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 『신라 왕경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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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신라 왕경의 이해』
  • 주보돈 경북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1.01.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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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나의 테제]

■ 나의 책, 나의 테제_ 『신라 왕경의 이해』 (주보돈 지음, 주류성, 652쪽, 2020.12)

경주 월성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두루 아는 바처럼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입장과 시각은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어떠한 사물, 사실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비쳐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 해석에서 하나의 정답이란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는 모름지기 일정한 기준과 원칙을 지킨다면 누구라도 각자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일이 가능함을 뜻한다.

여기서 간략하게 소개하려는 나의 저서 『신라 왕경의 이해』(주류성, 2020)는 문헌사료를 주요 근거로 삼아 고고(考古)자료를 비롯한 인접 학문 분야의 성과를 염두에 넣어 신라 왕경에 대한 밑그림을 크게 그려보려는 의도로 추구한 작업의 일환이다. 이 또한 성격상 신라 왕경의 실상에 접근해 보려는 여러 갈래의 길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신라사 연구자라면 왕경의 실상은 당연히 관심을 가져봄직한 대상이다. 왕경이란 여느 국가에서라도 정치행정이 이루어지는 핵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왕경에는 온갖 물산(物産)과 함께 사람이 모여들어 삶을 영위해 나감으로써 당대 최고 수준의 문화가 창출, 온축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한 국가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주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왕경이라 하여도 좋다. 그동안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왕경에 관심을 기울여왔음은 그를 여실히 입증한다.

필자도 오래도록 신라사 연구에 힘을 쏟으면서 줄곧 왕경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년을 바로 앞둔 2017년 봄 오랜 기간 삶의 터전이었던 대구 생활을 말끔히 청산하고 경주에다 새로운 둥지를 틀고 왕경 연구를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문헌 기록이 보여주는 수준을 뛰어넘어 신라인들의 실제적인 생각과 실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현장이 절실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존의 신라 왕경 관련 연구 전반을 세세하게 훑어보자 몇 가지 두드러진 의문점에 직면하였다. 본 저서는 사실상 이를 해명하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첫째, 연구자들이 널리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의 문제이다. 특히 왕경과 관련한 용어 자체는 물론이고 내부 구조에 대한 기본적 이해까지 달리하는 데에 너무나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다.

왕경과 왕도(王都)는 본디 같은 의미로서 오늘날 수도를 뜻하는 용어이다. 하필 왕도나 수도가 아닌 왕경이란 단어를 굳이 사용하려는 데에는 신라사의 가장 기본사료라 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보일뿐더러 특히 경(京)의 경우 바깥 세계(外), 곧 지방과를 엄격하게 구별하려는 용도로서 신라인이 각별히 즐겨 사용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익히 아는 바처럼 경(京)이란 글자의 훈(訓)인 ‘서울’은 원래 신라국가의 모태로서 경주분지에 위치한 초기국가인 사로(斯盧),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이 4세기 중반 신라가 출범하면서 그대로 왕경으로 전화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이란 단어 자체에는 여러모로 신라의 원초적 실태가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신라사에서만 굳이 왕경이란 용어를 고집하는 것은 그처럼 신라인들의 의식이 그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와 관련하지만 신라 왕경의 범위와 구조에 대한 이해의 문제이다. 신라 왕경은 사로국의 경역(境域)과 그대로 겹치며, 오늘날 경주시 전역과 대체로 비슷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종종 이를 너무나 좁혀 보아, 마치 방(坊)이란 네모반듯하게 구획된 중심 시가지만이 왕경인 듯이 간주하는 착각을 범하고 있었다. 이는 일제강점기부터 추정해서 그려본 이른바 왕경복원도(王京復元圖)를 지나치게 의식한 데서 말미암은 일이었다. 왕경 범위를 그처럼 좁혀버린 뒤 다시 주변의 넓은 지역을 포함한 일대를 따로 왕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왕도와 왕경은 어디까지나 개념상 동일한 용어이다. 신라 왕경 전체는 다시 6부(部)로 크게 나누어졌으며 정치행정의 중심부와 주변부는 개발의 정도나 인구 밀집도 등에서 차이를 뚜렷이 보였다. 같은 왕경이라 하더라도 개발이 일시에 함께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오랜 기간에 걸쳐 선후해 진행됨으로써 지역에 따른 편차가 저절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먼저 방제로 구획된 중심구역만을 왕경이라 간주한 것은 근본적 잘못이었다.

셋째, 그와 같은 왕경도의 전범(典範)을 마냥 중국의 사례, 특히 수당(隋唐)의 수도 장안성(長安城)에서 찾아 끼워 맞추어 보려고 시도한 점이다. 그래서 방제의 전면적 실시를 당연한 것이라 단정하고 중앙부에다 무조건 주작대로(朱雀大路)를 설정하면서 그 좌우로 작은 도로를 갖춘 반듯한 구조를 상정함이 일반적이었다. 이후 진행된 신라 왕경 관련 연구는 그렇게 상정한 틀 속에 가두어 놓는 커다란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원래 주작대로란 북쪽에 왕궁이 위치함을 대전제로 해서 남쪽 방향으로 크게 뚫린 한가운데의 간선도로를 지칭한다. 좌우에는 각각 대칭을 이루도록 여러 작은 도로로 구획된 거주 주역 존재하는 정연한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상상에는 근원적인 잘못을 품고 있었다. 신라 국왕이 거주하는 왕궁인 월성(月城)은 시종일관 시가지의 남쪽에 치우쳐 있었으므로 애초에 주작대로란 용어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지리지형상 그처럼 직선의 큰 도로를 낼 수 없는 환경이었다. 저습지가 널리 산재하고 용천(湧泉)에서 솟아난 물이 곳곳에서 실개천을 이루어 흐르는 지세였다. 특히 월성의 북서쪽에는 4세기 중반 무렵부터 마치 엄청난 위용을 뽐내려는 듯한 고총(高塚)이 크게 무리를 이루어 조성되어 있었다. 이는 왕경이 애초부터 일직선 도로를 갖춘 정연한 구조로 기획되기 어려웠음을 뜻한다.

장안성은 수당의 발상지가 아니라 국가가 성립한 뒤 평지에다 의도적으로 새롭게 개발한 도시이므로 정연한 모습을 갖추려는 기획 아래 출발하였다. 그렇지만 신라 왕경은 초기국가 사로국 자체가 그대로 왕경으로 전환한 것이므로 자연지리적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경영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자연 상태 그대로를 이용한 바탕 위에 왕경의 구조를 기획하였을 터이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고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공간 활용의 한계 상황을 맞았다. 그럼에도 단 한 차례 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기존의 경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은 채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왕경 경영을 추진함으로써 세계사상 유례가 없는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 점이 신라 왕경만이 갖는 특징적 면모라 할 수 있다.

물론 신라국가의 발전과 맞물려 국왕의 위상과 지배체제가 달라지고 그에 어우러지게 왕경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배이데올로기가 전통의 산악신앙과 조상숭배로부터 불교, 유학으로 바뀌면서 그것이 저절로 왕경 경영에도 투영되어졌다. 한때 왕궁을 옮기거나 통일기에 이르러 왕경 자체를 달구벌(대구)로 천도하려고 시도한 사실은 그런 실상을 잘 시사한다. 그 자리에 있게 됨으로써 변화의 양상은 내부 운영에 반영되어질 수밖에 없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신라 왕경인 금성(金城)도 천 년 이상 같은 곳에서 성쇠를 거듭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어디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달리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면모를 띠게 되었다. 이런 측면이 신라 왕경만이 갖게 된 특성이라 지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장안성을 모델로 삼은 마치 축소판인 듯이 접근한 것은 근본적인 오류였다. 물론 왕경 경영에 불교나 유학 등 지배이데올로기를 투영하려 하면서 외부로부터 영향도 적지 않게 받을 수밖에 없었을 터이나 그럼에도 나름의 경관에 맞추어 녹여내어 왕궁이나 왕경 전반을 운영함으로써 유례를 찾기 어려울 독특한 체계를 만들어나간 것이었다.

결국 이 저서는 왕경 연구의 끝이 아니라 전반을 새로운 시각에서 새롭게 접근해보아야 할 첫출발이라 할 수 있다. 신라 왕경에 대한 세부적인 그림은 이제부터의 과제라 하겠다.


주보돈 경북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경북대 박물관장,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경북대 교수회 의장, 경북대학교 인문대학장, 한국목간학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금석문과 신라사』, 『신라 지방통치체체의 정비과정과 촌락』, 『임나일본부설, 다시 되살아나는 망령』, 『가야사 새로 읽기』, 『김춘추와 그의 사람들』, 『한국 고대 기본 사료』, 『가야사 이해의 기초』, 『가야사 새로 읽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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