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국가 형성 과정에 나타난 공간 지배의 원리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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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국가 형성 과정에 나타난 공간 지배의 원리와 특징
  • 송진 공주대·동양사
  • 승인 2021.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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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듣는다]

■ 저자에게 듣는다_ 『중국 고대 경계와 그 출입』 (송진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84쪽, 2020.12)

‘경계를 넘어’ 혹은 ‘탈경계’ 등의 표현은 오늘날 국제화 시대를 표현하는 대표적 문구 중 하나이다. 본서의 제목은 ‘중국 고대 경계와 그 출입’인데, 달리 표현한다면 ‘중국 고대사회의 경계 넘나들기’이다. 본서에서는 중국 고대 주술적 권위와 제의에 기초한 초기 국가의 공간 지배가 법제와 관료 행정을 근거로 한 고대 국가 등장 이후 어떻게 변화하였는가를 경계의 존재 형태와 경계를 왕래하는 사람의 출입 관리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농경사회와 유목사회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정주(定住) 여부다. 정주사회에 형성된 국가의 군주는 유목군주와 달리 자신의 권력 기반인 토지와 인민의 효과적 지배를 위해 일정한 지리 공간을 장악하여 배타적 지배 범위로 삼기 마련이다. 고대 중국의 국가 성립 과정에서도 토지와 인민의 효과적 지배를 위한 지배 공간의 재편은 제왕 통치를 위한 기본 조건이었다.

지배 공간의 범위는 어떤 형태든 경계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경계는 상이한 집단이나 지역을 구분하는 한계를 의미하며, 문화ㆍ언어ㆍ인종ㆍ종교 등의 기준에 따라 그 형태가 다양하다. 전통시대 중국에는 ‘중화’와 ‘사이(四夷)’의 세계를 구분하는 문화적 경계가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화하(華夏)’와 ‘이민족’을 구분 짓는 종족적 경계 역시 존재하였다. 이러한 문화ㆍ종족 관념에 따른 경계는 때로 구체적 지리 공간에 그 범위가 정해지기도 하지만, 역대 ‘중국’에 ‘화하’의 세계로만 이루어진 지리적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내부에 수많은 내부 경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문화 및 종족적 경계는 경계를 형성하는 요소에 따라 매우 다양한 성격을 띠게 될 뿐 아니라, 시대적 환경에 따라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지리 공간에 형성된 정치적 경계는 각 왕조의 지배 영역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 정치적 경계는 때로 문화적 혹은 종족적 경계와 일치하기도 하지만, 이들 경계가 중국 역사상 항상 동일한 지리 공간에 형성되지는 않았다. 중국 왕조의 지배 공간은 사실상 정치적 지배 공간으로서, 정치적 경계로 구분된 지리상의 공간을 의미한다.

본서는 중국 고대 국가 발전의 단계에 따른 공간 지배의 성격 변화와 그 실제적 운영 원리를 확인하기 위해, 상주(商周)시대부터 진한(秦漢)시대까지 경계의 형태와 경계를 출입하는 사람의 이동 문제를 시대별로 다루었다. 그 이유는 경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열림[開]’ㆍ‘닫힘[塞]’이 공존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경계는 외부 세계로부터 내부 질서를 지키기 위한 폐쇄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한 통로이다. 이러한 경계의 양면성은 한 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세계[他界]와 ‘타자’에 대한 인식과 공간을 지배하는 정치권력의 성격에 따라 그 ‘열림[開]’과 ‘닫힘[塞]’의 정도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정치적 경계의 성격을 살펴보면, 해당 사회의 공간 인식이나 공간 지배의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

경계가 갖는 폐쇄성과 개방성의 정도나 지배 공간의 구체적 운영 원리를 살펴보기 위해 특별히 경계를 출입하는 사람의 이동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교류 중 물자ㆍ정보는 ‘침묵의 교역’과 같이 실질적인 인적 접촉이나 경계 출입 없이도 가능하다. 반면 인적 교류는 경계를 둘러싼 두 집단, 혹은 두 세계가 실질적으로 만나야 한다. 이런 점에서 경계를 출입하는 사람의 이동 관리는 실질적인 공간 인식이나 공간 지배 원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 중국 마왕퇴 한묘에서 출토된 자료로서, 한대 현급(縣級) 행정단위인 전도(箭道)의 관할 범위를 그린 지도이다. 주요 기점을 기준으로 관할 범위를 나타내는 경계선이 그려져 있다.
▲ 중국 마왕퇴 한묘에서 출토된 자료로서, 한대 현급(縣級) 행정단위인 전도(箭道)의 관할 범위를 그린 지도이다. 주요 기점을 기준으로 관할 범위를 나타내는 경계선이 그려져 있다.

본서의 결론은 매우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즉, 중국 고대 공간 지배의 성격이 변하면서, 경계 출입의 절차와 형식은 전국시대를 기점으로 크게 변하였다는 것이다. 춘추시대까지의 공간 지배는 궁묘(宮廟)를 중심으로 형성된 주술적 권위에 근거하였고, 주술적 지배의 한계로 인식되었던 경계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제의(祭儀)의 성격을 띤 통과제의(通過祭儀)가 필요하였다. 반면 전국시대 이후 세속 군주에 의한 군현지배가 등장하면서, 군주의 지배 영역은 관할 범위를 의미하는 다중(多重)의 경계로 획정되었고 경계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군주의 명령이나 관부의 허가를 상징하는 증빙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는 중국에서 전국시대 이후 법제에 근거한 공간 지배가 시작되어, 지리상에 형성된 배타적 성격의 정치적 경계가 등장하였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 고대 제국은 이후 청조가 멸망할 때까지 전근대 중국 사회를 지배하는 황제지배체제의 골간이 마련된 시기이다. 고대 제국의 통치 구조와 원리에는 오랜 시간을 걸쳐 변화 계승된 지역 문화의 전통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고대인의 주술적 사유와 전통 역시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어 온존하였다. 이는 정치적 영향력의 범위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상주시대부터 진한시대까지 경계와 경계 출입 문제에 대한 통시적 연구는 각 시대별 공간 지배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접근 방법이다. 특히 경계를 출입하는 것은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행위로서, 경계의 출입과 그 형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한 사회에 존재하였던 다른 세계와 ‘타자’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중국 고대 공간 인식과 공간 지배의 성격 변화뿐 아니라 지역 간 교류 형식과 다른 세계ㆍ‘타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살펴볼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송진 공주대·동양사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학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북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평택대학교 피어선칼리지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다. 저서로 『중국 역대 장성의 연구』(공저)가 있으며, 논문으로 「漢代通行證制度與商人的移動」, 「秦漢時代 券書와 제국의 물류관리 시스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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