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과 금지를 넘어 시대 변화의 기폭제가 된 지식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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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금지를 넘어 시대 변화의 기폭제가 된 지식의 역사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2.21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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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지된 지식: 역사의 이정표가 된 진실의 개척자들 |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 이승희 옮김 | 다산초당 | 2021년 01월 21일

과학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지식을 억압하고 은폐하려 했던 역사 속 수많은 부질없는 시도들과 지식이 힘을 얻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태동, 사유, 논쟁과 고민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위험한 사상가, 대담한 이단아, 진실의 개척자들이 지식 탄압의 역사 속에 펼쳐 보이는 강렬한 지적 파노라마를 담았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지식의 역사는 곧 억압의 역사이기도 하다. 즉, 가리려 할수록 더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 바로 지식의 본질이고 이것이 우리 지성사를 이끌어온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식 때문에 탄압 당했던 당대의 지식인들, 특히 새로운 발견을 이뤄낸 과학자들의 사례를 시대 배경과 탁월하게 연결해주는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역사가 어떻게 개척되어 왔는지를 인물들의 주장과 목소리로 생동감 있게 들려준다.

그리하여 기원후 4세기경 성에 대한 지식을 원죄와 결부시켜 이후로 천 년간, 혹은 오늘날까지도 터부시되도록 만들었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금지부터 빅 브라더로 불리는 오늘날 정보 통제와 지식 독점 사례까지, 2천 년에 걸친 억압과 금지의 지성사를 완성해냈다. 

지식은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하는가? 오히려 진실의 개척자들은 지식 때문에 억압을 당했다. 하지만 저자는 영원히 억누를 수 있는 지식은 없다고 단언하며 진리의 시금석이 되었던 사실들, 특히 계몽주의를 이끌었던 서구 지식사회를 중심으로 탐구욕의 본질과 이를 강화시키는 금지, 혹은 비밀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저자는 이 기나긴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우주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어 화형 위기에 처한 지오다노 브루노와 교회와 충돌하지 않도록 자신의 연구 결과를 죽을 때까지 숨긴 갈릴레오 갈릴레이처럼, 오히려 금지되었고 비밀이었기에 사람들이 더욱 더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파고들게 했던 역사 속 새롭고 위험한 지식에 얽힌 일화를 꺼내든다. 책에 등장하는 새로운 지식들은 처음에는 어김없이 강한 반대에 가로막히지만,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명백하게 알고 있듯이 곧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저자는 이를 통해 지식 발설의 금지가 오히려 인간의 호기심을 충동질하여 세상에 지식이 더 널리 퍼지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아이디어, 회의적 시선과 격렬한 논쟁들을 접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철학자부터 과학자, 사회적 리더를 아우르는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을 등장시켜 촘촘하게 엮어 보인다.

앎이란 분명 순전한 기쁨이다. 하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적했듯이 지식은 가능성이며 또한 힘을 의미하기에 이것의 어두운 면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원자폭탄 발명에 기여한 핵물리학자들이 자신이 발견한 것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스스로 간직했다면 20세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또 오늘날 배아 연구는 어떠한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지식을 얻기 위해 혹은 감추기 위해 노력하는가? 그리고 초정보 사회에도 여전히 비밀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런 지식들마저도 규제할 이유가 전혀 없을까?

저자는 지식의 궁극적인 승리와 인간 사회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에 대해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입장이지만, 거기에 인간이 지식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다. 괴테의 발라드에 등장하는 마법사의 제자처럼, 우리는 어떠한 금지로부터도 지식을 훔쳐낼 수 있지만, 또 그들처럼 훔쳐낸 지식으로 인해 벌어진 일을 통제할 수 없어 곤란에 빠질 수도 있다. 특히 지식사회로 완전히 접어든 오늘날 지식의 가치는 과거와는 분명 달리 평가되어야 하며, 그 영향력이 커질수록 이용하는 사람도 통제력을 스스로 갖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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