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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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 승인 2021.02.08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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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내 공부방 한 편에 루 살로메와 버지니아 울프의 사진이 걸려 있다. 글을 쓸 때 영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하면 기도를 드리는 대상이기도 한데, 왼쪽 얼굴을 더 많이 보여주는 사진으로 화답하는 버지니아 울프는 감성적인 글을 쓸 때 더더욱 다가오는 얼굴이기도 하다. 그녀가 작품으로 펼치는, 이른바 의식의 흐름 기법에 동참하기를 희원하면서.

언뜻 보면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의식의 흐름 기법이 위주여서 이해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나 플롯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소설을 포함한 문학작품은 인간의 삶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울프의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네 일상을 보자. 그것은 한 편의 소설처럼 그렇게 잘 짜인 이야기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발단 다음에 전개, 전개 다음에 위기, 위기 다음에 절정, 다음에 결말 순으로, 그렇게 원만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면서 순간순간 내일 마감인 원고를 걱정하기도 하고, 삼십 년 지기 친구랑 헤어진 어제를 불현듯 되새기기도 한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 미래를 무차별적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특별한 줄거리 없이, 등장인물의 두서없는 갖가지 생각이나 느낌을 고스란히 서술하는 기법이 의식의 흐름 기법이고, 우리네 일상은 이와 무척 닮았다. 그런 점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글들은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는 소설의 정신에 가장 진솔하게 부합하는 작품이리라.

Virginia Woolf in 1902<br>
Virginia Woolf in 1902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은 그래서 오히려 친숙하기까지 하다. 그저, 이야기의 흐름에 온 몸과 마음을 내맡기고 함께 유영하면 되니까.   

『댈러웨이 부인 Mrs. Dalloway』은 20세기의 빼어난 문학작품으로 주저 없이 꼽히는 작품이다. “복잡하지만 아름답고, 섬세하지만 대범한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상류층 집안의 안주인으로 살고 있는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파티를 여는 하루 동안(정확하게 말하면 12시간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단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댈러웨이와 그녀를 스쳐가는 인물들 각각의 내면을 통해서 삶의 공포감이나 불안감 그리고 희열의 실체가 무엇인지,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내밀하게 묻는다. 

외관상으로는 꽤 안정적인 정부 고관의 아내인 50대의 댈러웨이 부인.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심하게 앓았던 댈러웨이 부인은 몸이 회복되자 저녁 파티에 쓸 장식용 꽃을 사기 위해 부산한 런던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런던의 본드 스트리트를 걷다가 불가사의한 미로를 헤매게 된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이러한 때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과거와 현재 미래의 경계를 구분 짓는 의사당 시계탑에 있는 빅벤(Big Ben). 부산한 거리에서 갑작스런 차의 연속폭발음이 울리면서 이야기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작품 속의 또 다른 인물인 셉티머스의 의식 속으로 옮아간다. 장면은 다시 댈러웨이 부인에게로 옮아간다. 뭐, 이런 식으로 의식의 결들이 자유분방하게 넘쳐흐른다. 

셉티머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심각한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던 남자로, 끝내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만다.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는 만난 적도 없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사이다. 이후 파티 도중 댈러웨이는 셉티머스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자살 소식으로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그녀는 심경에 큰 파장을 일으켜 삶의 의미를 헤아리고, 마침내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건져올리게 된다. 댈러웨이 부인은 감정이입을 통해 셉티머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고,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체감하는 것이다. 기이하고도 신비한 체험.   

죽음은 의사소통을 하려는 한 시도였구나. 중심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사람들 말이야. 중심은 신비하게도 그들을 피하지. 친밀함은 멀어지고 황홀경은 사라지지. 사람은 혼자다. 죽음에는 포옹이 있구나.

삶과 죽음, 의미와 무의미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로 관통하는 삶의 실체임을 댈러웨이 부인은, 아니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에게 전한다. 대화 또는 의사소통. 그 속에서 우리들은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느낀다. 그로부터 인간이 품을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고독이나 고통을 마주한다. 실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진솔한 말하기 방법의 효험이 아닐 수 없다. 하루라는 시간이 주는 우주적 의미란. 

『댈러웨이 부인』을 다 읽었다면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를 이어 보면 좋겠다. 「디 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축으로 한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세월』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 ‘시간들’이 『댈러웨이 부인』의 출판 전 제목임을 감안하면, 영화 「디 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가 한층 더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 마음으로 오는 데 일조할 것이다. 이 영화 역시 『댈러웨이 부인』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감상하는 것이 관건이다. 필립 글래스의 단조로운 그러나 결코 단조롭지 않은 OST는 ‘디 아워스’의 또 다른 감각의 의미층을 형성하는 놀라운 선물이다.

하여,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디 아워스」 영화를 되도록 보자. 줄거리 요약은 접어두고 사람 마음속을 이저리 유영하는 느낌을 만끽하면서, 마치 그녀가 우리 손을 꼭 잡고 한 사람 마음에서 다른 사람 마음속으로 이끄는 듯한 착각에 빠지면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지, 사람은 왜 사는지 들의 질문들을 던지면서. 외부에서 나아가 내부에서 본 인간의 삶들에 섬세한 눈길을 주면서.

문득,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가 떠오른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뜬금없는 연상작용이 한없이 자유롭다. 이러한 자유가 더더욱 귀하게 다가오는 2021년 2월이다.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시인·문학비평가.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현대시)을 전공하였다. 1990년 『문학예술』 제1회 신인상 시 부문 당선, 1991년 『심상』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익숙한 소리』(시집), 『현대시와 문화의식』, 『한국전쟁과 시』 등이 있으며, 그 외 공저로 『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한국 서술시의 시학』, 『한국 현대문학의 성과 매춘』, 『몸의 역사와 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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