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情動)적 전회 이후, 젠더·어펙트 연구의 시작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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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情動)적 전회 이후, 젠더·어펙트 연구의 시작을 알리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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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약속과 예측: 연결성과 인문의 미래 |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박언주·소현숙·이화진·권명아 외 8명 지음 | 산지니 | 528쪽

이 책은 외부에서 수입된 이론이 아니라 자생적 연구를 통해 ‘젠더·어펙트’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정초하고자 하며, ‘연결성’을 탐색하는 다채로운 시선과 함께 ‘정동적 전회’ 이후 ‘인문의 미래’를 약속한다.

‘한국판 뉴딜’과 ‘AI노믹스’, 그리고 여론 ‘예측’ 정치의 지평 위에서 작동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는 ‘잔혹한 낙관주의’와 기술적 미래라는 ‘정동적 사실로서 미래’에 대한 낙관과 위협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여론 예측 정치, 즉 ‘수(數)’의 총합 통치 전략이 바로 ‘정동’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동은 대안 정치의 핵심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정치가 단순히 ‘공학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적’이고 ‘인문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동 이론이며, 이는 젠더 연구의 역사 위에 펼쳐진 것이기도 하다. 정동 이론이 전 지구적 연결의 시대를 사유하는 새로운 방법론이라면, 젠더 연구 역시 연결성과 윤리를 의존, 돌봄, 침해가능성 등의 맥락에서 오래 탐구해왔던 것이다.

정동 이론을 젠더 연구와 연결시키고, 이를 ‘젠더·어펙트’ 연구로서 제시하고자 하는 이 책에는 물질과 담론, 자연과 문화, 주체와 객체 등 근대적 이원론으로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현실을 드러내 보이는 정동적 분석을 담은 열두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와 ‘공간’ 그리고 ‘매체’의 범주에 따라 총 3부로 구성된다. 이와 같은 구성은 정동의 근본적인 조건인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더 나아가 공간의 물리적이고 가상적인 차원을 함께 살핌으로써 그 경험의 정치성을 입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다.

정동(情動, Affect) 이론은 부대끼는 몸들의 반복적인 ‘되기’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존재들의 시간성을 뒤쫓아 가는 일이다. 정동 이론이 즐겨 사용하는 ‘약속’이라는 어휘는 “pro(앞/전에)+mittere(놓다, 보내다)”라는 어원을 지니며 “미리/앞서 내놓는다”는 뜻으로, 현재에 이미 미래에 대한 전망이 기입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동적 약속의 장소 가운데 하나로서 다양한 사회적 힘들이 교차하는 젠더화된 몸이 존재한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여겨지는 ‘예측’의 패러다임이 근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몸을 규율하고 있는 이 시점에 젠더 연구와 결합한 정동 연구는 로렌 벌랜트(Lauren Berlant)가 말하는 ‘잔혹한 낙관주의’가 새겨진 ‘약속’이라는 개념과 함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을 새롭게 연결하려는, 이를 통해 인문의 미래를 약속하려는 시도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문의 방법론으로서의 정동 이론은 신체가 무엇을 하는지, 특히 신체가 언어와 이성이 아닌 힘들에 의해 어떻게 좌우되는지를 묻는다. 욕망하고, 운동하며, 사유하고, 결정하는 신체는 다른 신체들과의 부대낌과 상호 작용(inter-action), 그리고 내부 작용(intra-action)을 두루 거치며 ‘되기’를 반복하고 지속한다. 이 과정을 염두에 두었을 때, 개별적이고 내면적인 주체의 역사는 초개체적 차원의 정동과 뒤얽힌 ‘연결신체’의 역사로 다시 쓰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1부 ‘연결신체의 역사’에서는 장애, 돌봄, 기술 등의 범주를 중심으로, 연결신체의 역사를 중층의 연결망으로서 펼쳐 보인다.

부대낌과 상호작용을 그 조건으로 삼는 연결신체는 자연스럽게 살된 존재(fleshy beings)로서의 환경과 다시 한 번 연결된다. 그 환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동 또는 운동, 즉 ‘흐름’을 발생시키고, 또한 다시 그 흐름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정동-발생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2부 ‘공간과 정동’은 특정한 정동적 영역으로서 공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2부에서 다루는 다양한 층위의 정동적 공간들은 ‘젠더’의 범주에서 검토됨으로써, 교차성 및 취약성에 대한 사유를 이끈다.

정동적 공간은 물리적 장소로 온전히 환원되지 않는다. 예컨대, 최근 들어 그 용례가 빈번하게 발견되는 ‘피지털(phygital)’이라는 용어는 신체를 둘러싼 물리적 장소와 미디어라는 가상적 장소의 혼종을 사유하게 한다. 이때, 미디어는 단순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 공론장, 아카이브 등 결코 단성적이지 않은 포맷(formats)을 취하며 미디어에 접속된 신체를 정동적으로 형성(formulation)한다. 신체 역시 다양한 힘들이 교차 또는 횡단하는 일종의 미디어임은 물론이다. 3부 ‘미디어와 연결성’은 바로 이러한 사례들, 즉 개인적이고, 집단적이고, 담론적이고, 네트워크화된 신체들이 서로 정동을 일으키고 수정되는 방식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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