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현대 생활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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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현대 생활의 발견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 승인 2021.03.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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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인간희극』이라는 제목으로 90편이 넘는 소설과 수많은 산문을 썼다. 발자크의 작품은 이미 오래전에 우리에게 세계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외제니 그랑데』,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등의 소설이 소개되었지만, 아직 번역되지 않은 글이 훨씬 더 많다. ‘생리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발자크의 풍자문학도 그중 하나이다. 생물학에서나 나올 법한 생리학 같은 낯선 단어를 문학에 끌어들인 이유는 작가가 활동한 1830년 전후의 사회상과 특정 계급을 생물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 출간된 『현대 생활의 발견』(민음사)은 원제가 ‘사회상의 병리학’이고, 인간과 사회를 병의 원리와 상태, 기관의 형태 및 기능적 변화를 연구하듯이 분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작가의 생리학적 관찰의 연장선상에 있는 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풍속을 관찰하고 인간의 몸의 움직임을 분석한 이 에세이에는, 「우아하게 사는 법」, 「발걸음의 이론」, 「현대의 자극제론」 등 세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먼저 발자크는 「우아하게 사는 법」에서 ‘우아한 삶’을 주제로 삼아 그가 살았던 19세기를 다루면서 박물학적 도식을 차용하여 인간의 유형을 분류하고 분석한다. 작가에 따르면 현대의 풍속은 세 계층의 인간을 만들어냈다. 우선 ‘바쁜 삶’을 사는 ‘일하는 인간’이 있고, 다음으로 ‘예술가의 삶’을 사는 ‘생각하는 인간’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우아한 삶’을 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의 존재방식이 있다. 짐작할 수 있듯이 ‘바쁜 삶’을 사는 인간은 농부, 석공, 군인, 소매상인인데 그들은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고 지적인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예술가의 삶’을 사는 인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있으면서 아무렇게나 옷을 입을 수도 있고 “자신의 의지나 능력에 따라 삶을 영위한다.” 이쯤 되면 독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만이 ‘우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바로 귀족 계급으로 복식과 몸치장이라는 사회적 표현을 통해 그들만의 우아함과 사치를 드러낸다.

Honore de Balzac

한시라도 빨리 우아하게 사는 법을 배워서 그것을 실천하고 싶은 독자라면 발자크가 이 글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리해 둔 아포리즘을 순차적으로 읽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바쁜 독자를 위해 우아하게 사는 법을 정리하자면, ‘우선 일에 빠져 살면 안 되고 휴식을 즐길 줄 알아야 하며 돈을 소비할 수 있는 상당한 지위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돈만 있어서는 안 되며 타고난 감각과 여유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돈을 지나치게 아끼면 안 되고 심지어는 허리둘레가 일정 기준 아래여야 하며 무례해서도 안 된다.’ 멋진 말이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을 모두 실천할 수 있다고 믿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발걸음의 이론」은 인간의 움직임에 대한 생리학적 혹은 병리학적 관찰에 좀 더 가깝다. 발자크는 이 글을 쓰기 전부터 인력(人力)에 관심을 두고 있으면서 인간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이 글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뛰어난 관찰력과 추론의 승리이다. 작가는 우리가 왜 발걸음의 원리에 대해 지금까지 연구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모든 것의 존엄성은 늘 유용성에 반비례’한다고 믿고 일종의 발걸음의 도상학을 시도한다. 그가 인간의 움직임을 관찰한 뒤 직관을 통해 찾아낸 사실은, “급격하고 불규칙한 모든 움직임은 악덕이나 나쁜 교육을 나타낸다” 혹은 “모든 과도한 움직임은 감탄할만한 낭비이다” 등의 아포리즘으로 요약된다.

발자크는 「현대의 자극제론」에서 19세기는 물론 우리 시대의 기호품인 술과 설탕, 차, 커피, 담배의 효능과 남용의 결과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작가가 커피 애호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문학총서 『인간희극』도 커피가 없었다면 완성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이라는 군대와 ‘비유’라는 경기병, ‘논리’라는 포병이 커피의 자극을 받아 전쟁터의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원고지 위에서 전투를 치러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정해진 일을 내일까지 꼭 끝내야 하는 사람에게는 커피를 권하겠다는 말도 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노동의 총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의 모든 직업군에서 우리는 발자크 이상으로 커피에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현대 생활의 발견』은 인간과 사회의 관찰자로서의 발자크가 소설 이외의 장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또한 그가 빚을 갚기 위해 평생 원고 마감 시간에 쫓겼음에도 불구하고 소홀하게 쓴 문장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확인시켜준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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