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신분제 사회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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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신분제 사회의 도래
  •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
  • 승인 2021.03.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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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21세기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 한국사회의 현재 모습은 대단히 다양하게 인식된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너무도 급속하게 변하면서,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변화가 누적되어 미처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현실에서 한국사회는 쉼 없이 새로운 모습을 더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잘 인지되지 않는 변화는 새로운 신분사회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신분사회는 과거 조선시대처럼 태어날 때 주어진 사회적인 신분이 아니라 태어난 이후 만들어진 신분에 따라서 대우를 다르게 받게 되는 신분사회이다. 

조선시대의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대를 이어 유지된다는 점에서, 귀속적 신분이라고 불린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귀속적 지위는 사라지고, 그 대신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서 성취되는 성취적 지위가 지배한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는 교육을 받을 기회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누구에게나 보장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일에 대한 보상도 신분이 아니라 성과를 중심으로 하고자 한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는데, 일에 대한 보상은 왜 다른가? 일의 성과가 차별적인 보상을 받을 만큼 크게 다른가? 그리고 그러한 차별적 보상에 대해서 고용주와 일에 대한 보상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 다른 사람들은 왜 일에 대한 보상의 차이를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이러한 임금 차별은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사이, 대학의 시간강사와 대학교수 사이, 고등학교의 교사와 기간제 교사 사이, 서비스 업종의 정식 직원과 아르바이트 노동자 사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새로운 신분사회에서 일에 대한 기회나 일에 대한 보상이 일 자체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사회적인 지위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국적, 연령, 젠더, 고용형태 등이 신분적인 요인으로 작동한다. 노동력을 공급하는 공급자의 사회적 속성에 따라서 동일한 노동성과에 대한 보상이 달라진다.  

시장원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속성보다는 시장에서의 성과에 따라 일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지칭한다. 동일한 조건에서 이윤이 많은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윤이 적은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임금 수준이 높다. 시장에서의 성과가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성과가 없는 경우나 손해가 더 큰 경우, 기업은 도산하게 되고, 일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시장경제에서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신분사회에서는 시장의 원리가 아니라 신분의 원리가 작동한다. 일을 하는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 보상에 영향을 미친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저학력자이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일에 대한 보상에서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 성과가 아니라 사회적 신분이 보상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신분의 원리가 시장의 원리를 대체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사회는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혹은 유지하기 위하여, 봉건적인 유물로 여겨왔던 신분을 자신들도 모르게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신분 의식은 신분이 낮다고 여겨지는 집단에 대한 편견에 기초하여 차별과 사회적 배제로 이어진다. 때로는 이들 집단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기도 한다. 

스마트폰, 화상수업, 인공지능, 자율 주행차 등 놀라운 현실이 나타나면서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있는 사회에서 새로운 신분사회가 대두되고 있다. 디지털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신분사회의 도래는 사회변동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과학과 기술이 자동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는 성찰적 시민들만이 미래 한국사회를 보다 성숙한 사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 영역은 사회 불평등, 비교사회체제, 민주화와 정치 발전 등이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비판사회학회 회장, 스칸디나비아학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중앙대 사회학과 CAU-Fellow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계급과 노동운동의 사회학』, 『동아시아의 산업화와 민주화』,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불안사회 대한민국 복지가 해답인가』,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 등이 있으며, 공저 및 편저로는 『세계화와 생애과정의 구조변동』, 『경제위기와 한국인의 복지의식』, 『한국 사회의 계급론적 이해』, 『세계화와 소득불평등』, 『서비스 사회의 구조 변동』, 『일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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