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자유 선택, 도덕적 악의 연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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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자유 선택, 도덕적 악의 연결성
  • 이상섭 서강대·철학
  • 승인 2021.03.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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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악(惡)과 죄종(罪宗): 토마스 아퀴나스의 『악에 대한 토론문제집』 풀어 읽기』 (이상섭 지음, 서강대학교출판부, 458쪽, 2021.01)

13세기 유럽의 스콜라 철학자,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4/5~1274)의 윤리 사상은 21세기 한국의 우리에게도 생각보다 멀지만은 않다. 가톨릭의 교회 학자인 아퀴나스의 도덕적 악(죄)에 관한 이론은 상당수의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들에게 생소하지만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라 하더라도 직접 읽고자 하면 그의 글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라틴어라는 언어 장벽 외에도 스콜라철학의 특수한 용어와 개념, 그리고 학문 방법론은 원전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한다. 이 책은 아퀴나스의 도덕적 악 이론에 관심이 있고 그의 글을 읽기 바라지만, 원전을 직접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독자들을 위해, 흔히 『악론』이라 불리는 『악에 대한 토론문제집』을 쉽게 풀어쓴 책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후기 저작에 속하는 『악론』은 그가 악, 특히 도덕적 악(죄)을 놓고 토론한 문제들(quaestiones disputatae)로 구성된 책이다. 그가 토론한 문제들은 악 일반 및 도덕적 악(죄)의 본질, 도덕적 악의 원인, 원죄와 벌, 자유의지, 소죄와 대죄, 죄종, 그리고 마지막으로 악령을 포함하여 총 열여섯 가지이다. 이 가운데 여덟 문제가 교만, 헛된 영광, 시기, 영적 태만, 분노, 탐욕, 탐식, 미색이라는 여덟 죄종(罪宗, peccata capitalia)을 다루고 있다. 아퀴나스는 각 문제를 다시 여러 측면에서 세부적으로 고찰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토론 주제인 ‘악’ 일반에 대해서 존재론적 위상, 주체, 원인 및 구별과 관련된 다섯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악론』의 각 문제는 다시 여러 절(articulus)로 나뉘게 되는데, 절이 토론문제집의 기본 단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절은 주어진 문제와 관련하여 토마스와 대립하는 입장들, 토마스 자신의 견해(본문), 그리고 대립된 입장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진다. 

필자의 책 『악과 죄종』은 『악론』을 구성하는 총 101개 절의 본문을 쉽게 풀어 쓴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주제별로 문제와 절을 재분류하였고, 토마스의 논리 전개를 보여주기 위해 본문 내용을 여러 단락으로 나누어 읽어나갔다. 먼저 필자는 『악론』의 전체 내용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제1부는 제1문제에서 제6문제까지의 주제들, 즉 악 일반의 존재론적 고찰, 도덕적 악의 문제들, 도덕적 악의 원인, 원죄와 원죄의 벌, 그리고 자유의지론을 포함한다. 제1부는 악에 대한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이론이 전개되는 만큼 『악론』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스콜라철학의 “선의 결여(privatio boni)”로서 악이라는 규정과 그것의 함의 및 형이상학적 근거를 접할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5~1274)<br>
토마스 아퀴나스(1224/5~1274)

예컨대 악은 주체로서 선 안에 존재하며 선을 매개로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토마스에 의하면 악은 크게 자연적 악과 도덕적 악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도덕적 악(죄)은 자연적 존재자와 다른 존재(esse morale)와 질서를 갖는 영역, 즉 도덕의 영역(genus moris)에 속한다. 이 영역은 의지의 자유 선택을 통해 정립되는 존재 영역이다. 그래서 ‘의지’가 제1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서 고찰된다. 토마스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악한 행위(죄)를 선택하고 범하는 이유를 무지, 정념 및 의지의 악함이라는 내적 원인을 통해서 설명한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요소들이 원인으로 작동하게 되는 저변에는 인류의 “공통의 죄”로 규정되는 ‘원죄’가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원죄는 악한 행위로서 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죄를 향한 “경향성”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물론 인간에게 의지의 자유 선택이 없다면 도덕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의지가 가장 근본적 원인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제2부에서는 죄의 종류와 구체적 내용이 설명된다. 토마스는 소죄 및 대죄의 구분에 이어 여덟 문제를 할애하여 죄종의 문제를 차례대로 논의한다. 죄종은 그 자체로 다른 죄와 종적으로 구별되는 하나의 특수한 도덕적 악이면서, 또한 동시에 다른 도덕적 악을 낳는 일종의 “죄의 뿌리”와 같은 것으로서, 행위자의 의지나 의도와 무관하게 죄 자체의 구조로 인해 다른 죄를 낳을 수 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예를 들어 탐욕(avaritia)은 불우한 이웃과 자기 것을 나누려 하지 않는 비정함이나 다른 사람의 것을 폭력이나 속임수로 강탈하려는 불의함 등과 연결되어 있어, 사람이 일단 그 탐욕이라는 악습을 갖게 되면 그로 인한 악의 연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는 죄 자체는 근본적으로 행위 주체의 탓임을 강조하지만, 바로 이 죄종 개념을 통해서 개인의 차원을 벗어난 죄 자체의 구조적 문제를 짚고 있다. 

마지막 제3부의 내용은 악령(마귀)에 대한 고찰로 이루어져 있다. 스콜라철학에서 악령은 인간과 달리 육체가 없는 순수한 정신적(영적) 존재자를 가리킨다. 인간과 달리 무지나 정념의 공격을 받지 않는 순수 영적 존재자에게서 어떻게 도덕적 악이 생겨날 수 있는지 사유함으로써 인간에게서 도덕적 악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통찰을 심화시킬 수 있다. 

이 책은 위와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악론』을 필자가 이해한 만큼 풀어 읽음으로써 오늘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스콜라철학의 한 중요한 저작을 독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상섭 서강대·철학

연세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Wirklichsein undGedachtsein)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콜라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연구하면서, 『신학대전 17. 인간적 행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유비, 일의성 그리고 단일성』 등을 번역했고, 「지복직관, 누구의 것인가?」, 「의지의 자유선택에서 이성의 역할」, 「실제학문 vs. 보편학문」 등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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