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정치는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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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정치는 발전한다
  • 조창현 논설고문/전 한양대 석좌교수·행정학
  • 승인 2021.02.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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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현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정치에 더 이상 기대를 포기한 듯한 말을 한다. 물론 지금 겉으로 나타나고 있는 국회 안팎의 정치행태를 보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것도 정권이 몇 번씩 바뀌었는데도 여야가 하는 언행은 거의 비슷하며 그 내용도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정권이 바뀐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까닭은 지금의 야당이 집권 했을 때나 지금의 여당이 야당 시절에 그러지 않았는지 스스로 물어볼 경우 그들도 양심이 있다면 부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이 국민의 기대에 미달해도 한참 모자란 수준이라는 평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나라 정치발전의 전망을 절망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는 아무리 실망스럽고 못마땅하더라도 조금만 우리의 시각을 더 넓혀보면 그렇게 실망할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100년간 일어났던 일을 조금만 반추해 봐도 우리 정치가 우리의 경제발전 속도에 비해서 뒤떨어지기는 하나 그런대로 많이 발전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먼저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잃은 나라를 되찾아 우리 역사상 최초의 자유민주 정부를 수립했고, 6.25동란의 폐허 속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선진국의 문턱까지 왔다. 또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극복하여 거의 매 십년마다 여야 간에 정권교체가 당연시되는 나라가 되었으며 인권옹호와 시민의 자유권 지수가 미국이나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같은 기간에 정치적 선진국으로 우리가 많이 언급하는 미국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무엇보다도 인종과 성차별로 인간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투표권조차 부인하여 사실상 두 개의 나라로 쪼개져 지내왔으며 산업화 초기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노동 착취, 특히 가난한 소년 소녀의 노동학대는 지금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으며 노조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사업주가 직접 총기를 사용했는가 하면 이에 노조 역시 조폭과 같은 조직으로 대응하다 보니 강성노조가 된 기록이 수두룩하다. 또한 1930년대의 경제공항은 생산부족이 그 원인이 아니라 지나친 빈부격차로 소비가 부족해서 생겼고 길거리에서 구걸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해야만 했던 대졸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 정치는 어떠했나. 1865년 노예해방으로 시작된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공화당의 독주로 남쪽은 민주당, 북쪽은 공화당으로 나뉘어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는 근 100년 동안 모두 지역당의 누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뿐인가. 지금 우리가 선진국 국회의 제도로 잘못짚고 모방하려는 이른바 필리버스터(Filibuster)란 제도도 사실은 혹인 해방이 있은 지 백년이 지나도록 인종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빌미를 준 “인종 구별은 차별이 아니다(the segregation is not discrimination)”라는 판례를 뒤집기 위한 연방정부의 입법을 방해할 목적으로 보수적 남부출신 민주당이 만들어낸 제도임을 알기나 하는지 궁금하다. 

최근에 보인 미국 대통령 선거의 난맥상 역시 1776년 미국 헌법 제정 시 특수한 정치적 이유로 도입된 이른바 선거인단(the Electoral College) 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오늘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들이 모두 지키는 “1인 1표”의 대 원칙에 위배되는 것임을 다 알면서도 그대로 유지하는 이유는 보수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2016년도 대선에서 대중투표서는 졌으나 선거인단 선거에서 이긴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집권하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잘못(거짓말만 3만개)을 포용한 자국민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이번 대선의 두 투표에서 모두 패배하자 만들어 낸 “내란음모”(미 하원에서 두 번째 탄핵 됨)가 빚어낸 참사요 추태였다. 

지면관계로 다른 나라의 예를 열거하지 못하나 이웃인 일본을 보자. 1945년 패전 전까지는 군사독재국가였고 그 후에도 말이 민주국가이지 1948년 이후 정권교체가 꼭 한번, 그것도 아주 짧은 사회당 집권을 빼면 사실상 지난 70여 년간 정권교체가 없는 정치적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비하면 남북이 갈라져서 전쟁까지 치르면서도 우리가 이룬 정치적 발전은 결코 작은 성취가 아니다. 아직도 우리 정치가 가야 할 길이 멀고 달라져야 할 것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작금의 거의 절망적, 저주적 정치권의 언어와 양태가 우리를 실망시키나 그것은 혹시 우리 민족의 조급한 성미 탓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조창현 논설고문/한양대 명예교수·행정학

연세대 정법대를 나왔으며 아메리칸대학에서 행정학 석사,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팬부록 캠퍼스 정치학 교수 및 학과장(1968-1981), 귀국 후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행정대학원장, 지방자치 연구소장, 지방자치대학원장, 부총장 역임. 정년퇴임 후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위원장, 제2, 3대 중앙인사위원회장, 제3기 방송위원장을 지냈으며 한양대 석좌교수를 거쳐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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