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기록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회상, 세계관과 문화의 실마리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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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기록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회상, 세계관과 문화의 실마리를 품고 있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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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풍문부터 실록까지 괴물이 만난 조선 |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92쪽

조선에 괴물이 살았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삼천리강산을 누빈 괴물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 기록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눈길이 간다. 어떤 괴물은 백성의 마음을 흔들었고, 어떤 괴물은 궁궐을 뒤집어놓았으며, 어떤 괴물은 이역만리에서 흘러와 백두대간의 산중왕으로 군림했다. 왕과 신하, 백성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괴물을 만났는지, 그 괴물은 왜 나타났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등을 놓고 고민했다. 그래서 조선의 괴물 기록을 보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회상, 세상을 이해하는 관념과 문제의식 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부터 《열하일기》까지 각종 사료에서 발굴한 스무 괴물을 중심으로 조선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기존의 백과사전식 서술에서 벗어나, 조선을 만나는 새로운 소재로서 괴물 이야기를 풀어간다. ‘도깨비’, ‘흰 여우’ 등 친숙한 괴물들뿐 아니라 ‘삼구일두귀(三口一頭鬼)’, ‘녹족부인(鹿足婦人)’ 등 낯선 괴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속에 담긴 조선의 다양한 풍경을 그린다. 여기에 조선 팔도 어디에 괴물이 살았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조선괴물지도〉와 각국의 신화를 한국풍으로 재해석해 표현하는 삽화가 그림이 더해져 보는 맛을 더한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주제는 ‘백성과 괴물들’, ‘왕과 괴물들’, ‘외국에서 온 괴물들’이다. 수많은 백성이 조선 각지에서 괴물을 만났다. 이때의 만남은 단순한 목격이나 조우가 아니었다. 백성은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 괴물의 존재를 믿었고, 그 믿음이 강할수록 괴물은 백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먹고사는 일을 놓고 가장 활발히 벌어졌다. 농업이나 어업과 관련된 괴물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 이유다. 하늘에서 내려와 밥을 많이 얻어먹은 대가로 일기를 예보해준 삼구일두귀, 가뭄과 홍수를 불러와 재앙으로 받아들여진 ‘강철(?鐵)’, 바다를 붉게 물들여 물고기를 죽이는 ‘천구성(天狗星)’, 양질의 기름을 짜낼 수 있어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된 ‘인어(人魚)’ 등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괴물들의 이야기가 매우 입체적이라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에 더해 삶의 현장에서 겪고 느낀 것들이 괴물 이야기에 녹아 있다. 예를 들어 강철 이야기는 임진왜란으로 형성된 피폐한 정서가 깔려 있다.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라는 속담은 아무리 공들인 일이라도 큰 재앙이 닥치면 별수 없다는 뜻으로, 전쟁이라는 파괴적 상황에 부닥친 백성의 허무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괴물 이야기는 백성의 처지에서 조선을 바라보게 한다. 옛사람들은 자신의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 실마리를 사람 아닌 존재, 즉 괴물이 품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임금이라고 괴물에게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성종은 영의정 정창손과 호조좌랑 이두의 집에 나타난 귀신 ‘지하지인(地下之人)’의 처리를 놓고 신하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외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인종이 눈을 감은 날 검은 기운인 ‘물괴야행(物怪夜行)’이 서울을 휘감아 백성이 두려움에 떤 이야기, 일군의 인물이 도깨비를 동원해 사도세자를 암살하려다가 적발되어 영조의 분노를 산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이처럼 괴물 이야기는 권력자들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권력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한 백성의 바람을 담고 있다.

아무리 폐쇄적인 국가여도 문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괴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외국 괴물 이야기가 한국에 전해지며 어떻게 변형되었고 무엇이 유행했는지 밝힐 수 있다면, 당시 한국인의 성향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에는 어떤 외국 괴물들이 들어왔을까. 가장 먼저 ‘금두꺼비’를 꼽을 수 있다. 부의 상징으로 너무나 익숙해 대개 우리 토종 괴물로 생각하지만, 금두꺼비는 고대 중국의 ‘항아(嫦娥)’ 설화가 원조다. ‘산예(사자)’도 마찬가지다. 북청사자놀음 같은 전통 사자춤 속 사자의 모습은 인도의 불교 문헌에 영향받은 것이다.

자연스러운 문화 교류라기보다는 국가 정책의 결과로 조선에 소개된 괴물도 있다. 바로 사람 1만 명을 잡아먹었다는 ‘만인사(萬人蛇)’다. 이 괴물은 원래 여진족 계통의 북방 이민족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런데 세종의 북방 개척으로 조선에 그 이야기가 흘러들어 온 것이다. 만인사는 사람 1만 명의 피가 뭉친 ‘만인혈석(萬人血石)’을 품었다는데, 다양한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한 북방의 처절한 역사가 녹아 있는 듯하다.

이처럼 괴물 이야기는 당시 국가 간 문화 교류의 흔적과 그 역사적 맥락을 품고 있다. 이는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흔히 생각하지 못한 조선의 색다른 모습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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