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은 왜 어려운가,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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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은 왜 어려운가, 어떻게 가능한가?
  • 이희옥 성균관대·정치학
  • 승인 2021.03.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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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이상과 현실 사이: 중국의 동아시아 협력』 (장윈링 지음, 이희옥·퍄오젠이·리청르 옮김, 책과함께, 548쪽, 2021.01)

미·중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중국, 특히 사회주의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가 본격화되고 있고 그 범위도 전방위적이다. 중국도 이러한 미국의 공세에 대해 대응, 적응, 순응의 방식을 활용하고 있고, 자국의 주변인 동아시아에서 안정적인 교두보를 확보해 지구전에 대비하고자 한다. 실제로 미·중 갈등의 균열대(fault line)는 한반도, 대만, 남중국해 등 동아시아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동맹과 다자를 결합해 트럼프 정부와는 다른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적으로 투사해 중국을 에워싸면서 역내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하고, 중국도 부상한 힘을 바탕으로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구축 등 구심력을 확대하면서 ‘기싸움’과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사실 21세기 중국 대전략의 핵심은 해양국가와 육상국가를 결합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력이 쇠약했던 시기에 채택한 내정불간섭에 기초한 고립주의 외교를 버리고 새로운 지역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중국은 부상한 힘을 바탕으로 1990년대 후반,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안보관을 제시하고 동아시아 지역을 중국에 유리한 환경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의 출범에 자극받아 아이디어 차원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동아시아 일체화 구상을 정책화하려는 노력도 이 무렵에 나타났다. 

『이상과 현실 사이』는 동아시아 협력에 대한 중국의 이론적 논의와 실천적 궤적을 섬세하게 담고 있다. 비록 중국적 맥락과 시각이 투영되어 있으나,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과 실제로 작동하기 어려운 지정학, 지경학, 지문화적 분석은 동아시아 국가 모두에게 참고할만한 보편적인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장윈링 선생은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학계에서 잘 알려진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이다. 그는 경제학과 국제정치를 넘나드는 학제 간 접근, 아시아적 문제의식과 서구적 방법론의 결합,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와 비교의 시각, 동아시아 협력 프로세스에 대한 이론과 다양한 전문가 그룹에 참여한 경험을 두루 포괄하고 있어 그의 주장과 보고서들은 출판 때마다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를 통해 그는 동아시아 협력의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자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시장 개방, 동아시아 각국의 개방전략, 기업의 글로벌 경영 등의 추세는 역진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한편, 동아시아에서 유럽통합과 같은 화학적 결합이 어려운 근거를 전쟁과 침략에 대한 기억, 경제적 불평등, 역외 균형자인 미국의 존재 등의 착종에서 찾았으며, 그 대안으로 증량주의(incrementalism)와 점진주의(gradualism)에서 찾았다.  

한편, 이 책의 장점은 중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태도와 방법에 대한 성찰적 견해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즉 중국이 ‘중심과 주변’이라는 전통적 사유를 극복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 질서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힘을 투사하기 전에 주변국가로부터 매력을 얻어야 하며 역내 국가들이 공급망,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구체적인 실익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리관(義利觀)도 함께 제시했다. 사실 중국은 동아시아 협력을 주도하기에는 여전히 힘과 경험 그리고 소프트파워 모두 부족하다. 따라서 종합국력의 한계 때문에 초강대국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개발도상국으로서의 대국이다. 이런 점 때문에 역내 지역협력에 대해서도 자국이 주도할 수 있는 데 중심을 두었다. 예컨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상하이 협력기구(SCO),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6자회담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미중관계의 변화, 중국의 부상에 대한 책임대국(responsible state) 요구가 늘어나면서 보다 다양한 국제기구와 지역협력체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타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여러 여건상 중국이 쉽게 참여하기 어렵지만, 일본 주도로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은 이러한 인식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 동아시아협력』이라는 책 제목처럼 동아시아 협력과 공동체 건설을 하나의 ‘이상’으로 보고 이러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어려움을 ‘현실’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줄이면서 동아시아 협력을 제도화하는 실천적 방안, 중국발 이니셔티브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부상이 본격화하면서 ‘외세로부터 강제로 열린 근대’를 벗어나 잃었던 지역을 복원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 와닿는 이유는 조공-책봉체제, 천하질서와 같은 과거의 개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이념 그리고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점이다. 

이 책에서 다루지는 않고 있으나 시진핑 시대, 중국 지역전략의 핵심인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이론적 뿌리도 추론해 낼 수 있고, 최근에 체결된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협정(RCEP)이 가능했던 배경도 확인할 수 있는 등 그의 학문적 통찰력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폭넓게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은 1997년 이후부터 추진된 중국의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의 가장 권위 있는 중국사회과학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2019년 영국의 Routledge 출판사에서 영문판을 펴냈다. 이 책은 특히 11개의 장별로 구체적인 1차 자료와 참고자료를 붙여 당시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한 논의 과정을 생생하게 제공하고 있어 이 분야 후속 연구에 대해서도 유용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동아시아협력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이론과 담론 차원의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나 이러한 문제의식을 정책화하고 제도화하지는 못했다. 즉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체제 이후 냉전적 반공주의가 만든 ‘연동형 종속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역내 협력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으나, 정권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지고 소멸하면서 지속가능한 지역협력을 발신하는 데는 실패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론과 실천의 영역 모두에서 동아시아 협력을 발신하는 방식과 내용이 아시아의 차원에서 어떻게 투사되어야 하는가를 모색할 때, 이 책은 많은 학문적 상상력과 정책적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정치학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성균중국연구소장 및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이다. 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청와대 남북정상회담 자문위원, 외교부·통일부·서울시·경기도 등의 정책자문위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으로 있다. 중국 지린(吉林)대학, 화교대학 등의 객좌교수이며, 퉁지(同濟)대학, 텐진외국어대(天津外大), 수도사범대학 등의 겸직교수이다. 단독저서로는 <중국의 새로운 사회주의탐색>, <중국의 새로운 민주주의 탐색>, <중국의 국가대전략 연구> 등이 있고, <The Search for Good democracy in Asia> 등을 비롯해 40여 권의 책을 편집하고 북챕터를 썼으며, 70여 편의 학술논문을 한글, 영문, 중문, 일문으로 썼다. 2017년 NEAR학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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