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고전사유와 현대물리학, 이 두 사유는 상호 연결과 재해석의 여지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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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전사유와 현대물리학, 이 두 사유는 상호 연결과 재해석의 여지가 있는가?
  • 오태석 동국대·중문학
  • 승인 2021.02.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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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

■ 저자에게 듣는다_ 『시공간의 인문학: 과학으로 본 융합인문학』 (오태석 지음, 역락, 358쪽, 2020.12)

시간과 공간은 물질과 생명 존재의 바탕이며, 우리는 이 경계 안에서 삶을 영위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 시공간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았다. 4세기말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시간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충분히 풀지는 못했다. 또 8세기 중국의 이백은 “이 세상은 만물이 거쳐 가는 여관이며, 시간은 백대의 나그네구나.(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라며 시공간에 갇힌 인간 존재의 숙명을 아쉬워했다. 

이렇게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 존재의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바탕으로서의 절대 시간과 공간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 전환은 한 세기 전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두 차례의 상대성이론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뉴턴 고전역학의 기초가 되는 실체로서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개념 대신 시간과 공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물질과 에너지의 밀도는 중력을 낳고 중력은 시공간을 휘게 만든다고 했다. 이후 미시세계의 이론인 양자역학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세계이해는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 마디로 지난 백년의 물리학은 세계 이해에 대한 전혀 새로운 질문과 답의 치열한 모색이었으며, 그 여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러면 존재의 마당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 오늘날 과학과 함께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인문학은 어떠한가? 필자의 질문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인간 존재의 중요한 토대인 시공간에 관한 주역, 노장, 불교 등 동아시아 고전 사유와 시선 상의 특징을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 현대물리학의 성과와 연결하여 인문기반 융합관점에서 메타적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 출발부터 상이한 동아시아 고전사유와 현대물리학, 이 두 사유는 상호 연결과 재해석의 여지가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며,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논하고 있다. 그것은 현대 자연과학과 우리시대 인문학, 동서양의 시간과 공간론, 동아시아 문학예술의 초월적 시공간, 양자역학 소수파인 데이비드 봄(David Bohm)의 ‘숨은변수이론’에 대한 인문학적 검토, 0과 1, 음과 양, 유와 무의 정보이론으로 본 주역 내재포괄의 음양론 및 노장 양행·병작 시선과, 양자컴퓨터 추동 방식의 상호 비교, 그리고 중용의 時中과 중관사유로 본 이분법 너머의 동아시아 고전텍스트의 현재적 의미 등이다.

위 논제들을 책의 목차에 따라 순서대로 기술한다. 도입부인 제1편은 서구 철학과 자연과학의 주안점을 역사적으로 개관하면서 ‘인문융합’ 연구의 필요성과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그간의 융합이 주로 ‘과학기반 인문참조’의 기술적 융합인데 비해, 본서는 인문기반에 과학을 참조하는 인문융합을 지향한다. 이러한 인문기반 융합의 토대가 바로 설 때, 개인과 조직은 탄탄한 기초 체력과 함께 창의성을 꽃피울 것이다.

이어 제2편에서 제4편까지는 서양, 동아시아 사유, 동아시아 문학예술의 세 방면에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융합관점에서 연결 설명하고 있다. 양자역학의 출발점은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지닌다는 점인데, 동아시아 사유에서 이러한 양가적 이중성은 낯설지 않으며, 실체적 입자에 기초한 서구의 시선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다. 필자는 동아시아 사유와 문예의 상당 부분이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인 파동적 공명과 얽힘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것을 다양하게 예증하였다. 

제5편은 현대물리학과 동아시아 고전사유의 세계인식에 관한 비교 고찰이다. 여기서는 양자역학 비주류면서 아인슈타인 EPR 계열의 결정론적 과학철학자 데이비드 봄이 제기한 접히고 펼쳐지는 두 종류의 세계질서로서의 ‘숨은변수이론’과, 주역·노장·불교 등 동아시아 세계인식의 상관성을 연결 설명했다. 봄의 양자역학 가설은 국소영역에서는 벨 부등식으로 오류임이 증명되었지만, 비국소 영역에서는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인데, 이 글은 이에 대한 인문학적 논구가 된다. 봄의 ‘접힘과 펼침’의 두 질서론을 ‘잠재계-현상계’의 소통 관점에서 읽게 되면, 주역의 음양 잠재성, 노장의 유·무와 가도·상도의 은현성, 장자 호접몽의 물화(物化), 불교의 ‘즉(卽)’을 통한 공과 색의 상호 전이 발현이 순조롭게 설명 가능하다. 

제6편은 시공간을 점유하는 수많은 ‘존재-사건’으로서의 ‘0과 1’의 정보론적 고찰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두 세계에 대한 동아시아 인문 사유가 지향하는 시선은 기존 서구의 (0/1)의 디지털적 차별·배제의 이분법이 아니라, 상반적으로 보이는 둘을 전일적으로 포괄하는 시선이 내재되어 있다. 주역 ‘음중양 양중음’의 ‘잠재-현상’의 내재동태성과 ‘가도-상도’의 노장적 양행·병작의 시선도 그러하다. 이러한 양행의 세계인식은 양자역학과 양자컴퓨터의 추동성, 즉 슈뢰딩거 고양이 사고실험에서의 (0&1)의 에너지적 양자 중첩과 관찰의 순간 일어나는 파동함수의 붕괴로 입자화하는 양자 원리와 닿아 있다. 

끝으로 제7편은 동아시아 고전 텍스트 해석학의 현재적 의미다. 주역, 노장, 불교 등 동아시아 고전 텍스트의 핵심적인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풀자면, 그것은 바로 삶과 학문 중에 자성(自性)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와 부단히 소통하는 가운데 공명 소통하는 카이로스(Kairos)적 깨침이며, 그때그때 맞추어 꽃을 피워 내는 내적 역동성 어린 時中과 中道의 현재적 꽃피움에 있다. 그 근저에는 고정적 실체성에 대한 무자성의 시선과 이분법 너머 내적 동태성이란 동아시아 사유의 기본 정신이 담겨 있기에 가능하다. 이는 물질(matter)에서 사건(event)으로 중심이동을 한 현대물리학의 관점에도 부합한다.

필자 학문의 출발점은 중국문학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인문학이고, 늘 분과 학문에 만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다 통합적이며 열린 세계 이해에 대한 갈증이 컸다. 이에 지난 20년간 수백 권의 현대물리학 책을 탐독하며 현대물리학과 동아시아 사유라고 하는 전혀 다른 두 영역 사이에, 세계진리 표상과 관련한 시선상의 공유와 해석학적 접점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15년간 사안별로 인문기반 과학철학 융합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관련 연구로 교육부 주관 우수성과에 세 차례 선정되는 과분한 영예를 안기도 했다. 본서 제3편 ‘동아시아 시공간의 과학철학적 독법’은 그 중의 하나다. 

본서는 동아시아 고전사유와 시선에 대한 과학철학적 재해석을 가하고 있으며, 이는 아직 세상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길에 대한 새로운 탐색이기도 하다. 진행 중인 사유인 까닭에 충분히 숙성되지 않거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독자의 가르침과 필자의 후속 연구, 그리고 필자와 뜻을 같이하는 인문기반 융합학회인 한국동아시아과학철학회를 통해 보다 더 심화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본서를 통하여 세계진리 규명에 있어서 근대서구 이래 장기간 지나치게 소홀한 대접을 받아온 동아시아 사유의 재발굴·재해석의 길이 심화 확장되고, 동아시아 문화유산에 대한 온고지신적 인식 확산에 작은 도움이 된다면 필자에게는 큰 기쁨이다.

 

오태석 동국대·중문학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학ㆍ석ㆍ박사)를 졸업했으며, 경북대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중국문학이론학회ㆍ한국중국어문학회ㆍ중국어문학회 회장, 한국중국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동아시아과학철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황정견시 연구』, 『중국문학의 인식과 지평』, 『송시사』(공저), 『중국시의 문예심미적 지형』, 『노장선역, 동아시아 근원사유』, 『글로벌 문화와 인문경영』(공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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