위의 존재’로 만들었다. 그는 이 경계 위에 서서 한반도와 일본은 물론 그 주변국에서 벌어진 사건의 의미를 밝히고, 그 속에서 벌어진 갈등과 평화를 위한 시도들을 정리했다. 그 결과 한반도와 일본을 둘러싼 갈등을 끝낼 방법은 한반도 분단 체제를 해체하는 길뿐임을 확인했다.

‘평화’와 ‘통일’이라는 말이 코앞까지 다가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은 한국인에게 익숙하다. 1972년의 「7·4 남북 공동성명」, 19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 2000년의 「6·15 남북 공동선언」 등을 비롯하여 남과 북은 수차례나 평화와 통일을 약속하며 손을 마주잡았지만, 그 약속들은 이내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은 ‘거짓말쟁이이며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앞에서는 평화를 약속하고, 뒤에서 핵무기를 개발했다’ 같은 불신이 점점 커졌다. 어쩌면 2018~19년의 상황도 이전과 같은 해프닝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이 책에서 강상중은 이 익숙한 후퇴를 다르게 해석한다.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은 남북 갈등과 한반도의 위기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착실히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평화와 통일은 어느 한순간 휘몰아치듯 찾아오지 않으며,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는 결코 비약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세우고, 그 아래에서 남과 북이, 그리고 일본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의 주변국이 함께 만들어온 화해와 협력(때로는 적대와 갈등)의 시도들을 정리한다.

강상중은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의 기원을 냉전 하에 형성된 한반도 분단 체제에서 찾는다. 그리고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분단 체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질서, 즉 종전 평화 체제가 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갈등 해결의 모델로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남북한과 주변 4대국이 참여한 6자회담, 그리고 독일 통일의 예 등을 차례로 제시한다. 남북한과 전 세계가 이미 거쳐 온 과정 속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위기 속에서 기회를, 비관 속에서 낙관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고 말하며 평화와 통일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한다.

남북, 북미 협상이 소강상태에 빠진 사이에 한국은 일본과 마찰하기 시작했다. 그 발단은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게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확정한 일이다. 이후 일본 정부의 무역 보복 조치와 한국 국민의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 그리고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검토 등이 잇달아 벌어졌다. 강상중은 이 흐름을 한일 양국이 그동안 분리해 관리하던 “경제, 안보, 역사의 영역이 한데 뒤섞이며 전면 대립의 양상을 띠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의 계획에 따라 동북아시아의 축과 바큇살로 세계에 편입된 두 나라는, 역사 문제를 제대로 봉합하지 않은 채 경제와 문화 분야의 교류, 협력을 늘려왔다. 그러나 양국이 2015년에 맺은 「위안부합의」가 무산되고, 이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확정 판결까지 나오면서, 역사 문제를 봉인해놓았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강상중은 한국에게 일본은 북한 및 미국과의 협상이 교착에 빠졌을 때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한다. 1980년대 후반에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이 노태우의 북방 외교를 지원하며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지지했던 일과 2000년대 초반에 고이즈미 내각이 북일 관계를 진전시키며 북미 교섭을 중재했던 일 등을 예로 든다. 그에 비해 아베 신조 내각은 압박 일변도의 대북 강경책만 고집하며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일본의 역할을 스스로 축소시켰다고 비판한다.

강상중은 한일 반목의 한 원인으로, 정치 엘리트의 세대교체를 지목한다. 과거에 두 나라는 서로의 문화적 차이나 국민감정을 깊이 이해하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두터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정계의 세대교체를 거치며 연결 고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양국은 “긴밀한 우호협력의 파트너”이자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로 설정했던 상호 관계를 격하시키고 갈등에 국력을 소모하고 있다. 이 책은 갈등의 해결을 위해 상호 이해를 확대하고 「한일 기본조약」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이해는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공감과 미래의 공존을 위한 협력을 포괄한다. 그다음으로 「한일 기본조약」은 숱한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관계를 규정하는 기초이자 전부라고 덧붙인다. 만약 어느 쪽이든 이를 부정한다면 한일 관계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강상중은 한일 양국이 「한일 기본조약」을 상호 준수하며, 그 위에서 1965년과 현재의 차이를 다시 해석하고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가 진정으로 평화와 협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를 자신의 경험과 감각에 의지해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난 70년간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벌인 외교 협상과 그 결과인 합의·조약들을 바탕으로 보다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미래를 제시한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와 그 주변국이 만들어온 협력의 조류가 마침내 한 방향으로 합쳐져 흐르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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