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미시적’ 소통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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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미시적’ 소통방식
  •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0.01.12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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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최근 2~3년간 한국 뮤지컬 시장은 큰 성장세를 보이지 않았다. 약 3,500억 시장에서 매년 조금씩 성장하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2020년으로 접어든 현재 4,000억 시장이 점쳐지고 있다. 창작과 라이선스 뮤지컬 양 측면에서 다양한 신작과 재공연 레퍼토리들이 기획되면서 4,000억 진입의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뮤지컬 시장의 성장세는 공고했던 라이선스 뮤지컬 우세의 시장에서 창작 뮤지컬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큰 흐름 위에 놓여 있다. 그와 더불어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이 높아짐으로써 IP의 생산과 판매에 다양한 노력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 맞물려있다.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IP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IP는 ‘콘텐츠 IP’로 확장되면 더 큰 폭발력을 갖기 마련이다. 콘텐츠 IP는 저작권과 상표권으로 크게 나뉘는데 이는 팬덤이라는 ‘토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뮤지컬은 팬덤의 동역학으로 움직이는 문화산업이다. 따라서 한 작품이 팬덤을 얻게 되면 직접적으로 팬덤을 겨냥한 굿즈(MD) 산업이 발생하는 방식으로 콘텐츠 IP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폭넓은 콘텐츠 IP로 확장되기는 힘들어도 팬덤을 더 공고히 하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콘텐츠 IP로 확장되는 작품들 리스트에 중소극장 창작 뮤지컬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관객의 자발적인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2019년 SACA(Stagetalk Audience Choice Award)의 결과도 이를 증명해준다. 창작 뮤지컬 베스트 초연 1위로 마니아들은 <호프>를, 일반 관객은 <귀환>을 선택했으며, 창작 뮤지컬 베스트 재연으로 마니아들은 <사의 찬미>를, 일반 관객은 <그날들>을 선택했던 것이다. 즉, 마니아들의 1위는 전부 전문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하는 중소극장 뮤지컬이, 일반 관객의 1위는 아이돌이나 스타가 출연하는 대극장 뮤지컬이 선택된 것이다. 완전히 다른 관점이다.

▲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사진출처=연우무대
▲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사진출처=연우무대
▲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사진출처=연우무대
▲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사진출처=연우무대
▲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사진출처=연우무대
▲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사진출처=연우무대
▲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사진출처=연우무대
▲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사진출처=연우무대

이런 맥락에서 현재 공연되고 있는 <팬레터>(2019. 11. 07 ~ 2020. 02. 02,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와 <여신님이 보고 계셔>(2019. 11. 16 ~ 2020. 03. 01,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는 뮤덕(뮤지컬 덕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형적인 뮤지컬 콘텐츠 IP로 레퍼토리화 되고 있다. 긴 공연기간에도 불구하고 2020년 1월 초 인터파크 순위에 <팬레터>와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각각 창작 뮤지컬 1위와 4위에 여전히 랭크되어 있다. <팬레터>는 창작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대만 국립 공연예술센터 산하 국립극장 NTT의 초청을 받아 대만에서 공연되었으며,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일본 공연을 완료하고 중국 공연도 계획되는 등 공통적으로 아시아 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확장은 국내 시장의 성공에 힘입은 것이었는데, 두 작품은 각각 2016, 2013년에 초연된 이후 지속적인 재공연을 통해 확실한 창작 뮤지컬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 뮤지컬 ‘팬레터’  사진출처=라이브(주)
▲ 뮤지컬 ‘팬레터’ 사진출처=라이브(주)
▲ 뮤지컬 ‘팬레터’  사진출처=라이브(주)
▲ 뮤지컬 ‘팬레터’ 사진출처=라이브(주)
▲ 뮤지컬 ‘팬레터’  사진출처=라이브(주)
▲ 뮤지컬 ‘팬레터’ 사진출처=라이브(주)
▲ 뮤지컬 ‘팬레터’  사진출처=라이브(주)
▲ 뮤지컬 ‘팬레터’ 사진출처=라이브(주)

그렇다면, 두 작품이 오랫동안 흥행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작품이 관객과 ‘미시적인 소통’을 내밀하게 유지하는 방식이 주목된다. 두 작품의 드라마는 극장의 규모에 맞게 굵직한 흐름이 아닌, 복잡하지 않고 비교적 단순한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간의 변화는 크게 일어나지 않으며 고정된 공간 안에서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공연이 가장 초점화하는 것은 ‘사건이 얼마나 내밀하게 다루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작가지망생 세훈의 성장담인 <팬레터>가 유명 소설가 김해진 선생과의 비극적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한국전쟁 중인 남북 군인을 다루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적대적이었던 군인들의 관계를 형제애로 전환하는 것은 작품의 핵심이며 관극 포인트다. 특히 세훈이 필명 히카루로 은밀히 문학활동을 하다가 자신이 흠모하던 구인회 멤버 김해진에게 팬레터를 보내고 이에 김해진은 히카루를 실존 여성-뮤즈로 인식하여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세훈과 그의 얼터 에고인 히카루가 각각 개별적 존재로 분리되고 통합되는 방식으로 무대화되기에 세훈-해진-히카루 사이의 극적 긴장감은 공연의 전반을 이끈다. 또한 배가 좌초된 후 무인도에 갇힌 남북 군인들이 가상의 상황 속에 들어가 자신의 사연을 서로 공유하며 위로하는, ‘아기자기한 형제들’이 되는 과정은 한국전쟁이라는 극단의 상황을 망각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음악은 작품의 정서적인 상태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객석과 소통한다.

작품의 이러한 핵심은 ‘덕후를 양산’하고 덕후들은 대부분 반복관람을 통해 작품을 아주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패턴으로 공연을 소비/소유한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들이 정서가 고조된 상태에서 하는 행동들, 거의 본능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액팅, 자연스러운 신체의 반응들, 울고 웃는 포인트들, 배우들 사이에 밀도가 깊어지는 주고받기의 합, 애드리브 등 미세한 행위 및 신체 반응들이 덕후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작품 자체는 이미 익숙한 상태에서 장면과 장면 사이, 그리고 한 장면 안의 흐름을 자의적으로 분절하여 배우들의 행위 및 정서를 ‘따고 들어가는’ 덕후들의 관람 패턴은 결국 콘텐츠 IP가 되는 창작 뮤지컬의 본질이며 현주소인 것이다. 한국 창작 뮤지컬 시장에 대한 이해는, 이토록 강력한 팬덤 중심의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를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로 있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 창작뮤지컬에서 재현된 서울의 양상”, “여성국극의 혼종적 특징에 대한 연구”, “한국적인 것’의 구상과 재현의 방식”, “번역된 문화와 한국적 디코딩”, “‘근대적 지식인 되기’를 향한 욕망의 서사”,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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