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그림으로 짚어보는 철학과 철학자의 존재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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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그림으로 짚어보는 철학과 철학자의 존재 의미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3.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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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의 거울: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 | 유성애 지음 | 미진사 | 360쪽

이 책은 바로크의 철학자 그림을 통해 오늘날 철학의 역할과 철학자의 존재 의미를 읽어낸 미술 에세이이다. 자기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화해를 모색할 때 비로소 도달하는 순간의 인간, 철학자. 이 책에서는 바로크 시대의 철학자 그림을 통해 오늘날 철학의 역할과 철학자의 존재 의미를 돌아본다. 17세기에 특히 유행했던 철학자 그림에 궁금증을 품은 저자는 당대에 철학자가 의미 있는 존재였다는 판단 아래 작품의 탄생 배경을 가늠해간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까만 동굴 같은 입속. 온갖 불행을 누더기에 기워 걸친 듯한 한 남자가 웃고 있다. 그의 이름은 철학자. 늙고 초라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환한 웃음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림 속 철학자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다. 생의 파도에 휩쓸리는 연약한 인간. 짧은 여행길 이국의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마주한 저자는 궁금증을 안고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 탐색의 흔적을 담은 이 책에서 지나간 시대의 철학자 그림을 통해 오늘날 철학의 역할과 철학자의 존재 의미를 돌아본다. 이토록 많은 철학자 소재 작품이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당대에 철학자가 의미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의 단서가 아닐까. 저자는 이러한 판단 아래 철학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수집하고, 그 탄생 배경과 의미를 가늠해간다. ‘철학자는 왜 누더기 차림에 빈루한 모습일까? 어째서 그는 웃고 또 우는가? 한낮에 등불을 켜고 있는 이유는 뭘까? 컵을 버림은 어떤 의미인가? 철학자의 자리는 동굴일까, 거리일까? 지혜는 여성으로 의인화되지만 여성 철학자상은 없는 이유는 무언가? 그리고 화가는 왜 자신을 철학자로 그렸을까?…’ 

떠오른 질문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책과 자료를 뒤적이면서 저자는 그 이유를 헤아려본다. 누더기 철학자 도상에서 철학자로 분한 화가의 자화상에 이르기까지, 익숙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모으고 그림 속 순간에 머물면서 저자는 자족, 자유, 선택과 운명, 실천과 이론, 나이 듦과 죽음, 망각과 기억 등 관련 키워드들의 당대적 맥락을 읽으며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를 살핀다. 이 찬찬한 문답과 사색 가운데 그림을 거울삼아 자신을 들여다보는 한 사람, 저자 자신의 자화상이 비쳐난다. 

“화가의 거울에 비친 철학자는 진리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그의 삶을 만들고 때로 짓누르는 철학함의 무게가 드러날 뿐이다.” 이 찬찬한 문답과 사색 가운데, 마침내 철학자의 희미한 얼굴이 드러난다. 자기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화해를 모색할 때 비로소 도달하는 순간의 인간, 철학자. 이와 더불어 그림을 거울삼아 자신을 들여다보는 한 사람, ‘나’의 자화상이 비쳐난다. 책에 인용된 헤겔의 말처럼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은 정신에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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