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의 술집에서 어떤 사람이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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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술집에서 어떤 사람이 손짓을 한다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1.02.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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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생활 에세이]

저녁 볕을 배불리 받고 
거슬러오는 작은 배는
왼 강의 밝은 바람을 
한 돛에 가득히 실었다. 
구슬픈 노 젓는 소리는
봄 하늘에 사라지는데
강가의 술집에서
어떤 사람이 손짓을 한다.

 
어릴 적부터 시를 읽으면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딴생각만 나곤 하였다. 시가 어려운 건지 내가 문제인 건지 잘 몰랐는데, 이 시를 보니 온통 내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용운의 ‘강 배’라는 시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가슴에 짝짝 와 닿는다. 딴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부분, “강가의 술집에서 어떤 사람이 손짓하는” 모습이 너무나 실제 모습 같다. 봄 하늘 봄볕의 따스함은 쏟아지고. 

흠, 내가 술을 좋아하여 그런 건 아닐까? 1970년대 말, 20대 후반에 연구소 잠깐 다니던 시절 선배 직원과 함께 천호대교 근처 강변에서 매운탕과 소주 한 잔 (두서너 너더댓 잔?) 한 기억이 지금도 가끔 난다. 분위기를 맞추느라 그때 비가 몹시도 내렸지. 그래 그땐 서울의 한강 변에서도 매운탕을 먹었단다. 

내가 쓴 수필 중에도 시 같은 구절이 있다. “금빛 햇빛이 조각조각 흩어져 상쾌한 얼굴을 스친다. 세모의 햇빛, 네모의 햇빛, 가녀린 햇빛, 넉넉한 햇빛...” 오월 한낮의 텅 빈 테니스장에 혼자 앉아 보면 느낄 수 있다. 오월이 아니어도 좋고 테니스장이 아니어도 좋지만, 혼자여야만 한다. 

시란 여러 기능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갈고 닦는 게 으뜸이 아닌가 한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얇은 사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기가 막힌 표현들 아닌가. 역시 우리말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시인의 으뜸 역할이라고 방금 한 소리를 또 해 본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중 

요사이 우리 시인들이 우리말 가꾸기에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시에 문외한인 내가 알 길은 없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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