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대신에 더 적은 민주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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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대신에 더 적은 민주주의를!
  •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 승인 2021.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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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칼럼]

언어는 생각, 믿음, 느낌을 음성이나 문자 등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다. 언어가 생산적인 소통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언어는 그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 특히 사상적 언어는 중요한 정치적 귀결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그래야 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치명적 자만』(1988)에서 정확히 지적했듯이, 말이 의미를 잃게 되면 우리는 손과 발을 움직일 여지가 없고 그래서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오늘날 자유를 잃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혼동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면 5·18 민주화 왜곡금지법은 “민주주의 핵심인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훼손한다”는 주장에서 그런 혼동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온갖 부동산 규제로 거주이전의 자유가 사라지고, 내 집을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그래서 “소유와 자유가 불안한 체제가 어떻게 민주주의인가”라는 말도 자유와 민주의 혼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두 가지 가치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왜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로 가는가뿐만 아니라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개선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도 알 수 없다. 원래 민주주의는 누가 지배하는가의 문제만을, 간단히 말해서 권력의 원천, 법의 원천만을 묻는다. 주권재민사상이 바로 그런 문제의 답이다. 

‘민주국가’에서는 다수가 결정한 것이면 무엇이든 정당한 입법이며 정책이라고 여기는 이유도 국가권력의 원천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해고자·실업자도 노조원이 될 수 있게 하는 노동법 개정,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빼앗는 부동산 규제도 의회의 다수가 결정했기에 정당하다고 한다. 이익공유제, 토지공유제 등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입법 역시 의회 다수의 지지를 내세운다. 

게다가 민주를 찬사(讚辭)의 언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재분배, 복지확대는 좋은 것, 그래서 민주이고 탈규제와 복지축소는 나쁘고 그래서 반(反)민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규제 3법’은 소유권을 흔들어대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은 고위직의 권력 오·남용에 관한 수사를 무력화해 시민의 자유와 소유를 불안하게 함에도 그런 입법으로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문재인 정권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민주정부는 자신의 권력을 제한 없이 확대하는 게 시민들에게 유익하다고 선전했다. 

그래서 민주의 목표는 선출된 권력이 다룰 영역, 즉 공적 영역의 확대를 늘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더 많은 민주주의(more democracy)’다. 이런 목표추구는 사적 영역의 축소와 개인의 자유 제한을 초래하는 건 물론이다. 시민들이 선출된 권력의 노예가 되는 것은 그래서 민주주의의 필연이다. 민주라는 가치에는 스스로를 제한할 어떤 장치도 없다. 민주주의는 편 가르기 정치도 그래서 필연이다. 적(敵)과 동지의 구분이 민주의 원리라는 것도 우리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언론·표현 자유의 억압, 편 가르기 정치, 경제적 자유와 재산의 침해 등, 민주국가의 필연적 현상은 ‘자유국가’에서라면 상상할 수도 없다. 국가권력의 원천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민주주의와는 달리 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제한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선출된 권력이라고 해도 제한하지 않으면 남·오용되기 마련이라는 이유에서다. 리바이어던(Leviathan)에 족쇄를 채워 자유를 보호하는 게 자유주의의 목표다. 

유감스럽게도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왕이나 군주의 주권이 국민주권으로 전환되면,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의 확립·보호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절대군주가 지니고 있었던 모든 권력을 고스란히 이른바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이야말로 국가는 선하고 전지하다는 플라톤-헤겔 전통의 낭만적 국가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가 행동이 필요한 경우에는 다수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민주원칙을 자유주의도 인정하지만, 그런 원칙을 적용할 영역, 즉 공적 영역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원칙이 자유 이념의 핵심이다. 자유에 봉사하는 게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 민주주의다. 자유에 봉사하려면 민주주의에 족쇄를 채워야 한다. 

오늘날 합법적으로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으며 전체주의를 불러들이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나치 히틀러의 독일이 그랬고 최근의 베네수엘라, 폴란드 등이 그렇다. 이들 국가 모두 국민이 선출한 ‘리바이어던’에 족쇄를 채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민주가 존속하려면 민주주의가 적어야 한다. ‘더 적은 민주(less democracy)’만이 우리에게 자유와 풍요로운 번영을 안겨준다는 걸 주지해야 한다.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경제철학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같은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과 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저서로는 『하이에크, 자유의 길』,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 『자유주의의 도덕관과 법사상』,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의 법과 질서』, 『하이에크 자유주의 사상 연구』, 『경제사상사 여행』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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