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계를 찾아가는 서정적 탈환의 아티스트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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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계를 찾아가는 서정적 탈환의 아티스트 조용필
  • 유성호 한양대·국문학
  • 승인 2021.02.2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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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유성호 지음, 작가, 173쪽, 2021.01)

■ 저자에게 듣는다_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유성호 지음, 작가, 173쪽, 2021.01)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은 조용필의 노래를 문학의 관점에서 읽어본 결과이다. 그의 삶과 노래를 통시적으로 엮어가는 일종의 평전 흐름보다는 그때그때의 키워드나 테마를 충족하는 노래들을 묶어 조용필의 주류 미학을 탐색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많은 작품을 인용하여 그 노랫말이 주는 의미들을 조용필 개인사 문맥은 물론 시대적 맥락에 비추어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조용필은 대중예술이 기울어가기 쉬운 통속성이나 하향평준화의 가능성을 자신과 철저하게 분리하면서 노래가 가닿을 수 있는 존재론적, 의미론적 권역을 정점에서 이룩해낸 ‘가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조용필 노래가 가지는 위대함이 그의 가창력, 무대 매너, 정확한 가사 전달력, 다양한 장르 수용 능력, 노래마다 달라지는 해석력, 발전적 지속성 등에서 온다는 관점 아래, 그가 「한 오백 년」이나 「강원도 아리랑」처럼 고전적으로, 「고추잠자리」나 「못 찾겠다 꾀꼬리」처럼 회상적으로, 「친구여」처럼 원형적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인생론적으로, 「꿈」처럼 공감적으로 우리 시대를 다양하게 그려낸 탁월한 예술가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물론 「여행을 떠나요」처럼 신나는 노래나 「미워 미워 미워」나 「그 겨울의 찻집」 같은 사랑 노래가 조용필 인기 비밀의 근원적 저류(底流)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위안의 미학’이라고 명명한 후에 그 미학이 50년을 흘러 여기까지 와 있다는 점을 살폈다.

이러한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이 책은 조용필 노래의 최종 텍스트가 조용필 자신이라는 관점을 택했다. 그의 노랫말은 여러 사람이 지어 조용필에게 주기도 했고 그 스스로 지은 것도 제법 되지만, 이 책은 그 노랫말의 최종적 입법자이자 귀결점이 바로 그것을 해석하고 소통해낸 조용필 자신임을 증명하였다. 누군가 춤과 춤꾼을 분리할 수 없다고 한 바 있거니와, 조용필 노래에서 어떻게 노랫말과 가수를 떼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의 노래의 작가가 작사가인지 작곡가인지 아니면 노래를 부르는 조용필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노래의 핵심이 가수의 해석력에서 갈라진다면, 조용필의 노래는 조용필 스스로의 해석과 창법과 표정과 시대의 반향이 그대로 하나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의 노래의 최종 텍스트였고 텍스트의 창안자로서 ‘시인 조용필’이라는 비유적 명명을 얻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한 그의 노래를 따라 오랜 기억을 거슬러 오르면서 그의 표정과 심장과 목소리가 들려주는 울림과 떨림을 사랑했던 기억을 소환하여 그의 노래를 활자 안으로 담아낸 결실이 말하자면 이 책이다.

원래 기억이란 기록으로 몸을 바꾸기 이전의 어떤 상(像)이다. 그것이 발화의 순간을 얻으면 기록이 되고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누군가의 마음에만 남는 개인적 침전물이 되고 만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어떤 시기가 따로 있는 법인데 그것을 일러 그 사람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대는 언제였을까? 어떤 시간이 과연 우리의 시대였을까? 그 ‘시대’에 대한 기억이 발화의 순간을 얻으면 그것은 그대로 ‘기억의 문화사’라는 기록이 되어 여러 사람의 기억에 또렷한 점화의 순간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문화사가 되기를 소망하였다.

이 책은 조용필 노래 전체를 통틀어 기원이 되는 노래로 「고추잠자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지목하였다. ‘고추잠자리’나 ‘술래잡기’라는 유년의 기억으로 구성된 그의 이 작품들은 그의 노래가 잃어버린 세계를 탐색해가는 서정적 탈환의 예술이요 가장 아름다웠던 세계를 재현해가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詩)’였음을 알려주었다. 조용필은 그 기원에서 발원하여 나를, 타인을, 인생을 궁극적으로 긍정하게 만들면서 온몸을 쥐어짜는 정성스런 목소리로 시대를 끌어안는 힘을 보여주었다. 웃음과 눈물 사이의 이 폭넓은 스펙트럼은 어떤 충동을 부추기거나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울음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처럼 그의 노래는 지금도 ‘코로나 19’와 싸우는 우리에게 깊은 위안과 치유와 공감과 긍정을 가져다줄 것이다.

끝으로 나는 조용필을 미국의 전설적 가수 ‘밥 딜런’ 이상으로 보았다. 밥 딜런에게 1960년대는 조용필에게 1980년대였다. 그의 원적이 「고추잠자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였음은 이미 강조한 바 있거니와 그의 노래는 아름다운 세계를 불가능하게 하는 가혹한 현실에 대해, 노래가 어떻게 예술적 저항의 목소리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결국 이 책은 조용필이 위안의 미학과 그 ‘너머(beyond)’를 상상하고 실천해온 우리 시대의 가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우리 시대가 마주한 여러 역사적 사건들 앞에 누구보다도 상징적인 노래들을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생애가 시대의 거인으로서의 풍모를 드러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배려하고 또 이끌어갔다. 이는 우리가 끝내 보듬어야 할 조용필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그는 가수의 ‘정점’이자 가수 ‘이상(以上)’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영원한 예술의 파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파문과 함께 많은 분들이 서정적 탈환의 순간을 누리시길 빈다.


유성호 한양대·국문학

연세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서남대학교 국문과, 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거쳐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한양대학교 인문대학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단정한 기억』, 『서정의 건축술』, 『다형 김현승 시 연구』, 『정격과 역진의 정형 미학』,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 등 다수가 있다. 김달진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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