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부터 자율주행차까지!…과거-현재, 유산-첨단, 인문-공학 이분법을 넘어선 새로운 접속
상태바
대동여지도부터 자율주행차까지!…과거-현재, 유산-첨단, 인문-공학 이분법을 넘어선 새로운 접속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2.07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첨단X유산: 역사와 과학을 꿰는 교차 상상력 |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획) 지음 | 동아시아 | 392쪽

고려대학교 인문대학과 공과대학 교수진이 박물관에 모였다. 여기에 학예사와 전통기술 복원자를 비롯한 문화유산 현장 전문가들이 합세했다. ‘첨단’과 ‘유산’이라는 대척점에 서 있는 표현을 하나로 묶은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전통 유산과 첨단 과학을 한데 모아 연결한다. 전통 유산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욕망, 이해관계, 역사뿐만 아니라 당대 가장 최첨단의 기술이 담겨 있다. 또한 첨단기술 속에는 공학 및 과학자들이 발명해낸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해당 기술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욕구와 시대의 필요가 들어 있다. 따라서 전통 유산과 첨단 과학을 한데 모아 그 가치와 연결점을 철저히 해부한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넘어, 역사와 과학을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이자 ‘융합’의 시대인 지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지식과 사유 방식을 제공한다.

책의 각 장에서는 키워드에 맞는 전통 유산과 과학기술을 각각 하나씩 소개한다. 가령, 1장 ‘시선’에는 조선 회화의 정수로 평가받는 〈동궐도〉와, 첨단기술로 떠오른 ‘드론’을 담았다. 과학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의 ‘원근법’을 거부하고, 내려다본 세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도 궁궐과 자연의 장엄함을 묘사한 동양의 ‘부감법’은 현대의 최첨단 기술인 드론의 시선과 연결된다. 〈동궐도〉와 드론이라는 낯설고도 신비로운 연결을 통해 인간이 세상을 바라봐온 방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고찰한다. 〈동궐도〉에 표현된 부감법은 미술사적으로 발전된 형태의 기법일 뿐만 아니라, 실제 사물을 아주 정밀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기술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 이렇듯 이 책은 유물에 담긴 과학적 정합성을 찾아내고, 드론으로 〈동궐도〉를 촬영하고 이를 3D 도면으로 만들어 실제 동궐 복원에 활용하는 등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면서 과학기술을 유산에 적용하는 실질적인 연결점 역시 놓치지 않고 제시한다.

4장 ‘철기’에서는 20년 이상 전통 제철법과 도검 제조법을 복원하고 있는 이은철 도검장이 조선시대의 사인검을 통해 한국의 전통 제철법을, 국내 대표적인 철강 전문가인 이준호 교수가 포스코에서 개발한 기가스틸을 경유하여 한국이 만들어낸 차세대 제철법을 나란히 설명한다. 그렇게 인류 문명의 중심에 서서 역사를 바꿔온 철기 문화가 21세기에는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6장의 ‘지도’에서는 30년 이상 『대동여지도』를 연구한 김종혁 전 교수가 지도 최초로 링크 앤 노드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지역 간의 네트워크를 표현하고자 했던 『대동여지도』의 숨겨진 가치를 파헤친다.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에 성공한 한민홍 전 교수가 바통을 이어 받아, GPS기술을 바탕에 둔 자율주행기술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발전해가고 있는지, 자율주행기술에서 대동여지도의 가치와 정신이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처럼 이 책은 과거의 전통 기술이 현재에는 어떤 기술로 변주 및 발전되어 왔는지 그 흐름을 짚기도 하고, 과거에는 ‘수단’에 그쳤던 유산이 지금은 어떻게 ‘주체’가 되어 새로운 기술의 중심에 서 있는지 새롭게 조망하기도 한다. 유산과 기술, 역사와 과학 간의 연결고리를 읽어내는 이 책은 변함없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문화유산의 본질을 증명하며, 빠른 속도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과학기술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를 내다보는 새로운 통찰력을 길러준다.

이 책은 단순히 미래에는 어떤 기술이 출현하게 될지에 대한 논의를 넘어, 앞으로는 우리가 어떤 패러다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될지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8장 ‘시간’에서는 조선시대의 봉수를 비롯한 마패부터 현대 5G 기술에 이르기까지 이동통신기술의 발달사를 짚는다. 5G를 기반으로 한 첨단기술을 통해 시간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기존과는 전혀 다른 시간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9장 ‘생명’에서는 탄생을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태를 담아 묻었던 ‘태항아리’와 유교 방식으로 죽음을 애도하는 조선의 제사 의례를 다룬다. 시대에 따라 생사관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죽음을 극복하고자 했는지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바통을 이어받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바이오기술을 통해 현재 과학 분야에서는 어떤 기술로 탄생과 죽음의 방식을 바꿔가고 있는지를 다룬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조절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멈춘 후 냉동 보관하여 죽음의 상태를 유예시키는 냉동 인간 기술과, 20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가장 최첨단의 기술인 ‘유전자 가위’를 통해 염기서열을 변형하여 맞춤형 인간을 탄생시키는 복제 인간 기술을 소개한다. 역사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유동적인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는 ‘생명’을 마주하며, 독자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앞으로는 삶과 죽음이 어떠한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게 될지를 상상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