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와 바람과 시간이 빚어낸 해안 생태계의 보고…태안 신두리 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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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바람과 시간이 빚어낸 해안 생태계의 보고…태안 신두리 사구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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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충남 태안 신두리 사구
신두리 해안사구.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어있다.

서쪽으로 나아갈수록 바다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곧 거의 평평해 보일 만큼 기울기가 낮은 넓은 해변이 펼쳐졌다. 해빈은 절반쯤 젖어 있어 만조의 높이를 선명히 보여주었고 간조로 인해 넓어진 백사장에는 아이가 바닷새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바다로부터 느릿느릿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오던 모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지나쳐 가더니 불쑥 언덕으로 올라섰다.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서 있는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거쳐 허물어진 고대의 방벽처럼 보였다. 유적을 대하는 신중한 자세로 벽의 가장자리를 타고 올라섰을 때 일순간 느낀 것은 감미로운 충격과 건전한 피로감이었다. 넓게 펼쳐진 모래의 땅은 세상의 모든 정신들이 떠나버린 황량하고 텅 빈 사원 같았다.  

신두리 사구 앞의 해빈. 간조 시 갯벌과 너른 모래사장을 드러내는 완만한 해변이다.

시작은 약 1만 8천 년 전인 최후의 빙하기 때로 볼 수 있다. 빙하기가 천천히 해빙기로 접어들면서 해수면은 점차 상승했다. 서해 깊숙이 바닷물이 밀려들어 왔고, 해안에서는 활발한 퇴적작용이 일어났다. 그러다 약 6천 년 전을 기점으로 현재의 해수면이 유지되었고 이후에는 바람이 모래를 실어 왔다. 신두리 앞바다의 해저와 해빈에는 모래가 풍부했고 겨울마다 불어오는 강한 북서 계절풍은 모래를 옮겨 쌓는 일에 능했다. 그렇게 시나브로 쌓인 모래는 거대한 언덕이 되었다. 약 3.4㎞의 모래언덕이 이어진다. 그것은 좁게는 500m, 넓게는 1.3㎞ 너비로 펼쳐져 있다. 충남 태안의 신두리 모래언덕.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해안사구다.

사구는 상당부분 초본류로 뒤덮여 있으며 배면의 산림사구에는 곰솔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해안초지, 산림사구, 사구습지의 세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해안초지는 오롯한 모래언덕과 이름 모를 풀이나 억새로 뒤덮인 언덕, 순비기나무나 해당화와 같은 관목이 군락을 이룬 언덕 등 다양한 모양과 식생을 가진 부드러운 굴곡으로 연이어져 있다. 바다와 가까운 모래언덕은 상당 부분 풀로 덮여 있다. 풀들은 모든 에너지를 뿌리에 집중시켜 모래땅을 꽉 움켜쥐고는 바람에 저항해 낮게 웅크리고 있다. 그들은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 잘 자라는 염생식물(鹽生植物)들이다. 해당화와 같은 익숙한 이름도 있고, 통보리사초, 갯쇠보리, 좀보리사초, 갯방풍, 갯메꽃과 같은 여리지만 단단한 성격을 가졌을 것 같은 이름들도 있고, 갯그령이나 모래지치처럼 스스로 꿈틀거리는 이름도 있다. 그들을 먹이로 하는 초식동물들이 함께 살고, 또 그들을 먹이로 하는 육식동물도 같이 산다.

사구는 해빈보다 2-3m 높게 펼쳐져있으며 보호를 위해 탐방로 외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모래의 유실을 막고 뭇 생명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두리 사구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대신 데크 탐방로가 놓여 있으며 3개의 코스가 개설되어 있다. 모래언덕, 고라니동산, 억새골, 해당화동산, 옛날 운석이 떨어진 모래밭이라는 작은 별똥재 등 특별한 사구 지형들을 잇는다. 사구의 표면에는 얕은 물결 모양의 바람 자국이 선명하다. 해수에 의해 침식된 사구의 단면에는 층리와 완만하게 기울어진 사층리도 볼 수 있고, 또한 바람에 의해 가운데가 움푹하게 침식된 블로우아웃(blowout) 구조도 볼 수 있다. 바람이 돕고 눈이 밝다면 사막에서 볼 수 있는 초승달 모양의 사구인 ‘바르한’을 발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모래 언덕에 불어오는 탁월풍의 방향을 보여준다. 

두웅습지. 사구와 배후산지 사이 골짜기에 형성된 습지로 람사르에 등록되어 있다. 파고라가 있는 언덕진 곳은 배후산지의 하단부로 7천 년 전에 형성된 땅이다. 

해안초지 배면에 철갑처럼 둘러선 곰솔 군락은 산림 사구 구역이다. 그리고 배후 산지의 전면에 사구습지인 두웅습지(斗雄濕地)가 자리한다. 숲으로 둘러싸인, 길이 200m, 폭 100m가량의 작은 습지다. 신두리 사구의 남쪽, 바다와는 직선거리로 약 7백 미터 떨어져 있다. 산은 약 7천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때 산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고, 빗물은 산을 타고 바다로 갔다. 사구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산과 모래언덕 사이에는 골짜기가 생겼고, 바다로 가던 빗물은 골짜기에 고이기 시작했다. 사구가 성숙해지면서 습지도 성숙해졌다. 그리고 비로소 습지 환경에서만 살 수 있는 동식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두웅습지의 가장 밑바닥에는 사구가 형성될 때 바람에 날려 온 가는 모래가 쌓여 있고 그 표층은 주변에서 유입된 점토 성분과 수생식물의 사체와 같은 유기물로 덮여 있다고 한다. 습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데크길이 놓여 있다. 이곳에는 식물 311종, 육상곤충 110종, 어류와 양서류 20여 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 금개구리와 표범장지뱀과 같은 희귀종도 다수 포함돼 있다. 두웅습지는 2002년 사구습지로는 처음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  

신두리 사구센터. 사구의 초입에 위치하며 사구 지형에 대한 전반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신두리 사구센터의 후문에서 신두리 사구 서문으로 가는 길. 반대방향으로 가면 정문인 동문이다. 

신두리 해안사구 초입에 사구센터가 있다. 지하 1층, 지상 1층의 건물로 신두리 해안사구와 두웅습지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들을 보다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센터 주변도 옛날에는 모두 사구였다. 바닷가에 줄지어 서 있는 펜션들의 땅도 예전에는 사구였다. 사구는, 개발과 건설로 인해 많이 사라졌다. 모래의 이동은 순환과 반복을 통해 해안선을 보호한다. 사구는 물을 정화하고, 사구로 유입된 물은 바닷물이 육지로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고, 동식물들을 살게 한다. 

신두리 해안에는 날아오는 모래를 잡아두기 위한 나무기둥들이 박혀 있다. 

우리나라의 동해안, 제주도, 서해안 등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사구는 많이 줄어들었다. 신두리의 사구가 거대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1990년 초반까지 군사상의 이유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해안 모래밭에 나무 기둥들이 박혀 있다. 모래들을 잡아두기 위한 것이라 한다. 저 기둥들이 어떻게 모래를 잡는지 알 수가 없다. 거대한 손바닥을 땅속에 감춰둔 채 손가락만 불쑥 내밀은 신들의 손 같다. 신화적이고 제의적인 숙연함으로 힘주어 손을 펴 본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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