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과 김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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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과 김학의
  • 박경신 고려대·법학
  • 승인 2021.02.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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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명의 “악인”에 대한 응징 과정이 논란이다. “선한 사람들”에 대한 응징은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변화는 영웅들에 의해 주도되지 않으며 시대의 흐름이 영웅들을 만들어낸다는 톨스토이의 철학을 믿는다. 룰라가 감옥에 갔다고 실패할 변혁이라면 원래 변혁이 아니었다. 하지만 “악인”에게도 정의와 절차를 엄밀하게 행사할지는 변혁의 내용을 구성하는 작업이다. 

판사에 대해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 위헌적인 사법농단을 행했다고 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내부징계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미 징계를 마친 상황이었고, 지금의 사표 수리 거부는 국회 탄핵의 유효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판사의 지위를 국회의 의지에 결부시키는 것은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사법부의 독립에 대한 영향? 김기영, 박재영 판사(현재 헌재재판관 및 변호사)들은 스스로를 희생하며 사법부의 독립은 그 조직의 독립성이 아니라 개별 법관의 독립성임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더 엄밀해야 한다. 법관의 독립성이 중요한 이유는 재판의 독립성 때문이다. 대법원장은 판사의 지위를 국회의 의지에 결부시킨 잘못이 있지만, 임성근 판사는 빨간 펜을 들고 다른 판사의 재판에 직접 개입했다. 대법원장의 잘못이 임성근 판사의 그것보다 크지 않다. 

현행법상 사표 수리를 거부할 정당한 사유는 많이 있었다. 법원 징계를 할 때 몰랐던 사실들이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졌으니 법원 징계가 부족했었다고 자책했을 수 있다. 반드시 국회 탄핵이 아니더라도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에서 탈피해서 공직자로서의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든 더 느끼도록 해야만 미래의 사법농단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탄핵 기회 보존 시도는 미래의 재판독립이라는 만인을 살리기 위해 1인을 희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는 아직도 대법원장 1인, 즉 대통령이 임명한 1인이 판사의 지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급심의 판결을 파기할 권한이 있는 자가 하급심 판사들 인사까지 하게 되면 재판독립은 불가능하다. 박근혜-양승태는 이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를 무기로 사법농단을 벌일 수 있었다. 이번 사태도 임성근이 연구직을 마치고 재판복귀를 했기 때문에 가볍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사법농단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유럽식 사법행정위원회 설치를 미루고 있는 여당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사실 여당이 탄핵에만 목매고 있는 것도 큰일이다. 어차피 탄핵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헌법적 징계이다. 판사직에서 이미 내려와 강제퇴출이 어렵더라도 퇴직 후 변호사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기타 징계 방법이 있다. 개인을 꼭 집어내기 어렵다면 ‘2017년 폭로된 사법농단 행위에 대한 위헌판결을 받은 판사들’ 전원에 대해 법을 통과시킬 수도 있다. 탄핵 헌재결정도 예측 불가다. ‘악인’에 대한 징계는 변혁의 내용을 구성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도리어 더 창의적이어야 한다. 

김학의 사태는 다르다. 기존의 출국 금지제도 자체도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는 특이한 제도이다. 수사나 재판을 위해 누군가의 이동권을 제한해야 한다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이행하는 것이 헌법상 적법절차에 부합한다. 현재 법무부도 그 문제점을 알기에 2019년도부터 최소한 특정 요건(범죄 수사의 개시)이 충족될 때만 이행되도록 제한하였다. 그런데 법무부는 이를 스스로 위반하였다. 이런 식으로 김학의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변혁을 부정하는 일이다. 1인의 징계를 위해 만인 즉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정하는 일이다. 더욱이 위헌도 아니고 불법인 일이다. 엄정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     

법무부는 권한이 없는 일을 저질러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했다. 대법원장은 권한을 가진 일을 하면서 부적절한 언사를 행했다. 상황에 비례하는 대처가 필요하다.


박경신 고려대·법학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 캘리포니아 대학교(UCLA) 로스쿨을 졸업했으며, 한동대학교, 법무법인 한결을 거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문 법률 저널 KULR과 임상 법무 교육 기관인 공익법률상담소를 창간 및 창립했으며, 사단법인 ‘오픈넷’ 이사, ‘참여연대공익법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로널드 드워킨의 『정의론』, 『생명의 지배 영역: 낙태, 안락사 그리고 개인의 자유』(공역)를 번역했고 그의 사상을 다룬 『자유주의의 가치들』(공저)을 저술했으며 그밖에 주요 논저로 『표현 통신의 자유』, 『진실 유포죄』, 『사진으로 보는 저작권, 초상권, 상표권 기타 등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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