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실효적 가상…비평은 문학의 '내부로부터 외부로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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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실효적 가상…비평은 문학의 '내부로부터 외부로의 전개’
  • 조강석 연세대·국문학
  • 승인 2021.03.2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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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틀뢴의 기둥』 (조강석 지음, 문학과지성사, 430쪽, 2021.02)

이 책의 근본 취지는 문학의 실효성을 재규정하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접힘과 펼침의 장소로서 문학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가상이면서 그 자체로 내적 실재를 구성하는 문학이 내부로부터 발원하여 외부로 펼쳐지는 방식을 설명해보려는 노력의 소산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이다. 작용과 효과로서 문학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언제나 결과적으로 그리고 사후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문학은 언제나 귀납을 통해서 작동하며 그 실효성을 넓혀가는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연역도 문학에서는 주인이 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감산 과정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가능할 것이다. “풀자면 풀리지만 풀면 사라진다.” 그러니 저 얽힘이 문학 그 자체이다. 공들여 엮은 미묘한 마디들을 모두 끊어놓고 결국 문학이 사라진 자리에서 팻말 하나 건사하는 것으로 문학의 실효성을 설명할 수는 없다. 문학에서는 과정이 곧 목표이기 때문이다. 문학이 아니어도 좋을 여지를 남기고자 한다면 애호가의 자리에 머물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비평이라는 숙명을 택한 이상 어떤 감산도 계산에 둘 수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왜 우리가 구태여 문학을 읽겠는가? 문학의 실효성은 넘쳐나는 연역의 팻말에서가 아니라 귀납과 구체성과 얽힘의 미광(微光)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이때 미광이 곧 최소기대치를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 김수영은 산문 「삼동유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마루의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의 조용한 물 끓는 소리다. 조용히 끓고 있다. 갓난아기의 숨소리보다도 약한 이 노랫소리가 (중략) 거수(巨獸) 같은 현대의 제악(諸惡)을 거꾸러뜨릴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힘들지만, 못 거꾸러뜨린다고 장담하기도 힘든다.” 어떻게 갓난아기의 숨소리보다도 약한 주전자의 조용한 물 끓는 소리가 저렇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문학이 감각의 역치값을 조정하는 기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결과적으로 실효적 가상이다. 문학이 가상이라는 것은 하나의 입장이 아니라 일종의 토톨로지tautology다. 중요한 것은 저 가상의 영역의 기둥을 묵묵히 밀고 가는 것이다. 움직이는 변경이 문학의 역설적인 경계이기 때문이다. 현실 밖이 아니라 안에, 아래에, 기저에, 구조 속에 존재하되 가시적 영역의 질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비가시적 실재, 그것의 미래에 대한 시간 착오적 향수가 문학이다. 그것은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의 거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충동’을 보유함으로써 세계를 기울인다. 오늘의 세계를 구성하는 바로 그 질료들로 저본(底本)이면서 동시에 이본(異本)인 세계를 내밀어놓는 것이 문학이다.

책의 제목에 있는 ‘틀뢴’은 보르헤스의 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우스 테르티우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여기서 틀뢴은 실제 현실 세계의 물리적‧도덕적 법칙에 기초해 축조된 것이되 그것과는 다른 방식의 독자적 운영 체계를 지니고 있는 독립적이고 정합적인 세계를 뜻한다. 동시에 틀뢴은 형이상학적인 관념들의 집합이 아니라 현실과 비스듬히 서 있는 또 하나의 실재를 의미한다. 이는 곧 문학이 아니겠는가? 문학이 내적 실재를 구성하는 가상이라는 말은 결국 가상과 실재를 구획하는 기둥을 헤라클레스처럼 언제까지나 밀고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그 운동 속에서 필자는 세 가지 이정표를 제시해 보았다. ‘문학의 실효성’ ‘이미지 사유’ ‘모티폴로지motiphology’가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책의 세부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부 헤라클레스의 기둥과 ‘예술 의지’>에서는 2000년대 중후반 이후의 소위 ‘미래파’에 관한 소론부터 최근의 한국 시단의 여러 현상들을 돌아보며 시인들이 어떻게 한국시의 새로운 몸을 만들었는지에 주목했다.

 <2부 문학의 실효성에 대하여>에서는 동시대의 삶의 조건을 다룬 일련의 소설들이 한국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정동적 동요’가 충분히 시의적절하며, 그러한 요구에 한국 문학이 응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정치적 올바름 테제에 부응하는 것이 소설의 실효성의 전부일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했다. 

 <3부 21세기 몰리뉴 사고실험>과 <4부 이미지-사유의 별자리들>에서는 비가시적 실재의 양상을 이미지 사유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근경에서 들여다보았다. 

<5부 모티폴로지 2020>에서는 동시대의 시와 소설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주제 혹은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보았다. 모티폴로지(motiohology)라는 말은 모티프(motif)와 모폴로지(morphology)를 결합한 조어로, 여러 양상으로 생성되고 변형되는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들을 살펴보기 위한 필자가 렌즈 삼아 고안한 개념이다. 

이처럼 이 책은 결국 문학의 ‘내부로부터 외부로의 전개develop from within’를 비평의 주요 업무라고 믿고 방법을 구하고자 노력한 경과를 담은 책이다. 메시지 중심의 패러프레이즈를 지양하고 문학을 내적 실재로 간주하며 이 세계의 자기전개 양상을 세심히 들여다보는 것이 궁극에는 감각의 역치값을 재조정하여 삶을 확장하는 방편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조강석 연세대·국문학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비평 활동 시작. 저서로 『아포리아의 별자리들』, 『경험주의자의 시계』, 『비화해적 가상의 두 양태』, 『이미지 모티폴로지』, 『한국문학과 보편주의』가 있음. 현대문학상, 김달진젊은평론가상 수상.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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