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상태바
고도를 기다리며
  •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 승인 2021.03.21 1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베르타스]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대학 1학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화사한 봄날을 배경으로 선 나의 모습이 몹시 스산하던 때, 나의 정체성에 대해 극심한 고뇌에 빠져있던 때, 이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란한 성장통을 겪고 있었는데, 그 성장통을 일순 다독여주던 책이 바로 사뮈엘 베케트가 쓴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이후 횟수를 기억하지 못할 만큼 여러 차례 읽었다. 밑줄 그은 부분 위에 또 밑줄을 그어가며. 여러 해 전,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한 『고도를 기다리며』까지, 나는 이 작품을 연극으로도 열다섯 번을 봤다. 불편하면서도 따뜻한 위안을 받으면서. 이렇듯 『고도를 기다리며』는 수차례 읽고 봐도 의미의 결이 항상 새롭게 각인되는, 삶의 깨달음을 더해주는 놀라운 작품이다.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제1막의 무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제2막은 “다음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설정된다. 이러한 무대 설명이 작품을 지배하는 주된 정조이기도 하다. 상상력을 한껏 부추기는 설정 덕분이다.
   덩그렇게 서 있는 한 그루 나무를 배경으로 두 방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등장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고도를 기다리는 일뿐이다. 그러나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고도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다(이 작품을 쓴 작가조차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다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오랜 세월에 걸쳐 기다리는 존재가 고도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지, 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들은 고도가 실제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끊임없이 기다린다. 갑을 관계인 포조와 럭키도 등장한다. 그리고 작품의 말미에, 고도가 오늘은 올 수 없고, 내일은 반드시 온다고 알리는 소년이 등장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도.

       에스트라공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가면 안 되지.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그들의 기다림은 하도 오래되어서 기다림의 시간과 공간조차 무색해진다. 여기서 작가의 내밀한 재기가 엿보인다.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이 견디는 유일한 방법으로 ‘말’을 선택하는 것이 그것이다.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서로 질문하고 되받고 욕하고.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의사소통이나 공감을 위해 나누는 대화와는 거리가 멀다. 반복되는 그들의 수다는 오직 고도를 기다리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일 따름이다. 그들의 수다 속에 더러 침묵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수다를 그만 끝낼 수는 없다. 그들이 주고받는 허망한 말들은 고도가 오면 언젠가 기다림이 끝이 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기다림이라는, 거의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따름이다. 그러므로 2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은 2막이어도 좋고, 3막, 4막이어도 좋다. 매번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니까. 어쩌면 영원히.
   “아무도 오지도, 가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정말 끔찍해.” 에스트라공이 하는 대사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또는 우리가 처한 2021년 봄,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기다림밖에 기대할 것이 없는 현실. 
   그래서 2막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에는 특별한 줄거리가 없다. 오로지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쉼 없이 구르는 돌을 들어 올려야만 하는 시지프스의 신화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부조리극은 인간 존재 또는 인간 삶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부조리극이 이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기 때문에, 작품들은 허무주의와 유머가 독특하게 뒤섞인 형태가 된다. 이 때문에 부조리극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을 무색케 하는 역사적 사건. 1957년 뉴욕 샌 퀜틴 형무소에서의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은 두고두고 연극사에 언급될 만큼 유명하다. 단지 여배우가 출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도소 측에 의해 채택되었고, 연극은 뜻밖에도 죄수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자아냈다. 연극을 지켜본 죄수들은 일제히 “고도는 사회다”, “고도는 자유다”라며 감동을 쏟아낸 것이다. 부조리극 하면 무조건 난해한 연극이라는 공식을 깨버린 사건이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접하면 오히려 절절하게 다가오는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는 작품.

   그러므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내맡기고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는다면, 여러분은 아마 굉장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희곡이니만큼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좋다.

       블라디미르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이 작품의 끝부분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여러분은 여러분이 블라디미르 또는 에스트라공이 되어 허허로운 무대에 내던져질 것이다.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도를 기다리는. 허망하지만 그러나 결코 허망하지만은 않은. 코비드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춘분이라고 진달래며 벚꽃들이 속 온전히 내놓고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면.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시인·문학비평가.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현대시)을 전공하였다. 1990년 『문학예술』 제1회 신인상 시 부문 당선, 1991년 『심상』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익숙한 소리』(시집), 『현대시와 문화의식』, 『한국전쟁과 시』 등이 있으며, 그 외 공저로 『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한국 서술시의 시학』, 『한국 현대문학의 성과 매춘』, 『몸의 역사와 문학』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