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우연과 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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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 〈우연과 필연〉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1.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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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31강>_ 김응빈 연세대학교 교수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우연과 필연>」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5. 근대 과학과 인간의 삶’ 제 31강 김응빈 교수(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김응빈 교수는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 다양성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큰 다양성을 갖고 있으며 지난 “38억 년 동안 생명 진화를 주도”해온 것이 확실한 “대부분 세포 하나가 곧 개체”를 이루고 있는 생명체”, 즉 “가장 단순하지만, 시원적 삶의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단세포 미생물, 특히 세균을 중심으로 ‘생명’을 반추”한다. 물론 “현대 생물학에서도 ‘생명’ 정의의 난경을 인정하고, 생명 자체보다는 그것을 지닌 물체, 생물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고 있음을 전제한 채. 구체적으로는 1970년 새로운 생명관을 자신만만하게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우연과 필연』의 저자 자크 모노(Jacques Monod) 전후로 발전을 거듭한 분자생물학에 대해서, 그 탄생에서부터 21세기 ‘시스템 생물학(Systems biology)’이라는 데까지 이르는 주요한 흐름을 짚어 보인다.

▲ 지난해 12월 19일, 김응빈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3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 지난해 12월 19일, 김응빈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3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들어가는 글

인류 지성사를 살펴보면, 동서고금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수천 년간 씨름해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누구도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 상태이다. 사실 현대 생물학에서도 ‘생명’ 정의의 난경을 인정하고, 생명 자체보다는 그것을 지닌 물체, 생물을 대상으로 연구를 한다.

생물은 정교한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는 시스템이다. ‘생명 시스템(living system)’은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는 계층 구조(원자→분자→세포소기관→세포→조직→기관→개체)를 이루는데, 수준이 높아질 때마다 더 낮은 수준의 특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발성(emergent property)’이 생겨난다. 생물학에서는 세포를 ‘생명 현상’이라는 창발성이 나타나는 최소 단위로 본다.

세포의 특성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핵의 존재 여부이다. 핵은 유전 물질인 DNA가 들어 있는 세포소기관 가운데 하나이다. 핵막의 유무에 따라 세포는 ‘원핵세포’와 ‘진핵세포’로 나뉜다, 각각 ‘핵이 생기기 이전의 세포’와 ‘진짜 핵을 가진 세포’라는 뜻이다. 그 구조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동물과 식물, 일부 미생물(진균, 원생동물, 미세조류)은 기본적으로 같은 진핵세포로 되어 있다. 반면 세균(박테리아)은 모두 원핵세포이다.

미생물은 대부분 세포 하나가 곧 개체인 생명체이다. 미생물 다양성은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 다양성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크다. 최초 생명체가 정확하게 언제 탄생했는지 모르지만,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이 적어도 38억 년 동안 생명 진화를 주도해왔음은 확실하다. 이 글에서는 가장 단순하지만, 시원적 삶의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단세포 미생물, 특히 세균을 중심으로 ‘생명’을 반추해보고자 한다.

미생물 연구를 통해 생명 현상을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역사가 깊다. 이미 19세기 후반에 네덜란드 출신 토양미생물학자 베이에링크(Martinus Beijerinck, 1851~1931)가 세균을 유전학 및 생화학 연구 모델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에링크 뒤를 이은 클라우버(Albert Jan Kluyver, 1888~1956)는 물질대사를 이루는 생화학적 과정에 생명의 통일성이 숨어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클라우버가 미생물을 생명 탐구 연구의 출발점으로 택한 이유는 미생물이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물질대사를 수행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1. 분자생물학 탄생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과학자들은 유전 및 생화학 연구에 있어서 단세포 미생물, 특히 세균의 장점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세균을 모델 시스템으로 이용하자 유전학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생화학과 융합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1940년대부터 물리학자들이 생물학 연구에 대거 가세하면서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이라는 신생 학문이 탄생하게 되었다.

분자생물학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분자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 생명 현상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크게 두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분자 구조에 중점을 두는 연구자들은 단백질을 비롯한 정제된 생체 분자의 입체 구조를 X선 회절 같은 물리ㆍ화학적 연구 방법을 이용하여 분자 간의 결합 양식을 해석해냄으로써 생명 현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분자유전학에서는 유전자(DNA) 구조를 기초로 하여 생명 현상을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생물학이 혁신 기술의 유입을 본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실험이 널리 가능해진 것이다. 그 당시 DNA의 기본적인 화학 성분은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DNA는 ‘deoxyribonucleic acid’의 약자이다. 이 용어를 deoxy-ribo-nucleic acid로 나누어보면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우선 ‘핵산(nucleic acid)’은 말 그대로 ‘핵 안에 들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리보(ribo-)는 5탄당(탄소 원자 5개로 된 당)인 리보오스(ribose)를 지칭한다. 리보오스는 산소 원자를 꼭짓점으로 4개의 탄소 원자가 만드는 오각형 구조인데, 나머지 탄소 하나가 네 번째 탄소에 결합하여 오각형 평면 위로 솟아 있고, 여기에 인산기가 붙는다. 이 구조에 염기라는 성분이 더해지면 핵산의 기본 구조가 완성된다. 이것이 DNA 구성 단위인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이다. 염기에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 이렇게 총 네 가지가 있다. 끝으로 디옥시(deoxy-)를 살펴보자. ‘de-’는 분리ㆍ제거를 의미하는 접두사이고, ‘oxy-’는 산소(oxygen)를 뜻한다. 따라서 디옥시(deoxy-)는 산소가 없다는 의미인데, 정확히 말하면 2번 탄소에 산소가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 산소가 그대로 있으면 ribonucleic acid, 즉 RNA가 된다. DNA와 RNA의 차이는 리보오스에 산소 원자 하나의 결합 여부와 RNA에는 티민 대신 우라실(U) 염기가 있다는 점이다. 우라실과 티민은 그 구조가 거의 같다.

▲ 뉴클레오타이드 사슬과 구조

문제는 이 뉴클레오타이드 사슬이 어떤 식으로 배열되어 유전자로 작용하는가였다. 이를 두고 과학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연구 경쟁이 벌어졌는데, 왓슨(James Watson, 1928~ )과 크릭(Francis Crick, 1916~2004)이 최종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영광이 이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생화학자 샤가프(Erwin Chargaff, 1905~2002)는 D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의 양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미생물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의 DNA 염기 조성을 계산해냈다.

1952년 여성 과학자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1920~1958)이 DNA의 X선 이미지, ‘사진 51’을 촬영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녀는 DNA를 뽑아 결정체를 만든 다음, 60시간 이상 X선을 쪼였다. X선이 DNA를 통과하면서 산란하여 필름에 이미지를 남겼고, 여기에 DNA 분자 구조에 대한 단서가 담겨 있었다. 이를 근거로 왓슨과 크릭은 DNA가 이중나선(double helix) 구조를 이룬다고 추론했다. 다시 말해서, 고리 1개가 있는 염기(T와 C)가 고리 2개를 가진 염기(A와 G)와 결합할 경우 이중나선 폭이 2㎚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렇게 구조가 이루어지면 이중나선 한 바퀴의 높이는 3.4㎚가 된다. 왓슨과 크릭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1953년에 발표했다.

▲ DNA 이중나선 구조 모형

DNA와 관련된 용어를 정리하면, 먼저 유전자는 그 생명체의 특징에 관한 특정 정보를 가진 DNA 조각을 의미한다. 각 유전자는 염색체의 특정 위치에 존재하기 때문에 염색체는 유전자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유전체 또는 게놈(genome)은 한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또는 염색체)의 총합을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는 물질적 실체가 DNA이다.

2. 생명, 부호화된 정보 흐름

세포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은 기본적으로 유전자 발현, 즉 DNA 염기 서열에 담겨 있는(부호화된) 정보를 읽어내는 과정이다. 이러한 정보 전달은 두 단계를 거쳐 일어난다. 우선 DNA에 있는 정보가 전령 RNA(mRNA)로 전해진 다음, 이 정보에 따라 세포질에서 단백질을 합성한다. 첫 단계(DNA → mRNA)를 ‘전사’, 두 번째(mRNA → 단백질)를 ‘번역’이라고 부르며, 전체 과정을 ‘중심원리(Central Dogma)’라고 한다. 크릭은 유전 정보 흐름이 일방통행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가 단백질로 변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과학 용어에 ‘도그마(dogma)’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 1956년 중심원리 아이디어 요약한 크릭의 비공개 스케치
▲ 1956년 중심원리 아이디어 요약한 크릭의 비공개 스케치

1957년 크릭은 런던에서 열린 실험생물학회(Society of Experimental Biology) 심포지엄에서 「고분자의 생물학적 복제(The Biological Replication of Macromolecules)」라는 제목으로 역사적 강연을 하면서 공식 석상에서는 처음으로 중심원리 가설을 발표했다. 제안 당시 중심원리는 실험 증거보다는 논리적 추론에 근거한 가설이었다. 크릭은 리보솜에 있는 RNA가 단백질을 만드는 주형일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세포질에는 주형 RNA 이외에 아미노산을 리보솜으로 운반하는 RNA가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곧이어 세포질에서 새로운 RNA가 발견되었는데, 이후 ‘운반 RNA(tRNA)’로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중심원리의 핵심 고리가 되는 주형, 즉 mRNA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상태였다.

1961년은 분자생물학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였다. mRNA가 마침내 발견되었고, 곧바로 유전 부호가 해독되면서 중심원리가 입증되었다. 1961년 미국 국립 보건원(NIH)에서 연구를 수행하던 니렌버그(Marshall Nirenberg, 1927~2010)가 우라실(U)만으로 이루어진 mRNA를 이용하여 UUU가 페닐알라닌을 지정하는 유전 부호임을 알아냈다. 유전 부호인 코돈은 세균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에서 같게 사용된다. 한마디로, 중심원리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 원리이다. 분자 수준에서 보면, 생명 현상이란 같은 언어(DNA 염기 서열)와 문법(유전 부호)을 통해 이루어지는 정보의 흐름인 셈이다.

▲ 코돈, 유전 부호 표

3. 파자마(PaJaMa) 실험

1940년대 초반 모노는 포도당과 함께 다른 당을 공급한 상태에서 대장균을 키우면, 성장 곡선이 2개의 상으로 나타나는 사실을 발견했다. 포도당이 소진되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당을 섭취하는 대장균의 편식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모노는 이를 ‘이원적 생장(diauxic growth)’이라고 불렀다.

▲ 대장균의 이원적 성장 곡선
▲ 대장균의 이원적 성장 곡선

모노는 당시 회자하던 ‘효소 적응(enzyme adaptation)’, 즉 효소가 특정 대사 물질에 반응하여 비활성 형태에서 활성 형태로 바뀐다는 가설을 적용하여 이원적 성장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수년에 걸친 후속 연구를 통해 젖당이 대장균 세포 안으로 유입되면 젖당 유도체로 변형되어 젖당 분해 효소, β-갈락토시데이스 활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증가 원리와 이원적 성장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파고들었다. 모노가 젖당 대사 연구에 매진하는 동안, 같은 건물(파스퇴르 연구소) 다른 쪽에서는 르보프(Andre Lwoff, 1902~1994)라는 생물학자가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와 씨름하고 있었다. 박테리오파지란, 세균에 감염하여 숙주를 파괴하고 증식하는 바이러스를 일컫는 말로, 간단히 ‘파지(phage)’라고 부르기도 한다. 르보프가 파지의 행동 변화 원리 규명에 골몰하고 있을 때, 자코브(François Jacob, 1920~2013)가 실험실에 합류했다. 자코브는 ‘접합(conjugation)’ 현상을 이용하여 실험을 시작했다. 접합은 두 세균이 직접 접촉한 다음 마치 우주선이 도킹하듯 두 세균 사이의 통로가 한 세균에서 다른 세균으로 유전 물질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자코브 연구진은 세균 접합을 젖당 대사 연구에도 활용하여 β-갈락토시데이스 유전자(z)와 젖당 투과 효소 유전자(y), 그리고 이들 효소 합성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i)의 존재를 확인했다.

1957년 UC 버클리 교수 파디(Arthur Pardee, 1921~2019)가 모노 실험실로 안식년을 왔다. 모노는 자코브, 파디와 함께 정상 유전자(z+, i+로 표시)를 지닌 대장균을 대상으로 돌연변이를 유도하여 각 유전자를 변형시켰다(z-, i-로 표시). 그런 다음 이들 돌연변이체에 세균 접합을 이용하여 정상 유전자를 공급했다. 그 결과, z+/i- 유전자를 지닌 대장균은 얼마 동안 β-갈락토시데이스를 생산하다 멈췄다. 그러나 z+/i- 대장균에 젖당을 주면 다시 효소를 만들었다. z-/i+ 대장균에서는 젖당이 있을 때만 β-갈락토시데이스 효소가 만들어졌고, z-/i- 대장균의 경우에는 젖당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β-갈락토시데이스가 꾸준히 생산되었다. 이런 결과를 세 과학자는 유전자 부위에서 무언가가 β-갈락토시데이스 생산을 방해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1959년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셋의 이름 앞 두 글자씩을 합쳐서[Pardee, Jacob, and M(a)onod] ‘파자마(PaJaMa) 실험’으로 유명해진 이 연구 성과는 세포질에 있는 어떤 분자가 유전자 발현 조절에 관여함을 강하게 시사한다. 또한 자코브는 젖당 분해 효소 합성과 파지의 활동 개시가 같은 메커니즘으로 조절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두 시스템 모두에서 세포질에 있는 분자가 유전자 발현을 차단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억제는 특정 신호로 반전될 수 있다. 파자마 연구진은 이러한 세포질 분자를 ‘억제자(repressor)’라고 명명했다.

4. 젖당 오페론, 유전자 발현 조절 원형(原型) 모델

유전 정보 흐름, 즉 유전자 발현 결과로 물질대사가 일어난다. 유전자 발현과 물질대사는 서로 통합되어 있으며, 상호의존적이다. 모든 대사 반응은 효소 촉매 작용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효소 기능을 조절하면 반응을 통제할 수 있다.

거의 모든 효소는 단백질이다. 단백질 합성에는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세포 에너지 수급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필요하지 않은 단백질이라면 애당초 mRNA부터 만들지 않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바로 모노와 자코브가 이렇게 전사 수준에서 유전자 발현(단백질 합성)을 조절하는 컨트롤 타워의 실체를 밝히는 돌파구를 열었다. 이들은 포도당이 있으면 젖당을 전혀 먹지 않는 대장균의 편식 현상 이유를 밝히는 과정에서 파자마 실험에 힘입어 1961년 마침내 ‘오페론(operon) 모델’을 정립했다.

오페론은 하나의 조절 부위를 이용하여 기능이 연관된 유전자들의 발현을 동시에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전사 단위이다. 오페론은 원핵생물의 전사 조절에 핵심 역할을 한다. 중요한 사실은 오페론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서 전사 단계의 유전자 발현 조절이 ‘DNA-단백질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해당 유전자 앞에 있는 조절 부위에 여러 단백질이 결합과 분리를 번갈아 하면서 전사를 조절한다.

모노와 자코브의 연구 성과는 중심원리를 실험적으로 증명하면서 현대 분자생물학의 기초를 완성했다. 요컨대, 젖당 오페론 발현 조절 모델이 ‘mRNA’와 ‘다른자리입체성 조절(allosteric regulation)’ 발견으로 이어졌다. 다른자리입체성 조절이란, 조절 분자가 해당 단백질의 활성 부위(기질 결합 부위)가 아닌 다른 곳, ‘다른자리입체성 부위(allosteric site)’에 결합함으로써 단백질 입체 구조에 변화가 생겨 활성이 조절되는 현상을 말한다.

DNA 구조와 중심원리 규명에 이어 다른자리입체성 조절이 알려지면서 지극히 추상적이고 복잡하게만 보이던 생명 현상이 단순한 디지털 코드인 DNA에 저장된 정보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탈부착하는 분자 무리의 움직임으로 읽히는 과정으로 환원되었다. 이에 1970년 모노는 분자생물학을 통해 정립된 새로운 생명관을 세상에 내놓았다. 바로 『우연과 필연』이다. 모노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이란 ‘DNA 디지털 정보의 구현’이고 모든 생명체는 DNA라는 같은 소프트웨어를 내장한 하드웨어인 셈이다. 『우연과 필연』은 격렬한 지적 논쟁을 일으켰다. 주된 이유는, 17세기 과학혁명 시기부터 지속하여 온 ‘생기론(vitalism)’과 ‘기계론(mechanism)’ 대결에서 기계론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젖당 오페론은 생명체에서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발현되고 조절되는지를 실험을 통해 명확하게 밝혀낸 인류 최초의 성과물이다.

5. 『우연과 필연』, 그 후 50년

생물학은 그 어느 학문보다 더 특별하게 뉴밀레니엄을 맞이했다. 인간 유전체 해독이 애초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2000년 6월 26일 그 초안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유전체 염기 서열 최종본은 2003년에 손에 넣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수백 종에 달하는 동물의 유전체가 해독되었다. 식물도 수백 종의 유전체가 해독되었고, 미생물의 경우에는 수만 종의 유전체 정보가 이미 알려져 있다. 급속한 유전체 정보 누적과 바이오 기술 발전은 유전체 합성을 가능하게 했다. 인간 유전체 사업을 주도한 과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벤터(Craig Venter, 1946~ )가 이끄는 연구진은 2010년 5월 「화학 합성 유전체가 통제하는 세균의 창조」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연구진은 마이코플라스마(Mycoplasma) 속(屬) 세균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진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마이코플라스마 미코이데스(Mycoplasma mycoides) 세균의 유전체 정보에 따라 이 유전체 전체를 인공 합성했다. 그리고 다른 종의 마이코플라스마 세균(Mycoplasma capricolum)에서 원래 있던 유전체를 제거한 다음 합성한 유전체를 집어넣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생명체(Mycoplasma mycoides JCVI-syn1.0)는 물질대사와 자기 복제 등 정상적인 생명체의 기능을 수행했고, 모든 면에서 유전체 원주인인 마이코플라스마 미코이데스와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은 JCVI-syn1.0을 ‘합성 세포(synthetic cell)’라고 지칭했다. 유전체를 이식하여 세균의 종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바야흐로 원하는 유전체를 설계하고 합성하여 다른 생명체에 이식해 맞춤형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JCVI-syn1.0 연구의 핵심은 소프트웨어를 바꾸면 종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맺는 글

‘발견 과학’인 생물학에서는 관찰과 실험을 할 수 있는 생명 현상에 근거하여 생물의 특성을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생명 현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방법론적’으로 생명 시스템을 구성 부분들로 나누어 분석한다. 이러한 분자생물학의 환원적 분석법이 생명을 상당 부분 해명해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획득한 지식이 특정 분석 방법을 사용하여 알아낸 사실이라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분자생물학에서 환원으로 설명된 현상이 유일하게 참이라고 강변한다면, 그 접근 방법이 근본주의적 환원주의로 바뀌게 되고, 생물학은 발견 과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변질된다.

생명 현상이라는 창발성은 세포에서 개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구성 요소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서로 치밀하게 연관되어 작용한 결과이다. 만약 이들 구성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규칙을 벗어나 작용하면 곧바로 전체 시스템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 유전자(DNA)는 생명 시스템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하면서 시스템 작동에 필요한 정보를 쥐고 있다. 그러나 어떤 유전 정보를 언제 어떻게 읽어낼지는 시스템 전체의 복잡한 조절 역학이다. 유전자는 시스템 안팎을 오가는 다양한 신호들과 얽혀 네트워크를 이룬다. 따라서 생명을 밝히는 데 있어서 DNA만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분자생물학은 곧 DNA로 환원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지식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 분자생물학은 분자 수준을 벗어나 시스템 수준으로 연구 범위를 넓히고 있다. 요컨대, ‘시스템 생물학(Systems biology)’은 수준별로 수많은 유전자와 단백질, 화합물 사이를 오가는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규명하여 그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렇게 환원주의적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는 인간 유전체 사업 이후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오믹스(omics)’ 기술이 큰 몫을 담당한다. 각각 전체와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 ‘옴(-ome)’과 ‘익스(-ics)’가 합쳐진 오믹스란, 어떤 특정 학문 분야라기보다는 개별 유전자와 단백질, 대사 물질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 대비하여 모든 데이터를 통합하여 연구를 수행하는 ‘전체론적(holistic)’ 생물학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다.

▲ 오믹스 데이터 유형

과학은 두 가지 요인, 환원적 및 전체론적 분석을 가능케 하는 기술과 미래를 보는 비전(guiding vision)에 힘입어 발전한다. 기술이 없으면 과학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니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비전이 절실한 이유다. 생물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자연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의 주체인 인간을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생물학은 미래 과학의 주도권을 선점하고 있다. 좁게는 제반 학문에, 넓게는 사회, 문화, 문명 그리고 자연 전체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될) 생물학은 이제 융합 학문으로서의 기반을 견고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 생물학은 다른 학문과 함께 과학의 비전을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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