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제국을 가장 위대할 수 있게 만든 10명의 황제들
상태바
가장 위대한 제국을 가장 위대할 수 있게 만든 10명의 황제들
  • 이명아기자
  • 승인 2021.02.28 2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로마 황제 열전: 제국을 이끈 10인의 카이사르 | 배리 스트라우스 저 | 최파일 역 | 까치(까치글방) | 499쪽

이 책은 로마 제국 힘의 원천이자, 제국의 면면을 제대로 증명할 10명의 황제들에 대한 이야기다. 공화정이었던 로마는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제국의 1인자 자리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제국의 시대를 맞는다. 그 후로 로마에는 약 70명이 황제 자리에 등극했다. 저자는 그들 중에서도 로마 제국에 지대한 영향을 준 황제 10명을 선별하여, 약 4세기 동안의 로마 역사를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로마 제국을 창건한 아우구스투스에서부터 동로마 제국 시대를 여는 유스티아누스까지, 이 10명의 황제들은 로마를 로마답게 그리고 로마가 긴 세월 동안 제국으로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도록 이끈 인물들이다. 이 책은 황제들의 탄생에서부터 그들의 업적, 개인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제국의 변화상을 함께 그리며 입체적으로 로마를 살펴본다.

이 책에는 아우구스투스나 하드리아누스처럼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받는 황제들뿐만 아니라 티베리우스나 네로 같은 폭군의 전형이 된 황제들도 등장한다. 이 10명의 로마 황제들을 통해서 저자는 로마가 제국으로서 오랜 세월 존속할 수 있었던 원인을 분석하고 전달한다. 이들은 개인보다는 제국을 우선하는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다. 제국의 존속을 위해서 핏줄이 달라도 계급이나 심지어 인종이 달라도 황제로 삼았다. 10명의 황제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로마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황제들의 개인사에 관한 은밀한 이야기들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황제 옆에서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했던 여성들, 즉 황제의 아내, 어머니, 딸들 역시 제국을 경영하는 데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제1장의 인물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이다. 그는 카이사르의 누이의 아들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조카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삼았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옥타비아누스는 복수를 감행했고, 숙적인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이기고 지배자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공화정 로마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그는 현명하고 신중하게 로마의 원로원과 군중들을 대했고, 그의 자손들이 로마를 지배할 수 있는 기틀을 세우며, 로마를 제국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제2장은 아우구스투스의 양자 티베리우스 편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외동딸인 율리아를 이용하여 계승자를 얻고자 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양자인 티베리우스를 후임자로 임명한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기다려온 티베리우스는 훌륭한 행정가였다. 로마의 타고난 정복 의지를 사그라뜨리며, 제국의 안정과 유지를 위해서 힘쓴다.

카이사르의 죽음, 장 레옹 제롬, 1867

제3장은 엔터테이너 네로이다. 네로는 아우구스투스의 후손인 소아그리피나의 아들로, 자신의 양아버지 클라우디우스가 급사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자신의 유흥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고 온갖 기행을 저지른 네로는 결국 자신이 모욕을 준 부하에게 처단 당한다. 네로가 죽으면서 로마에는 대혼란과 내전이 찾아온다. 이런 혼란을 잠재운 것이 바로 네 번째 인물 베스파시아누스였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만 황제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회계 능력이 특출한 그는 네로가 바닥낸 국고를 채우기 위해 지출은 아끼고 세금을 인상했다. 또한 내전을 겪은 로마에 안정을 가져오고,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 콜로세움을 네로의 황금 궁전이 있었던 장소에 세운다. 그리고 능력 있는 평민에게 출세 기회를 확대하고 속주의 지도층들이 로마의 지배계급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하여 후대 로마에 인적자원을 제공했다. 

제5장은 트라야누스 편이다. 트라야누스는 황실 인물도,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로마의 실용주의가 다시 한번 엿보인다. 그는 스페인 사람으로 로마의 속주 출신이었다. 정통성을 가지지 못한 트라야누스는 로마가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소박함과 정숙함 그리고 순종이라는 이미지로 자신의 가족을 선전했다. 다키아를 정복하고, 트라야누스 가도, 트라야누스 포룸 등 여러 건설 사업을 벌이고 로마를 안정적으로 지배하면서 로마의 최대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여는 기틀을 닦았다. 제6장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편으로, 그는 제국의 제2의 창건자를 자처할 만큼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인물이지만 모순적인 면들로 가득하다. 로마인이지만 그리스적인 것을 매우 좋아해서 아테네를 페리클레스 이후로 가장 많이 증축시켰다. 평화를 추구했지만 군대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
 
제7장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편이다. 책을 낸 유일한 황제이기도 한 그는 스토아 철학자였다. 스토아 철학은 법을 존중하고 공익을 우선시했다. 그는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했고, 위대한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치하의 로마는 위태롭기만 했다. 이민족들의 침입이 본격화되면서 그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로마를 떠나 춥고 거친 변경지대에 머무르며 군대를 지휘해야만 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고뇌를 담아 쓴 것이 바로 <명상록>이다. 결국 그는 전선에서 숨을 거뒀다. 제8장은 아프리카에서 온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이다. 193년부터 로마는 4년 동안 황제의 자리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다. 이를 정리한 것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였다. 아프리카인이었던 그는 속주 출신의 인물들을 최고위직에 임명하고, 군대를 중요시하면서 기사계급이 원로원 바로 아래 계급이 되었다. 그는 제국에 안정을 회복하고 자신의 왕조를 창건하면서 로마에 다문화적 계몽을 일으켰다. 

제9장에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로 넘어온다. 거대한 제국의 동서 양쪽에서 적들이 침입하면서 로마 제국은 계속적인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 위기를 황제 혼자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로 지명된 지 1년 만에 막시미아누스를 공동 황제에 임명하여 그에게 서방을 맡겼다. 이 결정으로 인해서 로마는 2명의 황제가 지배하게 되었다. 제10장의 주인공은 동로마 제국을 창건한 콘스탄티누스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인이었다. 예수를 믿었던 그는 로마의 이교로 그동안 수없이 많은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 대한 관용을 약속하며 서양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데에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로마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이전하면서 로마 제국을 이민족들로부터 지키고 제국이 천년 더 영속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선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