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대학생 모의투자대회’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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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대학생 모의투자대회’ 없애라
  •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 승인 2021.02.14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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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교보문고 2020년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top10

출판시장이 온통 주식투자 책으로 난리다. 주식시장의 상승세로 이른바 ‘동학 개미’가 대거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형서점 결산에서는 주식 관련서가 포함된 경제경영 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교보문고의 경우 전년 대비 27.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에는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를 비롯해 재테크 관련서가 4종이나 올랐다. 2019년에는 이런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 2019년과 2020년의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권 목록을 비교해 보면 소설은 25종에서 17종으로 줄고 인문 도서도 18종에서 14종으로 감소했다. 대신 경제경영서는 7종에서 16종으로 비중이 2배 이상 커졌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불황에 더해 부동산 시장이 대혼란에 빠지고, 근로소득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고 노후 대책도 세우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들이 주식시장으로의 쏠림을 가속화시켰다. 주식으로 재미 봤다는 사람이 늘면서 새롭게 증권 계좌를 만드는 사람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주식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의 자금이 100조 원 넘게 주식시장에 유입되었다. 이런 열기로 인해 주식을 시작하는 초보자들, 이른바 ‘주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들이 2월 중순 현재 베스트셀러에 대거 올라 있다. 

종합 베스트셀러 50위권 내에만 초보자용 주식 책이 11종이나 올라 있다. 모든 책의 분야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리며 1위를 차지한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 질문 Top 77』은 매일 아침 유튜브 방송 ‘삼프로TV’에서 주식 시황과 투자 정보를 설명해주는 방송을 진행하는 ‘염블리’(염승환)가 쓴 주식투자 입문서다. 이외에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 주식 왕초보가 알아야 할 기본을 풀이한 『주린이도 술술 읽는 친절한 주식책』, ‘주식투자를 위한 종목 발굴 내비게이션’을 표방한 『상장기업 업종 지도 2021』, 표지에 ‘연수익률 100% 샌드타이거샤크(박민수)가 알려주는 10단계 종목 분석법’이라 찍은 『마흔 살에 시작하는 주식 공부 5일 완성』, ‘13년간 주식으로 단 한 해도 손실을 본 적이 없는 피터 린치 투자법’을 알려주는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주식시장 전망과 투자 전략을 설명한 『미스터 마켓 2021』 등도 상위권 목록에 올랐다.

최근의 주식투자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현직 월스트리트 트레이더인 뉴욕주민(유튜버 이름)이 투자 방법을 알려주는 『뉴욕주민의 진짜 미국식 주식투자』, ‘돈 되는 미국 주식 종목 찾는 방법’을 내건 『미국 주식으로 부자되기』 같은 책도 상당한 인기를 끌며 종합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인기가 있는 주식투자 책은 대체로 성공적인 수익률을 올렸던 이들이 유튜버로 활약하며 주식을 배우려는 초보자들을 상대로 투자의 기본을 알려주는 내용이 중심이다. 그래서 초보자용 주식투자 책들은 단기적으로는 큰 특수를 보고 있지만, 주식시장의 거품이 걷히거나 신규 투자자 유입 붐이 지나면 축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자산이나 경험이 없는 대학생을 비롯한 20대가 개인 주식투자 붐을 견인한다는 점이다. 주식자산의 연령별 비중에서 20대 점유율은 2019년 5.5%에서 2020년 13.3%로 대폭 상승했다. 지난해 1~3분기 20대의 주식투자 신규 계좌가 310만 개였는데, 연령대별 증가율에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한 증권사의 신규 계좌 중에서 20대의 비율이 무려 37.8%나 되었다. 이런 열기로 대학가에서는 주식투자 동아리의 인기가 상종가라고 한다. 증권사들의 신규 계좌 개설 프로모션도 도를 넘을 만큼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은 마치 오락이나 온라인 게임처럼 수시로 주식을 사고팔며 초단타 매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장이 열리지 않는 주말이나 연휴 때 ‘주식 금단 증상’까지 나타날 만큼 주식투자 중독 증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책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경우 사설 학원에서 주식투자를 배우는 사람도 많다.

주식투자를 매개하는 증권사들은 대학생의 주식시장 유치를 위해 대학생 모의투자대회를 자주 개최한다. 국내주식 리그와 해외주식 리그로 나누어 진행할 만큼 진화했다. 어떤 곳은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의투자대회에 참여했다고 언론에 보도자료까지 뿌렸다. 입상자에게는 최대 수백만 원대의 장학금은 물론이고 인턴십 기회 제공, 공채 시험에서 1년간 서류 전형 면제 같은 특전을 부여한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당연히 비대면 계좌를 보유해야 한다. 증권사들은 실전투자 경험을 제공하고 건전한 투자문화 조성을 위한 목적이라고 강변하지만,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는다. 단 몇 명에게 주는 얄팍한 장학금(상금), 그리고 취업난 속에서 입사 전형 우대를 하는 것처럼 꾸민 마케팅 행사를 미끼로 내걸어 신규 고객을 만들려는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미래의 대들보인 대학생들이 학업과 취업 준비에 열중하기보다는 아까운 돈과 시간을 주식투자에 투여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가에도 부동산학과에 이어 금융경제학과, 금융자산관리학과처럼 주식투자 전문가를 양성하는 재테크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이미 성인인 대학생들을 학생이라는 이유로 주식시장에서 배제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학창 시절에는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기성세대와 사회의 책임이다. 세상에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대학생의 주식투자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적어도 증권사들의 대학생 모의투자대회 같은 얄팍한 상혼의 마케팅 행사만이라도 규제해야 하겠다. 증권사들이 대학이나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면 수익금의 상당액을 순수한 장학금으로 내놓으면 될 일이다.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로 한국출판학회 부회장 겸 출판정책연구회장, 일본출판학회 정회원이다. 대학에서 출판문화론 등을 강의한다.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위원, 서울도서관 네트워크 위원장, 경기도 지역서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출판산업사』를 썼고, 옮긴 책으로 『서점은 죽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책』, 『책의 소리를 들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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