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이란 무엇이며, 오늘날 계급 문제는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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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이란 무엇이며, 오늘날 계급 문제는 왜 중요한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3.21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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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급이란 무엇인가?: 갖가지 불평등의 원인을 이해하는 열쇠 | 린지 저먼 지음 | 최병현 옮김 | 책갈피 | 176쪽

이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생각은 상식처럼 퍼져 있다. 그래서 불평등을 폭로하고 나름으로 그 원인을 진단하는 책은 이미 많다. 그렇지만 이 사회의 동학을 꿰뚫어 보며 그것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불평등을 양산하는지 밝혀내는 책, 그래서 이 불평등을 없앨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은 거의 없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계급론으로 이를 설명한다. 특히, 계급 문제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쓴 쉽고 명쾌한 입문서로, 이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사회 계급들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 준다.

저자 린지 저먼은 영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사회주의자로,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200만 명이 참가한 2003년 반전 시위를 이끄는 등 2000년대 초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이 시작할 때부터 전쟁저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가디언〉과 여러 좌파 매체에 활발히 기고하며 계급ㆍ여성해방ㆍ개혁주의에 관해 많은 글과 책을 썼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계급 불평등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역사적 사례를 풍부하게 들며 독자들이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에 쉽게 접근하도록 안내한다.

이 책은 다섯 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에서는 노동·주택·주식·건강 등 우리가 삶의 여러 측면에서 체감하는 계급 불평등을 날카롭게 폭로하는 것에서 시작해, 흔히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계급을 구분하는 것이 잘못임을 지적하며 계급이 무엇이고 왜 어떻게 형성됐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2장에서 4장까지는 노동계급, 자본가 계급, 중간계급이 각각 누구인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 살펴보며 계급 문제를 둘러싼 주요한 쟁점을 다룬다. 5장은 노동계급이 정말 이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노동조합의 구실과 한계는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리고 여러 통계 자료를 들어 현실을 실증적으로 분석하는데, 이 책이 쓰인 이후의 최신 통계 자료가 각주로 달려 있어 이 책의 분석이 여전히 유효함을 잘 보여 준다.

이 책이 다루는 쟁점들은 시대에 뒤처지기는커녕 오히려 요즘 한국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1990년대 선진국 노동운동이 직면한 현실과 유행 담론이 대부분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지난 20년간 두 차례의 심각한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노동계급의 구성변화를 경험했고 그에 따른 다양한 혼란이 노동운동 안에 퍼진 탓이다.

원서 & 저자 린지 저먼

제조업 비중의 하락을 노동계급의 쇠퇴로 본다든지, 비정규직의 증가나 그 효과를 과장하며 노동계급이 저항할 힘을 잃었다고 본다든지, 서비스업 비중과 여성 노동의 증가를 노동계급의 확대로 본다든지 등이 그것이다. 이런 오해와 착각은 노동계급의 전형처럼 인식되던 부분이 더는 전처럼 전투적이지 않다는 인상과 결합되면서, 노동계급이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주체’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개 일부의 변화를 과장한 단견에 불과하다. 이 책은 이런 시각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계급 문제를 깊이 알 수 있게 해 주며, 계급이란 무엇인지, 오늘날 계급 문제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도움을 준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수단을 혁신해 왔고, 그에 따라 산업이 변화하고 노동계급의 구성도 변화했다.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노동계급의 구성변화를 노동계급의 종말로 보는 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 알 수 있다. 수십 년 전이나 1세기 전에도 노동계급의 쇠퇴나 종말을 주장한 사람들이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그들이 그렇게 착각한 변화는 오히려 새로운 노동계급의 출현과 투쟁을 이끌었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해 노동계급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는데, 자본주의 역사가 긴 영국의 사례는 압축적 산업화를 경험한 한국보다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이점이 있다. 기술혁신과 노동 형태의 변화, 노동계급의 구성 변화에 대한 논의는 최근 관심이 뜨거운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를 이해하는 데도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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