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라 소렌트로(Torna a Surriento)’는 누구를 향한 애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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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소렌트로(Torna a Surriento)’는 누구를 향한 애원인가?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3.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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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44)_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트로(Torna a Surriento)’는 누구를 향한 애원인가? 

 

음악을 들으며, 사람의 이름에 대해 생각하다.

(좌) 멘델스존의 초상화(1839년): 영국의 세밀화가 제임스 워렌 차일드(1778~1862)의 작품, (우) 12세 때의 멘델스존(1821년): 칼 요셉 베가스의 유채 초상화

여행의 역사에서 말하는 그랜드 투어의 시기에 유럽의 저명인사들은 앞다투어 이탈리아를 찾았다. 그것이 유행이었다. 괴테는 시칠리아 방문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곳곳을 탐방한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베네치아 체류 중에 그려졌다. 

멘델스존 또한 유럽 전역을 돌며 순회 연주를 했다. 영국을 열 번이나 방문한 멘델스존은 1829년 마침내 스코틀랜드를 찾는다. 그때 에딘버러 성 맞은편 끝자락에 있는 홀리루드 고궁(Holyrood Palace)에 올랐다가 과거의 소리를 들었던가 보다. 홀리루드는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고 있다. 

멘델스존은 회고적 환상에 잠겨 곡의 주제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은 부드럽다. 오보에, 클라리넷, 비올라 연주가 전해주는 3번 교향곡 <스코티시> 서주부의 몽롱하면서 어딘가 복고적인 느낌은 듣는 이를 잔잔한 판타지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다른 곡들에 밀려 13년이나 지난 1842년 베를린에서 완성된 이 곡은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되었고, 이듬해 영국 여왕 빅토리아에게 헌정되었다.

(좌) 홀리루드 궁 전경, (우) 에딘버러 성 야경

멘델스존(1809~1847년)은 초기 낭만파 시대 독일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 그리고 지휘자다. 풀네임은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로, 영어권 국가에서는 줄여서 흔히 펠릭스 멘델스존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이 길어진 사연은 이렇다. 본래 유대인 혈통이었으나 멘델스존의 부모들은 유대교 율법에 따라 자식들이 할례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멘델스존은 1816년 아버지의 뜻에 의해 개신교도로 개종하면서 야코프 루트비히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흥미롭게도 이때 자식들만 세례를 받고 부모는 6년 뒤인 1822년에야 세례를 받았다.
 
가문의 성은 멘델스존이었는데, 아버지 아브라함이 어머니 레아 살로몬의 오빠 즉 처남 야코프 살로몬 바르톨디의 권유에 따라 바르톨디라는 기독교식 성을 함께 쓰기로 해서 멘델스존 바르톨디가 성이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부모·형제, 이웃 사람, 친구들은 멘델스존을 펠릭스(Felix)라는 이름으로 불렀을 것이다.

로마제국 시절 장군 술라가 자신의 별명으로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이 중세 라틴어 이름의 의미는 ‘행운의, 행운 가득한, 성공한’이다. 사도 바울을 감옥에 가둔 주디아 총독도 이름이 펠릭스였다. 부모가 원치 않았던 음악가의 길을 걸어 세계적 명성을 얻은 멘델스존은 행운남이다. 이렇듯 사람 이름에는 개인이나 집안의 사연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처음 이탈리아에 갔을 때의 일이다. 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 미켈란젤로, 다빈치, 두오모 성당 등 관련된 어휘만으로도 가보지 않고도 일찌감치 이름이 친숙해져 있던 꽃의 도시 피렌체를 보고난 다음날 소렌토와 나폴리가 기다리는 남쪽 지방으로 향했다. 

이탈리아반도 중부 투스카니 지방의 중심지 피렌체(Firenze)의 영어 이름은 플로렌스(Florence)다. ‘꽃의 도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곳 태생이다. 우리는 흔히 다빈치라고 부르고 그게 그의 이름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레오나르도가 이름이고 다빈치는 빈치 마을 출신을 나타낸다. 빈치 마을은 피렌체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시계방향 순으로) 피렌체의 명소: 우피찌 갤러리, 피띠 궁, 넵튠 분수, 노을 진 피렌체

사람 이름뿐만 아니라 도시의 탄생과 명칭의 변전 과정을 살피는 일은 재미있다. 기원전 59년 로마의 독재집정관인 가이우스 줄리우스 케사르가 오늘날의 피렌체에 온다. 그리고 로마를 위해 싸운 퇴임 병사들의 정착지로 도시를 건설하고 플루엔티아(Fluentia)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르노와 무그노네라는 두 개의 강 사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피렌체에서 150마일 떨어진 로마를 거쳐 소렌토에 이르기 직전 해안 언덕에서 바라보는 지중해는 광활하고, 때마침 해 질 녘이라 바다는 석양에 물들고 있었다. 자연은 이렇듯 늘 감동적이다. 

(좌) 기원전 370년경 고대 그리스 아티카(아테네)의 장례식에서 부장품으로 매장되었던 사이렌 조각상. 거북이 껍질 별갑(鼈甲)으로 만든 칠현금(七絃琴)인 수금(竪琴)을 메고 있다. (우) 사이렌의 형상을 한 고풍스런 향수병. 기원전 540년경 

예로부터 이곳 바다를 지나가는 뱃사람들은 각별히 조심을 해야 했다. 해안 절벽 위에서 들려오는 유혹적인 노랫소리에 정신을 잃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은 사이렌. 사이렌이라고 하면 흔히들 119구급차나 민방위 훈련 경보음을 떠올리지만,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근처를 지나는 뱃사람을 유혹하여 파선시켰다는 바다의 요정을 가리킨다. 소렌토(Sorrento)라는 지명이 바로 ‘사이렌의 땅’이라는 수렌툼(Surrentum)에서 비롯되었다. 오디세이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배 돛대에 묶인 채 이곳을 지나가는 까닭이 바로 사이렌의 노래 마법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뮈리나(Myrina)에서 출토된 사이렌 상(기원전 1세기)

사이렌은 여인과 새가 합쳐진 모습이라고 전한다. 초기 그리스 예술에서는 여인의 머리에 깃털이 있고 비늘이 달린 새로 묘사되다가, 후에는 새의 다리에 날개가 있거나 혹은 날개가 없이 하프나 수금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중세의 사이렌은 머리부터 배꼽까지는 여자로, 하체는 물고기 꼬리를 한 형상으로 그려졌다. 인어공주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연인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노래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너무나 현실적인 목적에서 지어진 노래다. 1902년, 당시 소렌토를 방문한 이탈리아 총리가 시장에게 우체국 건립을 약속했다. 소렌토를 떠나는 총리에게 약속을 잊지 않기를 간청하는 애절한 노래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좌) 소렌토 절벽 호텔, (우) 소렌토 전경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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