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로나보다 교통사고가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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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코로나보다 교통사고가 더 무섭다.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1.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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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생활 에세이]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어 국민의 삶이 무척 어려워졌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교통사고 사망자(한 해 4000 명가량)가 코로나 사망자보다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이 말에 대해 그 둘은 비교하기 어렵다고 대꾸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경로야 어찌 됐건 위험도 판가름의 기준은 사고 또는 발병 건수와 피해자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건수는 코로나 감염 사례와 비교할 수 없이 많다. 보험 청구되는 것만 해도 한 해 수십만 건 이상이다. 신고 안 되는 것을 합치면 아마 수백만 건에 달할 것이다.

또 하는 말이, 코로나는 전염성이 강하여 위험하다고 한다. 그러나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든 전염과는 상관없는 사고이든, 결과적인 피해자의 숫자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열 사람, 백 사람에게 코로나를 감염시키든 열 사람이나 백 사람이 각각 한 사람에게만 교통사고 피해를 입히든, 그 경로에 상관없이 최종적인 피해자의 숫자가 더 중요하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싫어한다. 자기는 코로나가 무서운데 내가 안 무서운 체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모욕감을 느끼는 건가? 물론 코로나는 위험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서워한다. 합리적이다. 그런데 사망자, 피해자 숫자로 보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교통사고가 훨씬 더 무섭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통사고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어제도 오늘도 운전에 거리낌이 없다. 내일도 그럴 것이 확실하다. 비합리적이다. 역시 인간은 합리적인 것 이상으로 비합리적인 존재이다.

그 까닭을 합리적으로 설명해보자. 우선, 교통사고는 우리 곁에 늘 있는 것이라 내성이 생겨서 두렵지 않다. 그 반면 코로나는 없던 것이 새로 생긴 것이라 두려움이 앞선다. 전쟁이나 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 중동 사람들도 한국의 우리와 별다를 바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 포탄이나 총알을 맞을지 몰라 벌벌 떨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인류의 사망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다. 주위에서 죽는 사람들을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탄식하더라도 얼마 안 가 곧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사망률이 낮은 지금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컸던 것 같지도 않다. 흔한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 교통사고를 대하는 것도 이런 심리상태다. 이건 비합리적인 것 같지만 합리적이다.
 
코로나 공포심의 또 하나 중요한 원인은 코로나에 대해 모든 매체가 날마다 중계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면서 공포를 안 느끼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자. 교통사고를 코로나처럼 경찰청장이나 국토부 장관이 나와서 매일 보고하고, 사망자 수를 텔레비전 자막에 매일 띄우고, 여야 정치인들이 교통사고 방지책으로 매일 논쟁하고, 정부가 자동차 사용 홀짝제를 강제하면 사람들이 제대로 운전하고 다닐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나는 교통사고가 코로나보다 더 무섭다. 그동안 소소한 접촉 사고를 많이 겪어서일 것이다. 한 해 전쯤에 정말 하찮은 접촉 사고가 있었는데, 상대방의 무리한 행동을 본 뒤 운전을 되도록 삼가기로 했다. 그 뒤로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니 몰랐던 좋은 점을 많이 알게 되었다. 시내 운전의 짜증이나 주차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이 일단 좋고, 주차 위반이나 속도위반으로 딱지 떼이는 일도 (아니 요새는 카메라에 찍히는 일도) 없어서 좋다. 무엇보다 사고의 위험이 크게 줄어든 점이 제일 마음에 든다. 코로나 무서워서 모임을 회피하는 일은 없어도 차 가지고 나가기는 꺼려진다. 모임 자체도 별로 없어졌지만 말이다. 그 별로 없는 약속에 모처럼 나가더라도 코로나 감염보다는 교통사고가 더 신경 쓰인다. 이러는 내가 이상한 사람일지 모른다.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매우 합리적이다—라고 나는 강변한다. 둘의 상대적 위험성을 비교해 보면 말이다. 그리고 무릇 모든 위대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던가, 하하하.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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