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미학적 도구인가, 새로운 비판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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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미학적 도구인가, 새로운 비판자인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3.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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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의 책

■ 화제의 책_ 『문화란 무엇인가』 (테리 이글턴 지음, 이강선 옮김, 문예출판사, 216쪽, 2021.03)

시대정신에 반항한 헌신적인 사회주의자이며, 우리 시대의 뛰어난 문학 이론가이자 문화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대세 담론으로 떠오른 ‘문화’의 본질과 그 현 상태를 통찰하는 문화비평서이다.

지적 유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일랜드계 노동자 계급 집안에서 태어난 이글턴은 14세 무렵부터 ‘좌파 지식인’이 되기를 꿈꾸며 청년 사회주의자 클럽에 가입했다. 케임브리지 영문과에 입학해 당대 최고의 영문학자 리비스의 강의를 듣다가, 리비스의 제자이면서 그를 마르크스주의 문학 이론으로 돌파하는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만나면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 구조주의와 정신분석,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이론을 만나고, 이를 섭렵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을 확고히 유지하면서 옥스브리지의 이단아가 되었다. 옥스퍼드대학교와 맨체스터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거쳐 현재 랭커스터대학교 영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글턴에게 마르크스주의 비평이나 이론은 텍스트를 경유하여 역사와 현실을 거꾸로 해독하고 읽어 내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든 비평은 어떤 의미에서 언제나 정치적인 것이다. 비평 자체의 다양한 조류가 이데올로기적 조건들에 의해 형성되고, 아무리 스스로를 비정치적인 것으로 내세운다 해도 비평은 이미 정치적 함의를 불가피하게 담고 있는 문화를 전파하고 해석하는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글턴은 비평이 새로운 사회적, 지적 참여에 매진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사회에서 정치적 기능을 완수하는 일에 대한 비평가의 책임을 탐구하는 데 전념한다.

이글턴에 따르면, 이론이란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불편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글턴에게 이론은 소수의 전유물이나 전문적인 방법을 요하는 문제이기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실천 행위들에 대해 일반적인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방식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론의 도움으로 자신의 삶을 숙고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이글턴은 이 책에서 “지난 2세기 동안 ‘문화’ 개념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문화 상대주의와 다양성, 포용성은 무조건 옹호돼야 할까?”, “문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미학적 도구일까 새로운 비판자일까?”, “오늘날 문화는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 질문에 관해 답을 주고 있다.

실제로 ‘문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담론이다. 대중문화, 문화산업, 포스트모던 문화비평, 다문화주의… 거창한 개념들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인간 삶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 속한 공동체의 문화적 영향 아래 살며, 누구나 문화의 혜택을 누리고자 하고, 이제 문화는 부흥시켜야 할 산업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19세기 초 유럽에서 ‘문화’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후로, 20세기에 이르러 영화, 텔레비전, 광고, 언론 등을 통해 문화 개념은 활짝 꽃을 피웠고 현재까지 끊임없이 그 의미를 확장해가고 있다. 예컨대 18세기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문화를 권력의 매개체로 바라보았다. 국민을 통치할 수 있는 수단은 법이나 정치가 아니며, 오히려 정치권력은 문화를 통해 정착해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다수의 철학자가 예술이라는 의미에서의 문화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했고, 탐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 존재의 의미가 자기 자신을 예술작품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 책은 지난 2세기에 걸친 문화 개념의 변천사와 문화의 역할 그리고 오늘날 문화의 현 상태에 대해 말하기 위해 철학, 인류학, 예술, 문학, 정치 등 다양한 영역의 걸출한 사상가들을 소환한다. 에드먼드 버크,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프리드리히 실러, T. S. 엘리엇, 레이먼드 윌리엄스, 오스카 와일드 등 시대를 대표한 사상가들을 통해 문화라는 주제에 다각도로 접근한다.

지난 2세기 동안 문화 개념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문화’라는 단어는 애초에는 ‘문명’과 동의어였고, 한동안 그렇게 사용되었다. 문명처럼 문화도 물질적 제도들을 포함하나, 일차적으로는 예술적이고 지적인 작업들 혹은 인간이 따르는 가치와 관습 등을 일컫는 정신적 현상이다. 예로 신호등은 문명의 산물이지만 신호등의 색과 그 색의 의미를 정하는 것은 문화의 역할이다. ‘무엇을 할까’가 문명의 일이라면 ‘어떻게 할까’는 문화의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떤 가치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문화는 인간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활동들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결국 물질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하여 크게 보면 문화는 “문명이자 동시에 문명 비판”으로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유럽에서 문화 개념이 발흥하게 된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프랑스혁명이라고 할 때, 문화 개념이 그런 정치적 소요에 맞서서 비판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원서와 저자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이처럼 문화는 18세기 후반에 산업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 낭만적 민족주의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가, 19세기가 시작되자 식민주의와 인류학에 대한 논의에 휘말려들기도 했으며, 공동체의 내면에 깔린 ‘사회적 무의식’으로서 쇠퇴하는 종교의 대체재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문화는 주요 산업의 하나로 성장해 대중의 의식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다. 특히 20세기 중반 다양성과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하면서, 문화는 현재 우리 사회에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갈등을 불러온 이슈가 되었다. 테리 이글턴은 이 책에서 인류의 지성사를 대담하게 훑어 내리며 문화의 본질과 그 현 상태를 날카롭게 통찰한다. 특히 우리 시대 문화의 흐름인 포스트모던의 다양성 담론을 중심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의 의미와 역할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인간 존재에 철저히 스며들었고, 이제 문화를 인간 존재의 근간으로 간주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가 도래했다. 포스트모던의 문화 상대주의, 다양성, 소수성에 대한 관심은 물론 우리 사회에 귀중한 성과들을 만들어냈지만, 테리 이글턴은 포스트모던 이후 문화 담론이 어떤 면에서 매우 배타적이라고 진단한다. 예컨대 정치적으로 올바른 학생들은 동성애 혐오자를 대학에서 몰아내는 데 힘을 쏟지만,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가들이나 노조 폐기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별달리 힘을 쏟지 않는다. 원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눌 권리는 존중받지만,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권리는 부정당하는 시대인 것이다. 포스트모던이 차이와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통일성, 총체성, 보편성을 몰아냈고, 어떤 면에서 인간을 더 물질적인 다른 이슈들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글턴에 따르면 “일부 차이는 폐기할 가치가 있는데, 예를 들면 거지와 은행가 사이의 물질적 불평등 같은 것이다.”

“배타성의 원칙에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여성들의 운전을 금지하는 일은 혐오스럽지만, 신나치당원을 교사직에서 배제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 문화연구 담론은 그 자체가 놀랄 만큼 배타적으로, 대체로 섹슈얼리티는 다루지만 사회주의는 다루지 않고, 위반은 다루지만 혁명은 다루지 않는다. 차이는 다루지만 정의는 다루지 않고, 정체성은 다루지만 빈곤의 문화는 다루지 않는다.” (54쪽)

문화는 엄연히 사회제도의 일부이고, 문화를 가능케 하는 물질적 조건이 필수적이다. 책을 읽으려면 책이 필요하고, 책을 만들어내려면 제지공장과 인쇄기가 필요하다. 테리 이글턴은, 그러나 오늘날의 문화가 더 이상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었으며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변화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을 잃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늘날의 이른바 ‘문화산업’이란 것은 문명 비판의 역할을 하는 ‘문화’ 자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미지·브랜드·아이콘·디자인·광고 등과 같은 새로운 문화 기술은 자본주의를 위한 ‘미학적’ 형식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기존 질서에 대해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게이, 페미니스트, 서브컬처 문화들 또한 애초부터 자본주의를 전복할 희망조차 품고 있지 않다고 진단한다. 문화는 사회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심지어 시민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문화의 본질과 역할이 그것이라면, 지금 우리 시대의 ‘문화’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결국 이글턴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명 비판으로서의 문화는 점차 그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말하며,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이라는 큰 틀 안에서 문화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다양한 범위의 답을 제시한다.

“전 세계적인 현상인 대학의 쇠퇴야말로 자본주의가 한때 자신의 반대말(‘문화’)로 여겨졌던 것을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데 전념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사례다. 대학의 쇠퇴는 사실상 공산주의와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일보다 덜 극적이기는 해도 우리 시대의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들의 대열에 자리 잡고 있다. 인문적 비판의 핵심부로서 수세기에 걸친 전통을 가진 대학은 현재 야만적일 만큼 속물적인 관리 이데올로기의 지배 아래 놓인 사이비 자본주의 기업으로 전환되면서 사라지는 중이다.”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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