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왜 영혼을 논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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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왜 영혼을 논해야 하는가?
  • 장영란 한국외국어대·그리스 철학
  • 승인 2021.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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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말, 말]

■ 저자의 말, 말, 말_ 『영혼이란 무엇인가』 (장영란 지음, 서광사, 270쪽, 2020.12)
 
현대인에게 “영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낯설다. 지금 여기서 영혼을 논하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지금’이라는 순간은 단순히 현재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도 해당된다. 이미 지나간 ‘지금’은 과거가 되고, 앞으로 올 ‘지금’은 미래가 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은 현재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이라는 시간은 ‘여기서’라는 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영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항상 존재했다. 우리가 잊어버렸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있을 뿐이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영혼’에 원시적이고 초자연적인 너울을 씌워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했다. 도대체 우리는 영혼이 무엇인지를 알면서 영혼이 없다고 말하는가? 사실 영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학문적으로 영혼의 본질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영혼의 본질을 분석하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인류의 역사에서 최초로 영혼을 어떻게 발견하였고 어떻게 설명해 왔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영혼이 스스로 드러나길 바랄 뿐이다.

오늘날 영혼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고대 그리스의 영혼psyche은 ‘숨을 쉬다’는 뜻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생명’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살아있는 것은 영혼을 가졌다고 추론할 수 있다. 나아가 그리스 철학에서 영혼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에서 ‘자신’은 바로 영혼을 가리키는 말이라 했다. 그는 마치 현대인들에게 말하는 듯이 아테네인들이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재물이나 권력 및 명예 등만 쫓으며 살아간다고 외쳤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 즉 영혼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종교나 예술을 제외하고 특별히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실 영혼 개념은 근대 이후 학문에서도 저만치 사라지기 시작했다. 데카르트가 ‘정신’mind 개념을 사용하면서 영혼은 더욱 밀려났다. 언젠가 영혼은 학문의 영역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영혼 개념은 이미 중세시대부터 분할되고 축소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부터 헬레니즘까지 영혼 개념은 다양하게 변천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영혼psyche은 처음에는 단순히 ‘생명’ 또는 ‘목숨’을 의미하다가 점차 감각, 욕구, 이성 등의 다양한 기능을 포괄하게 되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영혼 개념은 그리스도교로 넘어가면 ‘영’spiritus과 ‘혼’anima으로 나뉘게 된다. 여기서 ‘혼’anima은 그리스의 영혼psyche을 번역한 라틴어로서 신체와 일체가 되어 있다. 그래서 그리스의 영혼 개념보다 축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세 그리스도교의 혼anima은 부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 개념이나 스토아학파의 영혼 개념과 유사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 사상의 신비주의 전통과 과학주의 전통을 구분해서 본다면, 그리스도교의 혼 개념은 단지 하나의 전통을 따랐을 뿐이다. 오르페우스종교와 피타고라스학파로부터 플라톤에 이르는 신비주의 전통에서는 ‘영혼’의 초월적인 측면이 나타난다. 따라서 그리스의 영혼 개념이 그리스도교의 혼 개념으로 축소되어 보인다. 이제 ‘영혼’이라는 신비적인 용어보다는 ‘정신’이나 ‘심리’라는 말을 훨씬 많이 사용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사용하는 정신이나 심리 등의 용어가 너무 협소해서 고대로부터 사용하던 ‘영혼’ 개념을 대체하기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대의 영혼 개념의 특징을 ‘운동’, ‘지각’, ‘비물질성’ 등으로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영혼은 생명의 원리로서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을 구분해 준다. 그것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원리이다. 특히 운동의 원리로서 영혼은 근대의 자동기계automata와 현대의 로봇robot의 발전에 중요한 단초로 작용했다. 또한 지각의 원리로서 영혼은 미래사회의 인공지능AI을 구현하는 데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인공 ‘지능’은 단순히 지성의 물리적 기능과 작용만을 모방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영혼에서 지성은 단지 독립적인 부분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인간 영혼에 대한 다양하고 총체적인 연구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 sarpedon death
▲ sarpedon death

『영혼이란 무엇인가』는 내게는 아주 특별한 책이다. 이미 누군가에게 주목을 받았지만 너무 빨리 잊혀지고 사라졌던 책에서 나왔다. 사실 수천 번은 반복해서 치열하게 사투를 벌였던 글들을 다시 쳐다보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영혼에 대한 나의 관심을 발전시켜 가는 과정에서 완성한 책이었다. 현대 철학에도 영혼과 신체의 관계, 즉 심신관계에 관심 있는 책들이 번역되어 있지만, ‘영혼’ 개념에 대한 고대 사유의 기원과 방식에 대한 책은 거의 없었다. 이 책에서 담을 수 있었던 주제는 총 6개로 ‘영혼의 기원과 개념: 모든 것에서 영혼을 찾다’, ‘영혼의 기억과 상기: 영원불멸하는 진리를 꿈꾸다’, ‘영혼의 윤회와 금욕: 영혼, 신들의 세계로 비상하다’, ‘영혼의 돌봄과 조화: 추락한 영혼이 자유를 얻다’, ‘영혼의 훈련과 글쓰기: 이성이 감정을 벗 삼다’, ‘영혼의 탁월성과 훌륭한 삶: 인간으로 사는 법을 배우다’ 등이다.

사실 ‘영혼’이라는 주제는 아무리 가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길과 같았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니 영혼은 마치 숲과 같이 수많은 길들을 가졌고 난 하나의 길을 선택하여 들어갔던 것이다. 늘 새로운 길이 계속 나타나지만 언젠가 멈춰야 하는 시간을 예감하면서 한없이 나를 낮출 수밖에 없다. 철학의 여정에서 ‘영혼’이란 주제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떨치기 어렵다. 기존의 『영혼의 역사』에 나온 영혼의 주제는 인간의 행복과 영혼의 훈련과 치유를 다룬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와, 비극적 인간의 삶의 극복을 위한 종교적 제의와 축제의 기원과 영혼의 치유를 위한 문화 예술을 다룬 『호모 페스티부스』, 그리고 죽음과 영혼의 제의 및 늙음과 아름다움의 신화를 다룬 『죽음과 아름다움의 신화와 철학』 등으로 발전되었다.

“나는 처음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언을 따라 작은 배를 만들고 ‘영혼’이라는 노를 의지하여 바다로 나갔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서 노를 저어가면서 사유의 그물에 물고기들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이제 긴 세월이 지나 나의 배는 너무 낡고, 멀리까지 둘러보니 나의 배는 너무 작아 보였다... 그저 너무 바다가 좋아서 저어가다가 이제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길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아직도 오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언젠가 오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어 본다.” (『영혼이란 무엇인가』, 저자의 말)


장영란 한국외국어대·그리스 철학

장영란은 한국외국어대학에서 그리스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국외국어대학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호모 페스티부스: 영원한 삶의 축제』, 『플라톤의 국가, 정의를 꿈꾸다』, 『소크라테스를 알라』, 『죽음과 아름다움의 신화와 철학』, 『장영란의 그리스신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의 원리로서 파토스와 포이닉스의 사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노의 적절성과 『일리아스』의 사례」, 「고대 그리스의 운명 개념과 탁월성의 문제」, 「플루타르코스의 듣기의 기술과 탁월성의 훈련」,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렌트의 활동적 삶과 관조적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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