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의 양자역학과 불교 핵심인 공(空) 사상은 ‘무아(無我)’로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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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양자역학과 불교 핵심인 공(空) 사상은 ‘무아(無我)’로 일치한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2.2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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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와 양자역학: 양자역학 지식은 어떻게 지혜로 완성되는가 | 빅 맨스필드 지음 | 이중표 옮김 | 불광출판사 | 312쪽

초월적 신념의 세계를 다루는 종교. 논리적 사고로 실험을 거듭하여 세상의 현상을 증명하는 과학. 이처럼 종교와 과학은 밑바탕을 이루는 사유 방식만 보아도 대립, 충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절대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종교와 과학에서 놀라운 공통점을 끌어냈다. 그것은 현대과학의 최첨단이라고 불리는 양자역학의 세계관과 불교 중관사상의 공(空)이 말하는 세계관의 일치점이다. 이 둘은 독자적인 자기동일성이나 자성(自性)을 지닌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 모든 것은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놀라운 공통점을 과학적 근거와 세밀한 불교 교리로 녹여내어 하나로 융합시키며, 이를 통해 과학과 종교의 지식이 지혜로 변화하고, 그 지혜는 자비와 사랑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양자역학은 우리의 실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양자역학은 분자, 원자, 전자 소립자 등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 분야이다. 하지만 아무리 최신 장비로 물질을 관찰하고 실험해도,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궁극의 실체는 발견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의 양자역학 연구를 통해 물질을 이루는 원자 단위의 세계에서는 입자들이 자기 본성 없이 지속하며, 그 지속성 속에서 어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본질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이 작은 미시 세계는 상호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물질은 촘촘한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 사실은 만져지고, 보이는 수많은 것들과 ‘나’를 이루고 있는 육체도 이처럼 자기 본성이 없고, 단지 지속성만 있으며, 상호 의존하는 실체 없는 원자로 형성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어떠한 것도 실체가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불교에서는 2,600여 년 전 시작부터 이미 모든 객관적인 현상과 주관적인 현상의 본성을 독립적이거나 본래적인 존재가 없다고 여겼다. 이를 “자성(自性)이 없다”라고 표현하며, 짧게 ‘공(空)’이라고 불렀다. 공이라는 말조차 허상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자성 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방편으로 ‘공’을 말할 정도로 불교는 본성, 궁극의 실체와 같은 것들을 부정했다. ‘나’도 실체가 아닌데 ‘내 것’이 있을 리 없다. 실체 없는 내가 무언가에 집착할 때 번뇌가 생기고, 번뇌는 끊임없이 고통을 선사한다. 불교는 이 번뇌의 고리를 끊는 종교다. 붓다는 고도의 정신 수행만으로 이 세상의 실체 없음을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이는 21세기의 첨단 과학 분야인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세계관과 너무나도 일치한다.

독립적인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은 변화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독립적이기 때문에 외부의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다른 무엇이 영향을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실재(實在)의 토대’라고 믿고 있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생각은 모순이다. 독립적 존재란 결코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원저와 저자 빅 맨스필드

공(空)이 부정하는 것도 이 ‘실재의 토대’이다. 실재의 토대라고 잘못 여겨지는 독립적 존재를 분명히 식별할 수 있어야만 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되기 쉽다. 불교는 사물과 사람을 무조건 실체 없는 존재라고 여기며 부정하지 않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우리가 바깥세상을 인식하는 기준 역할을 한다. 외부 세계가 실체 없는 것들로 이루어졌음을 꿰뚫어 보았다면, 이제는 내부의 마음속 생각들의 실체 없음을 관(觀)한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양자역학의 세계관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독립적이지 않고, 독립적일 수 없는 존재들을 이해했다면, 상호 의존 관계를 이해하기는 더 쉽다. 어떻게 실체 없는 것들은 계속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이 바로 상호 의존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말한다.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 의존하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은 무상(無常)하면서 공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인류의 문제도 비례하면서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과학기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과학 지식은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논리로 인해 인도적 과학의 활용에는 관심이 쏠리지 않고 있다. 도대체 지식이란 무엇인가. 이토록 정밀한 과학 세계를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그 과학을 활용하여 탐욕만 채울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 세상이 상호 연결되었다는 사실에 눈뜨고, 모든 생명에 연민을 가져야만 한다. 모든 생명 있는 것과 환경을 위해 과학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암울하다.

우리 내면에 도사리는 욕망과 탐욕, 모든 부정적인 감정에는 실체가 없다. 그런 어두운 마음이 공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무엇으로도 실체 없는 탐욕을 만족하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비로소 모든 세상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것들에 의지하고 있는 우리를 보자. 어느 하나가 사라지면, 연이어서 우리도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마음속에서 자연히 자비의 마음이 피어오르게 된다. 이러한 마음은 과학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양자역학의 세계관과 불교의 공이 말하는 ‘무자성(無自性)’의 이해는 어둠에서 빛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신적, 심리적 변화의 토대가 된다. 따라서 과학 지식은 곧 자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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