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부동산 정책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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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부동산 정책은 없는가?
  • 김호균 명지대 명예교수·경제학
  • 승인 2021.03.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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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LH 임직원의 부동산투기 사건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영끌’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25번째 대책이 공정 가치를 훼손하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투기에 관한 정부의 자체 조사는 믿을 수 없고 경찰 중심의 특별수사본부에 대한 기대도 저조한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도 30% 대로 하락하고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고 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부동산 적폐청산이 촛불정신”임을 천명하면서 취임 1년 만에 서랍에 넣어버렸던 ‘촛불’과 ‘적폐’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러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정권으로서 과거의 적폐와 ‘현재의 적폐’를 동시에 척결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3기 신도시 사업 추진과정 자체가 불공정과 불법으로 잔뜩 얼룩져 있음에도 원활한 주택공급을 위해 계속 추진한다는 정부·여당의 형용모순적인 방향 설정은 신도시 사업의 취소를 통한 투기이익의 차단이라는 ‘공정’ 가치를 원하는 국민 다수의 여론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으로서는 ‘투기이익의 환수’ 약속이 3기 신도시까지는 현행 법률의 미비로 인해 사실상 지켜질 수 없고 새로운 법을 제정해서 앞으로만 지켜질 수 있는 상황에서 주택공급마저 차질이 생긴다면 이중의 낭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코앞에 닥친 보궐선거와 1년 남짓한 잔여 임기를 두고 ‘실패한 정부’의 낙인을 피하려는 조급함은 절실하겠지만 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면 26번째 ‘마지막’ 부동산 대책은 이제 보다 종합적이고도 중장기적인 정책패키지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대책은 정부의 공공주택사업과 관련하여 LH에 집중되어 있는 각종 권한을 가능한 한 분산하는 것이다. 권력과 마찬가지로 권한도 집중되면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초래한다. 적어도 사업계획의 결정, 토지수용 및 정비, 주택건설의 3분야를 각각 독립된 공공기관에 맡기고 임직원의 사익추구를 금지해야 한다. 임직원의 비리에 대한 자체 조사는 ‘제 식구 감싸기’에 지나기 쉬우므로 폐지하고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 맡겨야 한다.

주택수급 대책에서는 수요중심적이던 당초 입장으로 돌아가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풍선효과를 초래하는 핀셋 대책은 지양하고 언제나 전국적인 투기수요방지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특혜를 폐지하여 200만 호에 이르는 임대주택이 시장에 공급될 수 있도록 압박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 스스로 2018년에 도입한 특혜이기 때문에 24차례에 걸친 대책이 발표되는 동안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었지만 ‘1가구 1주택’을 원칙적 목표로 하는 수요정책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공급대책으로 자주 거론되는 임대주택은 처음부터 영구임대주택으로 못 박아 분양으로 전환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사업은 한국인의 주택보유 동기가 주거보다는 압도적으로 자산보유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자산(토지 임대부 주택 등)의 공급에 의해 보완되거나 노후생활이 지금처럼 개인 책임에 맡겨지지 않고 국가가 보장하는 복지체제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원론적으로 자산은 미래(세대) 소비를 위한 저축이라는 사실과 복지국가일수록 개인의 부동산 보유 성향이 강하지 않다는 인과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산형성을 통해 불안한 미래에 대비할 필요성이 크지 않을수록 현재 소비에 충실할 수 있고 이는 경제성장도 촉진할 수 있다.

공급대책의 수립에서는 정부의 공급확대에도 불구하고 특히 수도권에서 50%대 중반의 자가보유율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 공급되는 주택이 실수요자에게 귀속될 수 있는 섬세한 분양조건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주택공급대책은 무엇보다 균형발전전략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신도시건설을 통한 수도권 중심의 공급정책은 당연히 수도권 인구 집중을 촉진하거나 사후적으로 용인하는 결과가 된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의 근본원인은 일자리의 수도권 집중이므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넘어서서 재벌 대기업도 용인, 평택과 같은 수도권에 집중하지 않고 “균형발전”(헌법 제120조, 제122조, 제123조②항)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일자리 창출은 지역인재의 유출을 방지하여 수도권 주택수요 압박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지방대학은 물론 “지방의 소멸”을 적어도 지연시킬 것이고 세계 최악의 저출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공급과 수요를 동시에 아우르면서 국토균형 발전전략과 같이 가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부동산정책만이 실수요자 중심의 공정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호균 명지대 명예교수·경제학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브레멘대학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지대 교수, 한독경상학회 회장,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국세청 국세행정개혁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명지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신정치경제학입문』, 『제3의길과 지식기반경제』가 있으며, 역서로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신자유주의의 종언과 세계화의 미래』,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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