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암살하려고 권총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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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암살하려고 권총 샀다…”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1.01.2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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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_ 대학직설

섬뜩하고 짠하다. 지난 21일 오후 11시경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문재인 암살하려고 M9 권총 구입함'이라는 너무나 충격적인 제목의 글이 권총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고 한다. 바로 삭제됐다는 그 글에는 "잘 가라 재인아 25일까지 너의 잘못을 속죄하며 살거라"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단다. 무척 대담무쌍한 일척(一擲)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이 현재 이 사람의 IP주소를 추적하고 있다고 하는데, 글이 알제리를 경유한 탑재 방식이라 글쓴이를 특정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모양이다. 존 F. 케네디, 마틴 루터 킹, 김구, 장준하, 이런 이름들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지난 1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두 시간을 훌쩍 넘긴 대장정이었다. 이것을 지켜봤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한 교수는 이튿날 한 일간지에 ‘대통령이 할 수 없는 일이 이렇게 많았다니 놀라운 경험’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통상 한국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너무 크고 많은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국가라고 하는데 이게 웬 모순된 소린가 싶을 것이다. 그는 기고문에서 “한국의 대통령만큼 끝없는 기대로 점철된 자리가 있을까. 그것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끝없는 요청의 리스트를 보면 알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그 말인즉슨, 한국의 대통령은 막대한 권한 못지않게 막대한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다 받는 자리라 통치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문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면권을 포함하여 자신에게 부여된 다른 모든 권한은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한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사실 이는 모든 정치학 교과서가 확인해주는 원론적 주장이다. 동시에 그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우리 헌법 제1조 2항의 가장 적확한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는 대통령이 ‘할 수 없는 일’이 그렇게 많아진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문대통령의 자기검열적 제한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임기 만료 직전에 100여 건의 무더기 사면을 한 것과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따라서 대통령제가 제왕적인지 아닌지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사람의 문제인 셈이다.

여기서 잠시 기자회견 현장으로 돌아가면,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기자는 사전에 약속한 질문 항목과 질의 순서를 싹 무시하고 다짜고짜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즉답을 요구했다. 이 기습적인 안하무인의 질문 공세가 문대통령에게는 내심 불편했을 터, 하지만 그는 특유의 침착함과 수용성을 발휘하여 지금은 대법 판결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고 사면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므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서 신중하게 행사해야 하는데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 이에 대한 전(全)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두 전직 대통령 자신이 본인이 지은 중대한 범죄에 대해 일말의 반성 기미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라고 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직 대통령도 시간이 지나면... 사면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늘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라고 은근히 정치보복을 경고했다. 그리고 이 협박성 발언이 논란이 되자 기자들과 만나 "세상의 이치를 얘기한 것이다"라며 "음지가 양지 될 수 있고 양지가 음지 될 수 있기 때문에, 양지에 있을 때 음지를 생각하고 음지에 있을 때 양지를 생각해야 국민통합이 가능하다는 일반론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슬쩍 얼버무렸다. 그는 늘 이런 식으로 ‘정치인’과 ‘세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신년 기자회견 내용 중 야당의 집중포화를 맞은 또 다른 사안은 ‘정인이 사건’에 관한 답변이었다. 문대통령은 “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또는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해서 또 다른 정인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입양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예컨대 사전위탁보호제 같은 것을 염두에 둔 문 대통령의 투박하고 원론적인 어법이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이 입양아 파양을 종용했다거나 아이를 물건 취급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도가 지나친 과장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그 광범위한 정책 현안에 대한 진땀나는 ‘1 : 20 + ∞(대통령 : 대면 참여 언론인 + 온라인 참여 언론인·온라인 접속 국민·국내외 실시간 시청자·잠재적 유튜브 시청자)’ 심층 면접 이후 대통령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이 동반 상승했고, 한동안 시끌벅적했던 진영 간 기 싸움과 민감한 정책 현안을 둘러싼 갈지자 행보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다소 차분해진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개인적인 고뇌, 요령부득의 진솔함,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직무적 성실성이 다른 모든 불필요한 추측과 말 거품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마저 하자면, 문대통령이 지난 4년간 이룩한 성과와 내놓았던 발언들은 제아무리 훌륭한 의미와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대부분 보수진영과 야당의 막무가내식 말초적 트집 잡기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를테면 해외 유수 언론과 국가 정상이 K방역의 효율성과 감염 수치의 성공적 관리 결과를 칭찬하면 그건 전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나 의료진이 잘해준 덕분이고 ‘백신’ 계약에 차질이 생기는 듯하면 그건 전부 문대통령이 무능한 탓이라고 주장하는 방식이 그런 대표적 사례이다. 마치 ‘공(功)은 문대통령 아닌 다른 사람에게 과(過)는 문대통령에게’라는 일종의 행동수칙 같은 것이 우리 사회 내에서 은밀히 작동돼 오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물론 이런 행동 패턴의 대척점에 문대통령의 ‘팬덤’이 서 있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외치는, 우리 일반인들에게 보통 ‘문빠’로 알려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문재인과 생사를 같이하겠다는 일종의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외부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단지 ‘문재인’이라는 깃발을 들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호가호위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목적에서 그들이 야당 원내대표에게 ‘공업용 미싱’을 선물로 보내고, 과거 자신이 확신에 차서 제기했던 ‘불법사찰’ 의혹이 잘못되었다고 급작스럽게 공개 사과를 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여론을 어지럽히고 국민을 편 가르면서 우리 사회 내 불신을 조장하고 공론장을 파괴하는 데 일조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폐일언하고,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무수히 일렁이는 파도 저 밑 해저에 놓인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감쌌던 대통령의 결연한 현실 인식과 ‘오경화’ 장관의 일관된 ‘나의 대통령’이라는 표현이 그런 진실의 일단을 보여주었고 우리 모두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지난 22일 영국의 존슨 총리가 6월 11~13일 콘월에서 열리는 2021년 G7 정상회의에 문대통령을 초청했다. 이는 분명 대한민국의 국가신인도 상승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의 단면이며, 문대통령이 지난 4년 간 한국의 국가수반으로서 다른 G7 정상들과의 관계에서 축적한 리더십과 신뢰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대통령 4년 통치에 관한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의 세 번째 조각은 아마도 그가 ‘책 읽는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는 사실상 독학자이다. 대학시절 대부분을 반독재 투쟁에 바쳤고 연행되어 수감되었으며 변호사 시험 합격 후 출소하여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서 우리가 무식과 무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런 그가 청와대 직원들에게 작년과 올해 『90년생이 온다』와 『90년생 공무원이 왔다』를 선물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 세대에 대한 그의 관심과 지향성이 엿보이는 선택으로 보인다. 책과 벗하는 습관, 그것이 문대통령을 선과 악의 피안으로, 일렁이는 파도 저 밑 해저의 고요함으로, 그리고 잔잔한 미소와 침묵할 수 있는 여유로 이끌었을 것이다.
 
마침 오늘 1월 24일은 문대통령의 69회 생일이다. 듣자하니 외국 정상들로부터 많은 축하 인사와 선물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주 야당 원내대표의 얍삽한 겁박과 어제 언론에 대서특필된 어떤 무뢰한의 암살 위협에 몹시 허탈했을 대통령께 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의 조각들이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패러다임,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 역서로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 읽기』, 『시민사회』,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책임과 판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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